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꾸스코 광장에서

원평재 2012. 6. 1. 11:51

 

페루 여행은 꾸스코에서 출발이다.

또 꾸스코 관광은 중심가에 있는 아르마스(Plaza de Armas) 광장에서 시작하여

미로의 끝에서 마감한다.

 

아르마스는 "병기창"이라는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마을의 중심에는 항상 병기창을 두었기에

동네 한가운데에는 어디에나  "아르마스"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광장을 찍고 또 인터넷이나 활자책에 퍼뜨렸을까.

사진술도 신통치 않은 리포터의 본능은 다른 선택을 찾아본다.

 

라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

 

  잉카 제국 11대 황제 '와이나키팟쿠'의 궁전 터에 세워진 교회이다.

잉카는 왕이 죽으면 새 왕궁을 건립하였다.

죽은자들의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1650년대  대지진후에 재건되었는데

쿠스코의 화가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벽화로 유명.

 

이런 기본적 설명을 뺄 수는 없겠지만 리포터의 시선은 저 키작은 잉카 여인에게 향한다.

꾸스코 인들은 키가 작고 그 DNA는 지금도 일부 유전된다.

영양 상태의 탓도 물론 있겠으나 이곳 지형이 산소가 희박함으로 신체의 각 부분을

심장에 가깝게 하려는 생물 진화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스페인 사람들이 세운 도시의 중심에는 항상 아르마스 광장이 있고

그 정면에는 어디에나 까떼드랄, 즉 대성당(Cathedral)이 서 있는데

특별히 꾸스코에서 짚어 볼 사실은

잉카 제국의 '바라코챠'신전 자리를 허물고 이 까떼드랄을 세웠다는 사실이다.

이 성당 지붕에는 40km 떨어진 곳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남미 최대의 종이 매달려있다. (1659년 제작).

.

 

마침 고등학생들이 행진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키도 크고 건장하였다.

유럽의 피가 섞인 탓이려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진 잉카문명은 1년에 한 번

쿠스코에서 태양제로 부활한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페루의 주요 방송사와 해외 취재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쿠스코 주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태양제만 기다려왔다는 듯이 들떠 있다.

매년 6월 24일, 화려하게 개막하는 태양제가 그것이다.

태양제는 잉카문명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안데스 고산 지대에서 400년을 이어오던 잉카문명은

하루아침에 화포를 사용하는 200여 명의 스페인 군대에 점령당한다.

제국이 몰락한 후에도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 Tupak Amaru가 저항을 계속했지만,

1571년 그가 정복자들에 의해 처형되면서 잉카제국은 역사의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불가사의로 꼽히는 건축물을 남겼고,

외과 수술까지 했던 잉카문명의 편린은 지금도 살아 있다.

 

 

성당 건물의 양 날개에는 벽감이 있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성체 조각들이 있다.

페루의 가톨릭 교도는 전 인구의 90퍼센트이지만

잉카 고유의 다신교 전통이 유형 무형으로 접목되어있어서

남미 가톨릭 국가 중에서도 특히한 분위기가 있다.

 

잉카의 정신이 정복자의 힘 아래에서도 계속 살아있다는 해석과 맞물린다.

잉카의 건축술, 특히 돌 다듬는 기술도 나중에 여기 올려볼까 싶은데

하여간 지진이 일어나도 잉카인들이 세운 기초는 튼튼히 견디는 모양을 보고 놀랐다.

 

 

광장에서는 El Condor Pasa 가 들려온다.

"철새는 떠나가고"로 번안된 가사가 있었으나 페루를 알면, 인디오를 알면,

라틴 아메리카를 알면, 그 정도 번안으로는 택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꾸스코는 해발 4300미터에 위치하여 산소 결핍증,

즉 고산증을 겪을 수 있는 곳이다.

고산증은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증상(병이 아니고)이라는데

나는 감각이 둔한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느끼지 못하였다.

 

미시간에 사는 동생이 보내준 약(Diamox)을 먹어서 효과가 있었는지 몰라도

같이 간 사람들 중에는 약을 먹고도 고생 하거나

안 먹고도 멀쩡한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여성들이 대략 고생을 하였다.

코카 차를 자주 마시면 좋다고도 한다.

그런데 공기가 희박하여 비등점이 낮으니 빨리 끓고 또 식어서

뜨거운 차를 마시기가 힘들었다.

 

라마를 옆세우고 모델로 나온 아가씨들이 1달러에 흥정을 하였다.

촬영 후에는 한 사람 몫이 그렇다고 한다.

인색하게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을 보면~~~.

1달러면 빵을 20-25개 살 수가 있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스페인 식 건축대로 건물에는 내정이 있고 그 속 둘레에 가게들이 또 있다.

남자는 식당에 있고 여자는 주문을 받는다.

  

 내정으로 슬그머니 혼자 들어가면서 가슴이 좀 떨렸다.

 

  결과는 정 반대였다.

 말하자면 내가 이 사람의 집을 쳐들어가는데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

2층 미로의 끝이었는데 아직도 그 함의가 무었이었던지 모르겠다.

 들어간 김에 지붕을 찍었다.

 

이번에는 덜컥 맛사지 집이 나왔다.

방이 여러개 있었는데 잉카 여성이 모두 구경을 시켜주었다.

값은 20 달러로 들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0 솔이었다.

환율은 1:2.6인데 떨려서 계산은 해보지도 못했다.   

하여간 나왔다.

 

 

여기 예수 성상은 브라질의 빵 산이던가에서 본 모습 보다는 훨씬 작은 편(30여 미터)인데,

팔레스타인 인들이 위기 때에 이곳 사람들이 보여준 인간적 따뜻함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한다.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잉카의 깃발이 이곳 저곳 걸려있다.

다시한번 미로 속의 내정을 기웃거렸다.

사진 자료로는 이만한 데가 어디 있으랴.

 

남미의 다른 나라나 북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건축 구조를 보았지만

그곳에서는 혼자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였는데

페루 사람들은 참 순박하다.

 

일단 들어갔다가 다시는 못나올줄 알았는데 그런 떨림은

다행히 아니 당연한 기우였다.

 

이번 미로에서는 문신이나 바디 피어싱,

즉 몸을 뚫어주는 곳과 맞닥뜨렸는데 역시 그냥 무사히 나왔다.

 

 

 

 

 

 

 

저 산위의 십자가는 흔히 동네마다 있는 보편적 구조물인데

페루에서는 저 십자상에도 옷을 입히고 치장을 한다.

이입된 종교와 토착 관습이 합일하는 단적인 싱크로나이징 현상으로 보인다.

 

 

 

 

   

 

El condor pasa-02(48k).wma (1779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