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사업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객원회원으로 참여하여
몇마디 문학 이야기를 소개하며 저녁 대접을 받는 부정기 행사가 있다.
비즈니스 이야기와 정관계 이야기가 주된 메뉴였으나 끝날 무렵이면 내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고 모두들 정신 맑을 때에 자서전 비슷한걸 쓰는게
꿈이랄까 숙제같은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으며 모임은 끝나기 마련이었다,
"아까 박사장도 책을 하나 쓰라고 하더라만 내가 사업계를 훑고
다녔더니 아는건 사실 무척 많은데 이걸 직접 쓰긴 그렇고---.
나도 시조께나 읊고 다니면서 보니 소설이나 자서전 대필업자도
엄청 많다고들하대---."
귀가 방향이 비슷하여 항상 술마신 뒤끝에 기사있는 승용차를 내가 실례하게
되는 무역업자 강 사장의 외제차 속이었다.
"근대(近代) 영국 소설의 축이라고 하는 헨리 필딩도 원래 연애편지
대필업자일쎄. 자네의 소재라면 훌륭한 소설 열편은 나오겠다---."
내가 고급 와인의 에스프리가 부추기는 바람에 조금 과장은 했으나
정말 대단히 탐나는 작품의 소재를 이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실만 갖고는 소설이 안되잖아."
그가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그래서 소설이 영어로 픽션 아닌가. 허구라고---. 그런데
요즈음은 픽션 보다 더한 현실이 너무나 많이 전개되어서
픽션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가 없지.
그래서 사실 즉 fact와 허구 즉 fiction을 얽어멘 팩션이라는
장르가 생겨나고 있어.
자네같은 사람이 시도해 볼만한 절묘한 마당이 생긴거지---"
우정과 밥값의 상승작용으로 내가 설명을 진지하게 해주면서도,
마치 머리좋은 경쟁자에게 비밀을 팔아먹는듯한 아픔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자도 등장해야 하잖아"
"여자 없는 소설이 어디있나. 인류의 반 이상이 여자야. 자넨 또
여복도 많았잖아. 능력 탓이겠지만, 하하하"
"그래, 마누라가 다른건 다 믿어도 나의 여자 문제 만큼은
못믿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건 과장이고 마누라가 아는척 하는 부분은
피해의식과 합성된거야."
그러면서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휴학하였을 때 이웃 동네의
연상의 처녀와 사건이 있었다고 하였다.
사건 이후 처녀는 피해 다니는 이 손 아래 총각을 찾아다녔고
총각이라는 표현 보다는 조숙한 고등학생이 알맞은 그는 엄연한
현실이 무섭기만 하였고 "부랄"도 한동안 오그라 붙어버렸다---.
눈치를 챈 그의 어머니가 어느날 고이 간직했던 비단에 쓴 글자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고명하신 스님이 이 친구의 사주를 보고 장래 대성을 예언하면서
다만 평생에 여섯 여자를 조심하라고 하더란다.
그런 내용이 구체적인 때를 명시하면서 적시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대체로 내용이 맞다는 것이다.
"여섯 여자나 건드리면서 용케 성공하였네."
내가 조금 신랄하게 비꼬았지만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잃지않는 그를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여자 문제도 결코 야비하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창 때에, 그리고 또한 사회적 분위기나 접대용으로 상대한
여자를 포함하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범주로 따지면
내가 어이 여섯 여자와 관계가 있었겠냐.
한 다섯 손가락은 채울지 몰라도---.
그래서 이번에 소설인지 대필인지를 하나 쓴다면 가공의 여자를
하나 만들어 넣어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그여자가 바로 여섯번째
여자가 되겠어. 그런데 이걸 마누라가 믿어줄까?
가장 찐하게 가장 치열하게 사랑을 나누는 여자로 만들어야겠는데
이 때문에 마누라한테 묵사발 되는것 아닌지.
아니 마누라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이런 식으로 고민하다보니 정말 여섯여자를 조심하라는 그 고승의
예언이 꼭 맞긴 맞는것 같단 말씀이야---"
나는 "사이버 문학 동네"라는 카페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내가 그 동네에서 팩션을 올리고 있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어.
사실인척 하려다 보니 주인공이 1인칭이 되고 그러다 보니 모든게
자기 고백적인 혐의를 쓰게 되니 결국 찐하게 못그리고 수채화가
되고 말더군. 자넨 그 동네의 정모같은 때에 실제 얼굴을 내밀지
말고 자유롭게 찐한 유화를 연재해서 그려보게"
"지난번 시조로 등단할 때처럼 자네가 감수해 줄려고?"
"에이, 감수는 무슨---. 그저 이번에도 자네의 전의를 불태우는
의식에 증인이나 목격자가 되고 싶은거지. 그리고 그 길 따라
동네에는 예리한 감각의 주민들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
긴장도 되고, 하여간 글을 쓰지 않으면 못견디게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
그런데 <여섯번째 여자>는 자네 장편소설 제목이 될 것이지만
내가 우선 그 동네에 단편의 제목으로 차용할테니 비난은 말게,"
"사부님 하시는 일에 내가 무슨 이의를 달리오."
그가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 사이 천둥이 치고 내린 봄비 속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며칠 후 다른 일로 그가 전화를 했다.
사무적 일이 끝나고 내가 물었다.
"카페에 들어와 봤어?"
"내가 요즘 벤처하던 주식 매매하느라 바빠서---. 그리고
<여섯번째 여자>는 마누라 겁이나서 아무래도 못쓸 것 같네."
"한 <네번째 여자>로 하지 그래. 헤밍웨이도 마누라가 넷이었네."
"헤밍웨이는 서양 사람이라 성이 넉자나 되잖아.
난 한국사람이라 성이 한자 밖에 안되는데---"
"자네 또 오그라붙었구나?"
"응, 오그라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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