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인종적으로 남 슬라브계에 속하는 불가리아 인들에게 어쩐일인지 몽골 반점이
많다고 한다.
오랜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 있던 중, 묻어들어 온 DNA 탓인지 모르겠다.
그런 소극적 해석보다 아예 부여족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이곳까지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추"도 이 지역의 특산물이며 요리에 많이 쓰고, 이 나라 역사상 "불가"국이라는 이름의
시대도 있었다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비엔나에 비엔나 커피가 없듯이 불가리아에도 불가리스는 없다고
한다.
그건 우리나라에 있던 유명 상품명이었고 이곳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효소의 정식 명칭은
"불가리쿠스"이다.
이 나라의 수도 이름인 소피아는 물론 지혜의 성녀 이름에서 따온 기독교적 색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부여족이 나라를 세울 때는 수도의 이름을 "사비" 성으로 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공연히 손이 안으로 굽는다. 소피아의 옛 지명이 "소비"였다는 것이 아닌가.
거기 더하여 발칸에서 꽤 큰 강 중의 하나가 "소비"강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불가리아는 키릴 문자를 창제한 국가이다.
불가리아 정교와 함께 키릴 문자는 수백년 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한 원동력이었다 .
소피아 대학내에 있는 키릴 형제 동상
불가리아 - 면적 : 11만1000㎢, 인구 : 890만 명
1인당GNP : 1200불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로 넘어가는 데에는 한시간 반 가량 국경에서의 기다림이 있었다.
이런 낭비가 있다니---.
처음에는 공포까지 따라서 사진 찍기도 겁이났다.
국경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일곱 나라에서 비슷한 낭비의 경험을 하면서 나중에는 국경 사진을 그냥 막 찍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내 등뒤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불가리아 관광은 크게 수도 소피아와 나머지 지역인 벨리코투르노보 성 지역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일단 소피아의 이름난 지역들을 먼저 담았다.
낮에는 벨리코투르노보 성채로 들어갔다가
오후에는 다시 소피아의 대통령 궁 근처를 돌아보았다.
여기 사진과 글은 대략 그런 순서를 따른다.
발칸 여러나라에서는 라틴 알파벳과 키릴 알파벳을 혼용하였다.
유동인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실제로 루마니아를 빼고는 언어가 서로 소통되고 있었다.
소피아로 들어가며 여러 광경을 재미있게 보았다.
불가리아는 원래 항공술도 일찍부터 발달하였다고---.
소피아의 한 모퉁이
우리의 북촌같은 예술의 동네이자 올드 타운
불가리아 전통 가옥은 아래층은 석조 바탕
위쪽은 목조로 지어졌다.
레닌 광장
발칸 국가 중에서도 아직 러시아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곳 같았다.
이른 아침이라 청소차가 다녔다.
테이블 와인을 각 가정마다 정원의 포도 수확으로 만들었다.
내다 파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유 라벨도 붙여놓았다.
부지런한 체험 관광
발칸 전쟁의 상흔이 서서히 눈에 뜨인다.
세르비아쪽으로 이동하면서 더 많은 폐허를 보게 된다.
옛 성이 관광자원이 되면서 길을 닦고 있었다.
길가로는 기념품 상가가 새로 자리를 잡고---.
(계속)
바흐 /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WV1014~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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