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페루에는 박만복 배구 코치의 전설적 위업이 오랜 배경이 되면서
(페루 최초로 올림픽 메달 획득의 기록, 그것도 은메달)
요즘은 새로이 한국 기업들이 이 나라에서 빛나는 산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실 등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이 남다르다고 한다.
한류의 맥박이 뛰고 또 흘러넘치는 기세라고 하겠다.
구체적으로 "SK 이볼루션"에서는 유럽 기업이 철수한 정유공장과 유전 개발을
인수하여 수십억불을 선투자하고 3년만에 이미 원금 회수가 되었는데
다시 더 많은 투자를하고 있고,
두산의 해수 담수 공장도 예사롭지 않은 규모의 투자를 벌이고 있으면서
산업화에 따른 페루의 물부족 현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현대가 1위, 기아가 3위를 점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리포트 한 바 있다.
삼성과 LG 가전의 제품은 도처에서 예전 우리가 소니 만나듯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기업광고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의 시야를 가릴 지경이었다.
이번 여행 중, 현지에서 듣기에는 수력발전시설에 10억불 프로젝트가 곧 있다고
하더니 이번에 그 현장 조사를 나간 인원들이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발전 사업은 댐을 건설하는 단계부터도 우리의 기술이 빛을 발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대형 터빈에서 부터 정밀 부품까지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제조하여 바다를 건너 끌고 들어오기에 산업 연관 효과가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완성 후의 운영 단계에서도 많은 이윤의 창출은 물론이고
국격 자체를 높이는 모양이다.
고생하여 먼 길을 온 국내 굴지의 기업쪽 높은 사람들이 페루의 이름난 관광지를
구경할 겨를도 없이 비즈니스를 마치고 급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숙연한 마음이
들더라는 현지 가이드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산업현장에서 희생한 분들의 고귀한 넋과 의지를 받들어서라도 이번 수력발전
프로젝트가 꼭 성사되기를 바라며 현장에는 이분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라도 세워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마추피추에서의 여정을 아래에 담아본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를 타고 마침내 마추피추의 산아래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지그재그로 달리는 작은 승합차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가서
다시 마추피추 정상으로 걸어올라간다.
마추피추는 정확한 발음이 마추삑추라고 한다.
감동이 너무 커서 일단 건너편에서 사진부터 한 컷하였다.
마추피추(Machu Picchu)
꾸스코 시에서 우루밤바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114km 내려 간
지점에 수면으로 부터는 400m, 해발 2,280m 지점에, 면적 13천 km² 크기의
잉카 유적으로,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많은 수수께기를 지니고 있다.
원래의 뜻은 케추아족 언어로
"늙은 산"이란 뜻이라고 한다.
마추피추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지금 무어라 설명을 덧부칠 재간은 없다.
잃어버린 도시, 구름 속의 신비체, 허공 중의 왕궁, 공중 부양 도시 등으로 표현을 한다면
수사적으로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삐사로의 추격을 피하여 잉카의 왕이 이 도시를 비밀리에 만들고 수만명의 잉카족들이
숨어서 생활하였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닌가 싶다.
우선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아도 이곳에 수만명이 머물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인골과 짐승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으나 인골의 경우 800여명의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흔적만 있고 남성의 뼈는 출토되지 않았다---.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이 청년 시절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한 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잉카이전의 유물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운이 좋았는지 안목이 좋았는지 삽시간에 전설 속의 이 마을을
찾아냈고 유물 발굴도 순식간이었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자연 유산이고
아울러 세계 新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이다.
저 오른 쪽의 여인은 무념선에 빠진 모습이다.
벅찬 가슴을 명상 속에서 좌시하며 눅이고 있는 모습이 만감의 표현을 대변한다.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계단식 밭을 가꾸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였을까
야생화 몇떨기가 하찮은 인간사를 웃으며 반긴다.
이곳도 석조술이 뛰어나다. 다만 일시에 모두 일군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보완하고 보강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아마도 여러 세기에 걸쳐 축조된 신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물론 꾸스코를 장악한 통치자에 의하여 생활의 터전을 바닥에 깔고 유지해온~~~.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티어 온 이 석조물이 기울어지기 시작한건
마추픽추에 관광 사업이 불붙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차량들이 지반을 흔든 탓이라고---.
이곳의 공무원들도 다 알고 있지만 휴식년 같은건 수입 때문에 어림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내려다 보이는 저 구조물은 하지와 동지의 햇살을 이용한 제식의 장소인듯,
태양을 우러르게 하면서 통치자는 계급과 질서를 유지하였다.
신전의 로비에 해당되는 이곳은 제사장들이 제례와 의식의 준비를 하던 곳이다.
저 벽감이 처음에는 제복이나 제기를 두는 장소로 해석 되기도 했으나
잉카인들이 키가 크지않은데 그렇게 불편한 높이에 그런 마련을 했을리 없었을 것이다.
저 공간의 용도는 아마도 얼굴을 묻고 경전을 외우면 울림과 함께 최면 상태에
들어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저 다락 농법은 단순히 식량을 자급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보다는
일종의 심신 단련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폐허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이들은 또 천문과 지리에도 밝아서 지구 자장을 이용한 에너지 충전 장치도 마련하였다.
기, 혹은 끼를 받고 있는 남녀들~~~.
태양의 후손답게 동지가 지나면서 햇살이 다시 살아나는 궤적을 돌 신전에 장치하여
민심을 잡고 통치술로 이용하였다.
안데스 산의 모형으로 떠다놓고 이곳에서도 제사장들이 제식을 올린곳이라고.
마추피추 성채는 귀족과 평민 계층이 따로 구역을 정하여 살았다.
이곳은 평민의 거소였다.
불편하게 이층 구조를 쓴 모양으로 보아서 나온 추측이다.
감옥의 일부라고 주장되던 곳인데 아마도 장례 의식의 집전 장소가 아니었던가
재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하여간 거석을 파서 각종의 의식에 맞게 만든 모습이 대단하다.
생명줄의 모습은 끊임이 없고---.
잉카의 후예들이 동족에게 호감을 보인다.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과 금방 마음으로 통했다.
콘도르는 잉카인들이 숭배한 대상이자 일치이기도 하였다.
석양이 가까워온다.
이제 다음 기행지로 떠나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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