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초록 장미의 존재론
동양 식품 가게를 찾아 나선 저자거리에서
문득 초록 장미를 만났다.
겨울바람의 위력은 시나브로
아직 지상에서 심술궂은 아침
아,
해마다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
바로 그 앞 토요일 오전이면 이 동네에서
녹색으로 치장한 아일랜드 후예들의 거리 행진이 있지
그린 퍼레이드,
천오백년도 더 이 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아일랜드의 패트릭 성인은
그 변경의 수호성인으로도 배품이 모자람인가
척박한 땅에
이웃 영국의 행패와 더불어 찾아온
모진 흉년 피하여
신대륙 여기저기로 쫓겨온
신산한 삶 위에도 초록 형상으로 다시 임하여
"보아라!
불모의 겨울이 가고
신생이 찾아왔도다"
해마다 새 생명의 전조를 외치며 지친 이들을 깨우친다.
역사 속
거친 이웃 나라 탓에 자신의 성정조차 비뚤어진
가난의 땅 아일랜드 사람들,
그들의 분열과 모함과 좌절과 역설적 졍열은
때로 배달겨레의 지난날
발자국에도 비견되었으니
위안인가 자조인가
먼 나라에서 주고받는 체험은 가슴앓이도 되는데
내 고향에서 불던 전방위의 거친 바람은 문득 이곳까지 찾아와
내 마음의 옷깃을 펄렁이게하여
저 그린 퍼레이드에 고개 내민 초록 장미가
진짜변종일까 가짜조화일까
사념이 본질을 찌르려는 순간,
생명의 색갈 함초롬한 초록 장미는
내 흐린 시야를 닦아 직관을 이끌더니
궁금증으로 가장되어 삼투하는 잡념마저 씻어내고
자신의 본디 꽃말
천상의 사랑과 고귀함
그 존재의 가치로 세상에도 꽃 수를 놓는다.
질곡의 겨울로부터 빠져나오는 길목에
초록 꽃으로 선
그대
생명의지의 이정표여!
구세주의 고난을 묵상하고 동참하는 사순절 즈음에
사육제의 광란으로 거친 위안을 찾기보다
초록 장미를 염원하는 순정한 마음으로
성 패트릭의 날을 맞는다
오래 잊었던 기다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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