미니멀 팩션 스토리

맘마미아

원평재 2011. 2. 13. 10:23

임원 회의가 끝나고 일어날 즈음, 보스인 대표이사께서 문득 물었다.
"맘마 미아를 관람한 분 있어요?"
십여명의 임원 모두에게 물은 형식이었지만,
정작 답을 듣고자 하는 대상은 나라는 걸 대뜸 알았다.

"(주)탄상" 그룹에서 가장 리스크가 쎈 곳이 내가 관리하고 있는
"탄상 기획"이라는 펀드 회사였다.
탄상 그룹의 십여개 회사에는 제조 회사도 있고 무역만 전담하는 회사,
그룹의 전산실이 확대되어 생긴 정보통신 회사등도 있지만 나의 관리
아래에 있는 "탄상 기획"은 사실상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페이퍼
캄파니에 다름 아니었다.
말하자면 펀드를 모아서 주식 투자도 하고 농산물이나 광물 관련
선물(先物) 시장도 손대고,
때로는 부동산 경매 물껀도 취급 하지만 요즈음 와서는 특히
영화 제작에 뒷돈을 대는 것으로 재미를 좀 봤다.
이건 순전히 투기였으나 대표이사의 아들이자 내 친구인 치과의사의
감각으로 착수한 셈인데,
하여간 그의 감각과 나의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내 친구는 영화 예술을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엄명으로 그런쪽에는
기웃거리지도 못하고 치과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부자간의 그런 사이를 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나서면 될일도
안된다고 뒤로 빠지고 내가 총대를 메었던 셈이다.
하여간 그의 예술 감각으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는 감독이나 제작자의 이름과 미리 나온 시나리오의 시놉시스를
보면 감이 떠오른다고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주연을 뽑는 일이나 여주인공의 어떤 옷을
어떻게 벗기게하느냐,
소형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여 터뜨리는 블록 버스터의 파괴 규모
등에는 투자자가 일체 관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중요한 요소들은 일단 모두 딴따라들에게 맡기고 숨을 죽이는
꼴이라고 내 친구, 치과의사는 혀를 찬다.
물론 나는 이런 쪽에 문외한이어서 어느 장단에 맞출지는
모르겠으나 사업가의 직관으로는 양쪽을 모두 견제해야
될듯 싶다.
하여간 내가 사업계에 나가게 된 사연은 이 친구 덕분이었다.
어릴때 부터 친구였던 이친구는 자신의 뜻을 나를 통하여 실현코자
완고한 아버지와의 대면을 주선하였다.
"탄상"의 전신인 대원 그룹의 총수도 자식에게는 맡기기 힘든 거친
세계를 나를 통하여 대리충족 시키고자 하였는지,
나의 돈벌 궁리에 대한 탁월한 프레전테이션에 감동하였는지
시드 마니, 즉 종자 돈을 만들어주고 그걸 자신의 그룹 이름으로
굴려도 좋다고 허락을 하였다.

나는 그 시드 마니와 그룹이름을 밑천으로 벤처 기업을 만들어주는
회사를 테헤란로에 차렸다.
그리고 주위에 시쳇말로 널럴한 벤처기업 사장들을 설득하고 꼬득여서
인큐베이터에서만 안주하고 있는 벤처 사장들의 병아리 눈물 같은
회사 열개쯤을 코스닥에 등록토록 법적, 핸정적 절차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기업공개의 마지막까지 내가 관리 해주고,
치고 빠지면서 번 돈이 대략 백억이었다.
입이 벌어진 대표이사에게 그룹 이름을 바꾸자고 내가 다시 설득을
했다.
촌스런 "대원" 대신에 "탄상(誕像)"으로 하자고 졸랐다.
영상을 탄생시킨다는 깊은 뜻을 모르는 친구 아버지는 탄성을 발하며
내 제안을 받아주었고,
마침내 "(주)탄상" 그룹의 자회사가 된 "탄상 기획"은 위에서 말한 데로
영화에 투자를 하여서 대박이 터졌다.

또한 외국계 투자회사 "칼라일"이나 "골드만 삭스"의 대리 회사등이
움직이는걸 벤치 마킹하여 거래소 증권에 투자하여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내가 이혼한 상태라는것을 대표이사께서 안 것은 이 때쯤이었다.
"자네 좀 감상적이라면서---?"
"넷?"
"시 쓰는 여자하고 연애하다가 이혼 당했다면서?"
"모함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이혼 사실은 맞고요---."
하나는 움켜쥐고 하나는 사실 고백을 하는 것으로 나는 거래를 시도
하였다.
"나한테는 흥정이나 딜을 시도 하지마라. 하여간 앞으로는 내가
자네를 좀 관찰할거야. 피도 눈물도 없어야 산다. 시인하고
연애를 하다가 가정을 깼다고? 시가 뭐냐, 시가---.
나는 피아니스트와 연애를 했어도 이혼 당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그 피아니스트에게서 태어난 서자 였으나 본가로 입적
되었다.
지금 그 피아니스트는 판화를 뜨는 화가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를 이혼시킨 여류 시인은 나와의 결합을 앞두고 어떤 나이 많은
사업가와 얼른 결혼하여 나를 배반하였다.
그 늙은이는 조강지처가 오래 투병하다가 작고하여 상배의 처지에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 돈많은 남자는 그때가지 일반적으로 베일에 쌓였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베일을 급격하게 친듯한 분위기가 있었으나
나같은 위치의 사람이 촌탁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내가 조강지처에 대한 배신자라서 불안하다는 이유와
또한 알고볼수록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아서 도망간다고
선언하였다.

"바퀴벌레거나 샤일록이어도 좋다며 나를 사랑할 때는 언제고?"
내가 펄펼 뛰었었다.
"당신의 겁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너무 좋았던 때가 있었어.
그리고 또 내 동창인 당신 아내가 돈도 없는 주제에 너무
도도해서 한번 꺾어주고 싶기도 했고."
"노처녀의 꿈이 고작 그 정도였구나."
"난 처녀도 아니었잖아."
"대학 때 읽은 스콧 핏제랄드의 겨울의 꿈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네.
그래 내가 돈 장사로 성공해서 오피스 빌딩의 맨 윗층에 있는 사장실을
차지할때쯤 넌 반드시 실패한 인생을 살거야. 악담이라도 좋아. 하여간
그런 다음엔 거기 나오는 사장처럼 너의 실패한 인생을 살펴보고 눈물
한방울 흘려주마."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맨 꼭대기 펜트 하우스를 점령하진 못하였다.
그런데 벌써 대표 이사께서는 나를 조금 불신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영화 같은데에서처럼 모함이 들어간 모양이다.
이제는 주소도 모르는 그 여류시인이 직접?
아이구, 그건 삼류 소설이고 이 탄상 내에도 늑대와 하이에나들이
얼마나 많아---.

하여간 피도 눈물도 보이지 말라는 대표이사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펜트 하우스만 차지하면 엉엉 울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그때 까지는 시도 음악도 그림도, 영화도 오페라도 뮤지컬도
모두 신경을 끊고 살자.
그런데 갑자기 대표 이사가 맘마 미아를 보았냐고 나에게 물으신거다.

"어르신께서는 보셨습니까?"
아, 한마디를 덧붙여야겠다.
내가 대표 이사의 그 말을 듣고 얼떨결에 감히 질문을 하였지.
순간 금기 사항을 문득 어겼다는 생각이 나서 내 등에서 진땀이 난
것과
대표이사가 불호령을 내린 것은 동시였다.
"나에게 어느놈이 질문하는거야? 내가 말하기 전에는 묻지마라.
내 뜻은 항상 임원들이 알아서 파악하고 따라야 된다."
회의실에서 퇴장하던 다른 임원들이 갑자기 나로 부터 열 발자국쯤
떨어졌다.
감각 하나는 귀신이구나.
돈 벌어준 내가 너무 잘나가니까 대표 이사가 불안을 느꼈고 그걸
다른 임원들이 눈치채고---.
내 집무실로 돌아와서 비서에게 얼른 맘마미아를 예매하라고 했다.
최고석으로---.

조금 있다가 인터폰이 울렸다.
"로얄석도 다 나갔다는데요---."
"만들어서라도 내놔!"
사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페이퍼 캄파니는 애널리스트 두엇과
본사에서 파견된 이 여비서가 전부였다.
그러니 그녀를 그렇게 윽박지를 처지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비서는 표를 마련하였고 나는 일찍 회사를 나서서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으로 향하였다.
그 과정에서 기사에게 다시 한번 신경질을 냈다.
"네---에?"
이 친구가 뭘 물어봐, 가자면 가는거지,
내가 그런 신경질을 부렸으나 사실 질문은 당연하였으리라.
이 사장이 갑자기 돌았나? 그런 생각이었겠지.

차가 서초동으로 달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왔다.
나를 버리고 갔던 여류 시인이었다.
"갑자기 시인께서 왠 전화야?"
"별일 없어요? 요즈음 돈 많이 버신다면서요?"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죠. 돈 많이 벌면 날 망치게 하고 눈물 한방울 흘리겠다는
사람인데---. 하여간 오늘 나 좀 만나요."
"안되겠어. 나 지금 어디로, 그래 예술의 전당으로 가고 있어.
예술의---!"
"놀랍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맘마 미아 가는 모양이네.
하여간 나한테 와요. 거기 예술의 전당 밑에 새로 생긴 지하차도로
들어와서 오른 쪽으로 가면 우리가 자주 만났던 옛골 찻집이 있어요."
"미쳤군."
"그래 미쳤어요. 봄바람이 나서---."

문득 내 친구의 아버지이자 대표 이사께서 년전에 상처를 했다는
소문이 생각났다.
갑자기 등에 식은 땀이 났다.

맘마 미아!
맘마 미아!

아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대표 이사께서 "맘마 미아"를 물으신 것은 ABBA의 히트친 노래들을
모아서 날라리 뮤지컬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대박 터진 이 기획물이
이제야 궁금해지셨고,
그래서 탄상 기획의 사장인 나도 이런 감각을 모름지기 익히라고
하신 말씀이리라.
무릇 이 시대에 엔터테인먼트와 관련 없는 상품이 어디있나.
우린 영화에도 투자를 한 기획사가 아닌가---.
그나저나 이 미스터리에서, 이 수렁같은 미스터리에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는건 언제쯤일까---.
맘마 미아!
그게 과연 가능할까---.

'미니멀 팩션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미빛 인생  (0) 2011.02.13
여섯번째 여자  (0) 2011.02.13
하리수의 참람한 삼행시  (0) 2011.02.13
비아그라 야설  (0) 2011.02.13
청담동 풍경화  (0) 201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