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포토 포엠)

(창작 시) 3월에 내린 눈

원평재 2011. 3. 14. 04:26

 

(시)  3월에 내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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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교외 베어런 빌리지의 스쿨버스 정류장은

내 고향 강변마을 빨래 터

 

입소문 규모가 좀 너르고 큰 게 다를까

봄 같지 않게 갑작스레 내린 큰 눈을

옆으로 엉거주춤 몰아치운 모양새나

바람 소리 가쁘게 달려오는 품새도

기억 속의 이른 봄

동구 밖 빨래터이다.

 

서체동학(西體東學)의 동양사 교수 소어렌도

드라마 강사 마이클도

정년퇴임하여 딸네에 잠시 와있는 나도

매일 아침 빨래터에 나와서 노랑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핏줄들을 차에 태우고 돌아서기까지 빨래감 이야기에

방망이를 두드리며.

 

며칠 전에는 폭설로 중일 전쟁이 늦어졌고

그 다음날은 결빙과 강풍으로 노일 전쟁이 불붙지 못하여서

대한제국의 가냘픈 독립기간이 조금 연장되었다.

소어렌의 강의실에서는.

 

일기예보 따라서 쉽게 등교 시간을 늦추거나 아예 문을 닫는

이곳의 일상은

지역 TV의 느긋한 통보에 기꺼이 동행이다.

 

이른바 "글 공장"에서 드라마를 공동집필하는 마이클은

동체서학(東體西學)하고도 느림을 접수 못하는

대한제국의 이 후예를 어떻게 묘사할까

내가 그의 극중 인물 단역에라도 들어갔다면---.

 

아니, 이런!

내일의 갑작스런 빨래감은

일본의 9.0 대지진

참혹한 쓰나미

공포의 방사능 누출 영상으로

방망이의 고저장단이 빨래터의 역사적 기록이 되려나,

혹은 말문 닫힌 침묵의 아침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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