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상곡
입춘을 앞둔 날 서울 근교의 메모리얼 파크에 다녀 왔습니다.
참척을 당한 친구의 슬픈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미 동부에서는 NBC 방송에도
또 교포 신문에도 크게 나온 비극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지구촌 교회의 목사님께서 성경의 욥기를 말씀하시면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뜻을 펼쳐보여 음미케 하여주십니다.
시나브로 떨어지는 눈발과 산골의 깊은 추위가
상복을 한 모든이들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예리한 슬픔으로 일깨우더니
마침내는 위안의 말씀으로 전달되어서
스스로를 다독이게 하였습니다.
"북한산"으로 시산제를 떠난 지인이 보낸 카톡도 추위에 떠는듯
"북망산"으로 흔들리며 좁은 휴대폰의 화면을 채웁니다.
다만 소쩍새처럼 지저귀는 학생들이 오르내리며 찍는 버스 카드가
우리 지공세대의 늙은이들 카드처럼 두번 삐삐 하며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무한한 위안이 됩니다.
필라델피아의 "민간 영사"라는 봉사직 까지 지낸 고인의 착한 마음은
공연히 이곳에 소개하기가 주저스러울 지경입니다.
이날 안내를 맡은 단정한 젊은이의 모습이 문득 고인으로 착각될 만큼
고인은 봉사의 화신이었습니다.
재작년인가 "울지마 톤즈"라는 시집을 낸 LA의 리사 리 씨의 청탁으로
서사를 쓰며 그분이 토로한 참척의 아픔을 내 못난 글 속에 넣어보았던
추상적 내심이 문득 부끄러운 기억으로 되살아 났습니다.
무얼 안답시고 지혜의 말로 지껄인 행적이 되뇌기에도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멀리 북한산에도,
그리고 북망산에도 희끗희끗 늦은 눈이 모자란듯 내리고 녹더니
자정이 넘자 마침내 쌓였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들중에 별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중에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한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
- 저녁에 / 김광섭 詩(1969년)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노래가 된 시 / 그림이 된 시>
1960년대 말. 뉴욕에 살고 있던
화가 김환기(金煥基)는 어느 날 오랜 친구였던
김광섭 (金珖燮 905.9.22 함북 경성-1977. 5. 23 )의
詩를 읽었습니다.
당시 김환기는 가난과 고독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럴 무렵 긴 투병 끝에 놀라운 기적으로
소생한 김광섭이 펴낸 시집에서 그는 눈이 번쩍 띄는
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의 제목은 <저녁에>...
그리고 그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김환기는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이겨내고
그립고 다정한 얼굴들을 생각하며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어 찍혀지는
점묘화를 그리게 됩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대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
그리고 김광섭의 이 시는
유심초가 불러 노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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