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와 누드 시 몇 편

원평재 2013. 2. 1. 22:34

 

 

 

 

 

W.B.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도>가 걸린 피츠버그의 고서적 가게

 

     


    이니스프리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

     

    William Butler Yeats

     


    나는 이제 일어나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나뭇가지와 진흙으로 거기 조그만 오두막집을 한 채 짓고,
    아홉 이랑의 콩밭을 일구며, 꿀벌집도 마련하리라,
    그리하여 꿀벌 소리 요란스런 그 숲 속에서 홀로 살아가리라.

    그곳에서 나는 얼마간의 평화를 느끼리라, 그것이 천천히
    아침장막으로부터 귀뚜리가 노래하는 곳으로 방울져 떨어지고 있으리니,
    그곳에선 한밤중에도 온통 어렴풋한 빛으로 가득하고,
    한낮은 자주 빛으로 타오르리라,
    그리고 저녁 즈음엔 홍방울새 나래소리 그득하리라.

    나는 이제 일어나 가련다,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서 나지막이 찰랑대는 물결소리 항상 들려오고 있으니,
    철로 위를 달리거나 회색 포장도로 위에 있을 때에도
    그 소리 가슴 속 깊이 들을 수 있으니.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이니스프리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도시의 소음과 번잡스러움을 떨치고 한적한 자연에 묻혀 홀로 살고 싶은 마음,
    그 떨쳐버릴 수 없는 소망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전원서정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은 전원에서 쓴 것이 아니라
    런던 한복판을 걷다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거나
    쇼윈도에 마련된 작은 샘 장식만 보아도 향수에 젖어
    이 호수를 떠올리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하면서 그려낸 시라고 한다.

    이니스프리는 아일랜드 Sligo현의 Lough Gill 호수에 있는 작은 섬.
    어린 시절 시인은 아버지와 함께 이 섬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그의 아버지는 쏘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62)의
    [월든](Walden)에 나오는 구절들을 그에게 읽어주곤 했다.
    시인은 그것에 감명을 받아 언젠가는~~~.

     

    쏘로우는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나름의 독특한 삶에 충실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사상가이다.

     

    초절주의는 초월주의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일본인들이

    초월이라는 말이 갖는 다의적 함의를 우려하여 지어낸 표현 같은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꽤 괜찮은 표현같다.


    그는 국가주의에 의한 것이든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에 의한 것이든,
    맹목적인 대중추구의 경향에 저항했다.
    미국이 일으킨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하기도 했던
    그의 비폭력 저항운동 정신은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68) 목사 등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예이츠가 감동했던 구절은 아마 <월든>의 아래와 같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숲에 간 것은 삶을 철두철미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근본적인 사실들과 맞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을 감내하지도 않을 것이다.
    심오하게 살아가며 삶의 모든 골수를 흠뻑 빨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바램은 우리나라 시인 백석(白石)이 지은 <귀농(歸農)>이라는 시와

    그 정서가 합일되고 있다.

     

     

    백구둔(白狗屯)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 가운데
    촌부자 노왕(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최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님자 노왕(老王)한테 석상디기 반을 얻는다.

     

    노왕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울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노왕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百鈴鳥)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
    나는 이제 귀치않은 측량(測量)도 문서(文書)도 싫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 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한테 얻는 것이다. (하략)

     

     

    "이니스"는 원래 게일릭 말로 호수를 뜻하고 "프리"는 작은 섬이라고 한다.

    free를 자유의 뜻으로 해석하여 이니스프리를 자유가 충만한 섬으로 한다면

    조금 과한 확장이라고 생각된다.

     

     

     

     

    예로부터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전원생활에 몰두하였다.

    고대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향촌에서의

    삶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영화(榮華)보다 좋음”을 말하고 있다.

     

     

    얼레지/ 김선우

     

     

    엣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에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 1996년 < 창작과 비평 > 등단

     

     

     

     

     

    스피린 / 양철모

    나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좋다
    있는체하느라 빼는 여자와 달리 시원시원할 것 같아서 좋다
    어설픈, 꽃뱀들처럼 지갑이나 털 것 같지 않은 여자
    사람들이 보든 말든 씨벌 참, 좆같은 세상 삿대질로
    토요일 밤 포장마차 밝혀주는 백열등 같은 여자
    별별 사연 하도 많아 아스피린 끼고 살 것 같은 여자
    나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좋다
    말이 안 통하면 몸이라도 통할 것 같아서 좋다
    어두운 표정 귀신같이 읽어
    저것이 사내라고, 어깨 툭! 날벼락 칠 것 같은 여자
    통한다 싶으면 다 줄 것 같은 여자
    자고 나면 아스피린 사러 약국 갈 것 같은 여자
    나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좋다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 1989년 <대전일보 > 1993년 < 동아일보 > 신춘문예 등단

     

     

     

     

     

     

    이태리 품바/ 진이정

     

    내 팔자 기구하야

    낯선 땅에서 걸인 노릇이라

    마음은 편하리라

    눈치 볼 것 없음으로

    단군 이래

    흰옷 겨레를 갉아먹어왔던 것은

    그놈의 눈치였다

    식민지가 따로 있으랴

    눈치 보는 순간의 내가

    곧 식민지이리니

    이탈리아 거지가

    강남 중산층보단 행복하리라

    나는 떠도는 자이므로,

    피사 사탑의 기울기에 인생을 걸 것이다

    나는 그런 놈인 것이다

    나의 업보를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나는 한껏

    명랑해지리라

    과격해지리라

    발가벗고 뛰어다닐 수 있으리라

    알파벳의 잡지에

    내 알몸이 게재되어도

    개의치 않으리라

    고개를 숙인 채

    깡통에 떨어지는 동전의 뒷모습만을

    걱정할 터이다

    내 검은 하초를

    알아보는 금발의 남녀들이

    푸른 지폐의 관심을 표하리라

    한국은행권에는 결코 반응하지 않으리

    어떻게 놀든

    잔소리는 없으리라

    피사의 기울기처럼

    나는 깔깔대리라

     

     

    - 1987년 < 실천문학 > 등단

     

     

     

     

     

    다시 알몸에게/ 문정희

     

    아침에 샤워를 하며

    알몸에게 말한다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마라

    내가 시인이라 해도

    너까지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제 나는 하루에 세 살을 더 먹었다

    문득 그랬다

    이제 백 년 묵은 여우가 되었다

    그러니 알몸이여, 너는 하루에 세 살씩 젊어져라

    너만큼 자주 나를 배반한 것은 없었지만

    네 멋대로 뚱뚱해지고

    네 멋대로 주름이 생겼지만

    나의 시가 침묵과 경쟁을 하는 사이

    네 멋대로 사내를 만났지만

    그래도 그냥 너는 알몸을 살아라

    책상보다 침대에서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싱싱하게

    나의 방앗간, 나의 예배당이여

     

     

    - 1969년 < 월간문학 > 등단

     

     

     

     

    거짓말/ 문정희

     

     

    가령 강남 어디쯤의 한 술집에서

    옛사랑을 다시 만나

    사뭇 떨리는 음성으로

    " 그동안 너를 잊은 적이 없다." 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참말일까

    그 말이 곧 거짓임을 둘 다 알아차리지만

    그 또한 사실은 아니어서

    안개 속에 술잔을 부딪칠 때

    살아온 날들은 거짓말처럼

    참말처럼 사라지고

    가령 떠내려가 버린 그 많은 말들의 파도를

    그 덧없음을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때 우리는 누구일까

    시인일까

     

     

    - 1969년 < 월간문학 > 등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천안역이었다

    연착된 막차를 홀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톡톡 이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플랫폼 위에서 한 노숙자가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진 군용 점퍼 그 아래로는 팬티 바람이었다

    가랑이 새로 굽슬 삐져나온 털이 더럽게도 까맸다

    아가씨, 나 삼백원만 너무 추워서 그래

    육백원짜리 네스카페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이거말고 자판기 커피 말이야 거 달달한 거

    삼백원짜리 밀크 커피를 뽑아 그 앞에 놓았다

    서울행 열차가 10분 더 연착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전광판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천안두리인력파출소

    안내시스템 여성부 대표전화 041 566 1989

    순간 다급하게 펜을 찾는 손이 있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게서 따뜻한 커피 캔이 만져졌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온다던 그 시였던가

    여성부를 이성부로 읽던 밤이었다

     

    - 1999 < 문예중앙 > 등단

     

     

     

     

    노약자석 웃음 두 개/ 김주대

    아기가 머리보다 크게 입을 벌리고 운다

    목 위에, 터널처럼 뚫린 입만 보인다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제 울음 속으로 아기가 사라지기 전에

    어미는 퍼뜩 한 번 사방을 둘러보고는 젖을 물린다

    어미가 아기의 입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아기의 모가지가 꿀떡꿀떡 어미를 삼킨다

    꼼짝없이 먹히는 어미가 포식자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어미의 웃음까지 한참 먹어 치운 아기가

    먹다 남은 어미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 1989년 < 민중시 > 등단

     

     

     

     

    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다/ 진이정

     

     

    아이야 나의 희망엔 아직 차도가 없구나, 나의 눈물

    도 이별도 사랑도 아직 아직 차도가 없어, 난 약을 타러

    그녀의 집앞을 서성거린다. 아이가 말한다, 그녀는 약

    사여래가 아니잖아요, 약이라니요,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곤하지. 난 부쩍 더 사랑을 느끼고 있단다, 난 보덕각

    시라도 만나 성불하고 싶어, 싶어, 난 욕심만 많았지,

    몸이 따라주질 않는구나, 아이야 난 희로뽕을 먹고 싶

    다, 난 희망을 심하게 앓고 난 연후라 힘이 없지, 양의

    학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는 나의 희망, 난 희망한다, 온

    세상 절망의 마취를, 그러나 미워하지는 말자꾸나, 미

    움의 혀는 일상적인 키스마저 당황스럽게 하지, 난 부

    드러운 것이 좋아, 희망처럼 부드러운 애를 희망의 자

    궁을 빌려 낳고 싶어, 또는 너의 몸을 빌려 희망의 포르

    노를 찍고 싶어, 난 외설스럽게 희망을 원했던 죄로 이

    제는 야한 남자로 낙인 찍혀 있어, 보수반동 세력들은

    내게 돌을 던질 것이다, 예수님은 땅바닥에다 그리스어

    로 이렇게 쓴다, 맞아도 싼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라, 때

    리지 말지어다, 난 감격할 수밖에 없지, 나의 희망은 어

    느 사창굴에서 노숙을 하는 것인지, 인간이란 참 불쌍

    한 존재야, 알을 나온 뒤 힘겹게 바닷가로 기어가는 어

    미 거북처럼, 우린 단 한번 섹스의 댓가로 물레방아의

    인생을 돌아야 하지, 그래도 난 인생이 좋아, 난 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미 저승에 가버린 시인들의 목

    소리가, 소주 냄새에 섞여 퍼져가는 그들의 육성을, 그

    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일인 걸, 불쌍한 나의 희망이여,

    난 너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좋지, 나

    의 희망엔 아직 그 흔한 차도조차 없구나, 난 외로워,

    난 희망보다는 말벗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지, 누군가에

    게 목례를 하고 싶을 만큼 외로워, 진짜 죄인들의 고해

    성사를 엿듣고 싶어, 그래 나는 점쟁이나 작명가가 될

    팔자인가 봐, 나는 희망에게 무료로 올해의 운세를 봐

    주거나 그의 이름을 고쳐줄 수도 있겠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다인가, 아아 언젠가 희망은 내 앞에서 자신의

    팬티를 내리고 있었어, 물론 엉겁결에 당한 일이었지,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해야 했어, 말하자면 내가 수컷이

    므로 희망도 숫놈였던 거야, 참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

    만, 그렇게 해서 나는 희망의 호모가 되었던 것이지, 그

    러니 부디 날 이해해 줘, 남자인 희망의 입속으로 혀를

    들이미는 나를 말이야, 희망을 아직도 그녀라고 부르는

    나를 말이야!

     

     

     

 

 

 

한 잎의 女子2/ 오규원

 

 

-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 않는 전차다

나는 사랑했네 한 女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 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女子, 남대문시장

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女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女子, 단이 터

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女子,

라면이 먹고 싶다는 女子, 꿀빵이 먹고 싶다는 女子, 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女

子, 손발 이 찬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女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女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女子, 화가 나면 머리칼

을 뎅강 자르는 女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女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女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女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女

子, 더러 멍청해지는 女子, 그 女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女子.

 

 

 

 

 

 

 

 

 

 

 

탕진/ 원구식

 

 

내 꿈은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 일을 유난히 잘한다.

그저 무심히 하루를 보내다 보면

생은 저절로 살아진다.

주위에선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훈수하며 타이른다.

신문지 몇 장으로

노숙의 찬 서리를 견딜 수 있겠느냐?

네 영혼이 과연

육체의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그래, 나도 안다.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일단 밥을 먹어야 하고

가정을 무시해야 하며

알량한 직업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시도 쓰지 말고

생의 목적도, 연애도, 사랑도, 증오도

피식! 한 방의 코웃음으로 날려보낼

철학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판단력이 흐려져

머리도 감게 되지 않고

매사가 귀찮아지며,

품었던 생각마저 사라지게 된다.

친구도, 처자도, 부모도

모두 지쳐 떠나고

자잘한 세속의 인연마저 모두 끊어져

마침매 정신이 파탄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불상하도다, 나여!

무일푼이 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드러누울 땅 한 평 없으니

마침내 온 우주가 네것이로구나.

내가 끊어버린 세속의 인연들아.

이제야 겨우 아무런 이유없이

인생을 헛되이 써버릴 준비가 되었으니

나를 너무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라.

나는 난봉꾼도, 노름꾼도, 파락호도 아니다.

나는 앵벌이도, 뽕쟁이도, 양아치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나는

오늘밤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탕진이여,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여,

새로운 시작이여.

 

- 1979년 < 동아일보 > 신춘문예 등단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 아무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 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당분간 이곳 동부지역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맨해튼 한국인의 거리가 다시 한 번 눈에 밟힌다.

 

 

 

한아름은 그 자리에 있으나 갤러리 하나는 사라져 제 자리에 없다.

더 큰 기획으로 잠시 자리를 지키지 않으리라 생각이 미치면서도

아쉬운 마음 가득하다.

익숙한 존재 혹은 그 부재의 의미란 바로 이런 정감인가 보다.


 

 

며칠 전

비록 미세 먼지 가득한 동네이지만

그리운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른 가슴을 열고 북한강변도 다녀왔다.

 

 

 

 

 

 

얼음의 온도 / 허연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너에게 빠지는 일, 천년을 거듭 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대학로에서 열린 한국 소설가 협회 모임에도 참석하였다.

소설 문학의 위기를 주제로 한, 백시종 이사장, 유금호 최고위원의 스피치가 가슴을 쳤다.

아침 드라마의 대본은 일본 만화에서 온다는 세태였다.

 

당분간 낯익은 얼굴들 속에서 봄을 기다린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6.13~1939.1.28)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슬리고(Sligo) 현의
러프길(Lough Gill)호수에 있는 이 작은 섬인,
이니스프리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에게 쏘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월든(Walden)에 나오는 구절들을 읽어주곤 했다 한다 .
--------------------------------------------
예이츠는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전원생활에 향수를 느끼고
언젠가는 호수에 떠 있는 이니스프리 섬으로 돌아가
오두막집을 지어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 한다 .
이런 전원적 삶에 대한 동경은 어릴적부터 간직한 소망이었다고 한다 .
번잡하고 소란스런 도회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이 수체화처럼 담담하게 그려진 서정시-
예이츠의 시와 Jane Grimes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어우려진 하모니 -.
Bill Douglas의 뛰어난 음악성-마치 평화로운 호숫가에 와 있는 느낌이다

Bill Douglas 는 1988년 "Jewel Lake 라는
데뷔 앨범을 발표. 그후 Cantilena , Deep
Peace , Earth Prayer" 등의 앨범으로 그의
재능을 확인 시켰다. 작곡가 이자 피아노,
바순 연주자인 Bill Douglas는 1944년
캐나다 태생으로서 4세에 피아노를 배우고
8세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13세에 바순
연주를 시작했다.그는 뛰어난 음악성을
지님과 동시에 결코 귀와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편안함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해주는
자연 친화적인 음악가라고 일컫는다.

그의 음악이 장르나 감상자의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게 사랑 받고 있는가장 큰 이유는
탄탄하게 짜여진 곡의 구조와 설득력 있는
선율들, 거기에 더해지는 바순,클라리
넷, 오보에와 같은 목관 악기의 절묘한 배치를
통해 순수와 아름다운 세계를그려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음악에는
숲, 바람, 비, 달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평화나 기도와 같은 무형의
테마를 지닌 음악들도 선보이고 있다.

지금 흐르는곡- William Butler Yeats의 시에
Bill Douglas 곡과 아름다운 연주
제인 그라임스(Jane Grimes)의 아름다운 화음이 어우려져
한폭의 수채화처럼 평화롭고 감미롭다




        ♣ 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 Bill Douglas / Jane Grimes ♣






        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 Bill Douglas /Ars Nova Singers





        Place Called Morning(아침이 열리는 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