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포토 포엠)

(창작 시) 초록 장미의 존재론

원평재 2011. 3. 18. 05:19

 

 

 

 

(창작 시) 초록 장미의 존재론

 

동양 식품 가게를 찾아 나선 저자거리에서

문득 초록 장미를 만났다.

겨울바람의 위력은 시나브로

아직 지상에서 심술궂은 아침

 

아,

해마다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 

바로 그 앞 토요일 오전이면 이 동네에서

녹색으로 치장한 아일랜드 후예들의 거리 행진이 있지

그린 퍼레이드,

 

천오백년도 더 이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아일랜드의 패트릭 성인은

그 변경의 수호성인으로도 배품이 모자람인가

 

척박한 땅에

이웃 영국의 행패와 더불어 찾아온

모진 흉년 피하여

신대륙 여기저기로 쫓겨온

신산한 삶 위에도 초록 형상으로 다시 임하여

 

"보아라!

불모의 겨울이 가고

신생이 찾아왔도다"

해마다 새 생명의 전조를 외치며 지친 이들을 깨우친다.

 

역사 속

거친 이웃 나라 탓에 자신의 성정조차 비뚤어진

가난의 땅 아일랜드 사람들,

그들의 분열과 모함과 좌절과 역설적 졍열은

때로 배달겨레의 지난날

발자국에도 비견되었으니

위안인가 자조인가

먼 나라에서 주고받는 체험은 가슴앓이도 되는데

 

내 고향에서 불던 전방위의 거친 바람은 문득 이곳까지 찾아와

내 마음의 옷깃을 펄렁이게하여

저 그린 퍼레이드에 고개 내민 초록 장미가

진짜변종일까 가짜조화일까

사념이 본질을 찌르려는 순간,

 

생명의 색갈 함초롬한 초록 장미는

내 흐린 시야를 닦아 직관을 이끌더니

궁금증으로 가장되어 삼투하는 잡념마저 씻어내고

자신의 본디 꽃말

천상의 사랑과 고귀함

그 존재의 가치로 세상에도 꽃 수를 놓는다.

 

 

질곡의 겨울로부터 빠져나오는 길목에

초록 꽃으로 선

그대

생명의지의 이정표여!

 

구세주의 고난을 묵상하고 동참하는 사순절 즈음에

사육제의 광란으로 거친 위안을 찾기보다

초록 장미를 염원하는 순정한 마음으로 

성 패트릭의 날을 맞는다

오래 잊었던 기다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