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의 뒤꼍에서
허리케인 샌디가 미 동부를 강타하고 휩쓸어 갈 때에 피츠버그의 딸네에 있었다.
허리케인은 워싱턴 DC와 버지니아를 유린하며 웨스트버지니아에 폭설을 퍼붓더니 핵심은
대서양의 파고를 높여 뉴욕, 뉴저지로 몰려갔다.
거기에는 아들네 집이 있고 직장이 있고 손자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
집이 다행히 해안 쪽은 아니었으나 바로 허드슨 강가, 찰랑이는 물결이 타운하우스 정원으로
남실대는 곳이다.
TV를 보니 당연히 대피령이 내린 지역이었다.
이사 온지 10년간 강가라서 홍수 보험을 물며 한 번도 혜택(?)을 보지 못했던 곳이다.
작년에는 나도 거기 있으면서 허리케인 소동에 잠을 설쳤지만 무사했던 뒤끝이라 무심했다가,
TV를 보며 놀란 가슴이 되어 아들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불통이다.
아들의 휴대폰을 불러보니 멕시코 출장지의 호텔이었다.
며느리와 손자들은 경찰의 대피령에 멀리 추천된 호텔로 잘 갔으니 걱정 말라는 말이지만
그게 말이 되나. 얼른 전화를 끊고 며느리 휴대폰 번호를 누르니 불통이다.
이후 불통은 꼬박 사흘을 계속하였다.
걱정이 쌓이다가 괘씸한 생각으로 발전할 즈음 며느리의 전화가 왔다.
사흘 전 대피령과 함께 경찰에서 소개받은 호텔로 스마트 폰의 GPS를 등대삼아 찾아갔더니
배터리는 다나가고 호텔도 강풍 속에 전기가 끊어지더란다.
폭풍우 속에 사흘을 갇혀 지내다가 비바람이 뜸하여 나섰더니 쇼핑몰 한군데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더라고.
차례가 되어 겨우 5분 지속 정도로 충전을 받아서 애비에게, 또 일시 닫은 자기네 회사 쪽,
아이들 학교, 생필품 확인 등 우선 긴급 연락만 했다는 것이다.
서부의 친정 쪽으로도 위안과 지혜를 구하여 급전을 보냈겠지,
내가 몇 번째 긴급 순서에 든 건지는 묻지 않았고 그저 반갑기만 했다.
아마도 그 5분내에는 내가 들지 않은 걸로 판단이 된다.
하여간 손자 둘과 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아직도 전기, 전화가 불통이고 가스 난방도 불가능이라
둘째는 감기 기운도 있다고 한다.
애비는 아직 멕시코 출장에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에미는 어디냐?”
며느리는 지금 막 출근했는데 맨해튼도 전기가 다 나간 데가 많지만 그 회사는 다행히도 막 복구가
되었다고 한다.
전화 충전도 회사에서 충분히 되어 이제 겨우 내게도 차례가 돌아 왔나보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집에서 떨고는 있으나 마침 전에 돌보아주던 옆 동네 할머니를 다시 불러 맡기고 나왔다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손자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비싼 할머니 신세를 벗어나 제도권에서 탁아가
이루어졌는데 이런 비상사태가 벌어지니 속수무책이다.
제도권은 다음 주 초에나 정상화라고 한다.
일곱 시간을 드라이브하여 우리 부부가 지금 가본들 대책이 있을 리 없고 난민만 둘 더
늘어날 형편이다.
일자리가 끊어져서 몹시 아쉬워하던 그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빌 수밖에 없다.
여기 피츠버그의 하늘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화무쌍이다.
요 며칠은 허리케인 샌디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가을비 추적거린다고 투덜거렸는데
이제는 그 하늘에 감지덕지일 뿐이다.
아직도 백 야드의 푸른 잔디와 거기 떨어져 추레하던 젖은 단풍잎이 갑자기 고와 보인다.
올 한해는 춘삼월에 벌써 부산하였다.
오래전부터 카리브해상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사는 교민들의 요청으로 그곳 문인회가
주최하는 한글 글짓기 공모전의 심사를 이 메일로 해왔었다.
금년에는 시상식 참석과 문학 강연의 초청을 받아서 아흐레 동안 그곳과 그 옆 아이티
공화국을 다녀왔다.
경명애 문학회장의 주선으로 그곳 교민 기업인 두 분의 후원을 받은 9일간은 감동이었다.
4월에는 미 동부 문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워싱턴 브리지가 바라보이는 허드슨 강변의
봄 야유회에서 문학 강연,
5월에는 콜로라도의 교민회 초청으로 덴버의 록키산맥 아래에서 일 주일간을 머물며
강연과 교민사회의 현장을 취재하는 기회도 가졌다.
초여름이 다가오면서는 그동안 꿈꾸어왔던 페루의 마추피추를 중심한 잉카문명 탐방에
나서서 고산증을 극복하며 나스카의 신비한 그림까지 직접 탐구해 보았다.
여름에는 일시 귀국하여 몽골 울란바타르 대학의 최기호 총장 초청으로 한-몽골 문화교류
세미나에 참석하여 발제자로 나서기도 하였다.
서울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쯤에는 발칸반도로 진출하여 8개국을 탐방,
불가리아에 우리 부여족의 피가 흐름을 확인하였다.
서울 체재 중에도 여러 문단행사에 간단없이 참석하여 비어져가는 내면을 채우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가을, 미 동부 아팔라치아의 아름다운 단풍풍경을 렌즈로 담아 여기저기
영상으로 올릴 즈음 이렇게 허리케인의 내습을 직간접적으로 받으며 깊은 감상에 젖는다.
이 나이에 왜 이리 바쁜 걸음인가?
누구는 부럽다고 공치사도 해주지만 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분주하다고 지청구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쉴러는 시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머뭇머뭇 거리면서 내게 다가온다.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
이 잠언이 전하고자하는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의 신념도 덧붙여보고 싶다.
쏜살같은 현재를 다만 얼마간이라도 의미 있게 붙들어서 미래의 머뭇거림에 방향성을
부여하려면 유연하고도 역동적으로 오늘을 유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과거의 의미도 경직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 할 수 있는데 까지 오늘의 보폭을 늘리고 싶다.
금년 말경부터 내년에는 중남미의 도서島嶼지방을 다니며 “크레올” 문학 현상도
알아보고 싶다.
마침내 건강이 지탱하지 못할 때가 되면 들어앉아서 들숨과 날숨이 지속하는 한,
활자 도서圖書라도 들락날락할까보다.
아차, 그러고 보니 아들네의 거라지 까지 발목정도로 물이 찼다가 빠졌다고 한다.
거기 단을 좀 높여서 꽤 많은 도서를 쌓아놓고 있는데 이 물난리를 견뎌냈는지.
그래, 걱정하지는 말자. 인류사의 다음 장은 전자책 시대로 이행한다지 않던가.
만약 활자 책이 모두 결딴이 났다면 모름지기 내년에는 전자책 리더기라도 마련할
작정이다.
이번 허리케인 난리로 그 계기가 마련 되려나?
(끝)
Quintet for Clarinet and Strings
in A major, KV.581
모차르트 /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Karl Leister, Clarinet / The Vienna String Quartet
모차르트의 실내악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찬연하게 빛나는 「클라리넷 5중주곡」K.581은 동시에
이 사랑스러운 클라리넷이라는악기 그 자체에도 빛나는 영광을 부여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악기의 역사는 비교적 짧고, 모차르트가 그 독특한 음색에 착안한것은
이것이 생겨난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당시에는 마치 오케스트라라는 연주 형태의 성장기라고도 할 시기에 해당하며,
여러가지 시도 끝에 그 하나로서 이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도 도입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악기를 위해서 작품을 쓰는 작곡가들도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 악기는 수수하고 두드러지지 않은 신참자일 뿐이었습니다.
이 악기가 가진 가능성이 최대한으로 추구되고,
매력도 최대한으로 발휘되게끔 되기에는 역시 모차르트의 K.581의 5중주곡과
또 하나 같은 모차르트의 K.622의 협주곡의 등장을 기다려야만 했었습니다.
실내악의 진수를 전해주는 이 장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곡은
모차르트가 33세인 1789년 가을에 작곡하였습니다.
속칭 '시타틀러 5중주'라 불리는 이 곡은 위에서 소개드렸던 '아다지오'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2년 앞둔 시기의 작품으로서 최고의 걸작입니다.
실제로 명곡이라 불리우면서 인류에게 사랑받는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그의 만년 5~6년 시기의 것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빚에 쪼들려 소액의 고료를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만 했고,
아내는 병들어 온천을 전전하리 만큼 만년의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으나,
그러한 고통을 '아다지오'와 마찬가지로 이 곡에서도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수채화처럼 맑고, 그리고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애수가 애잔하게 흐르는 감동이 있습니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현악 선율을 바탕으로 로맨티시즘을 가득 담은 우수의 클라리넷 선율은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음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를 찬란하게 샘솟게 합니다.
사랑으로 번민하는 소녀의 두눈에 가득고인 눈물 같은 아름다움 때문에
더 한층 감동을 주는 클라리넷의 음색에 귀 기울이지 않을수 없습니다.
클라리넷을 주축으로 한 실내악의 역사를 통털어 볼 때 이 음악에 도전하고 대적할 만한 작품은
1세기 후에 쓰여진 브람스의 5중주에서나 찾을 수 있을 만큼 이 장르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곡은 1789년 9월 29일 비인에서 완성됐는데 만년의 그의 심정을 이 클라리넷 악기로 표현하였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한 때였는데
그의 친구 안톤 시타틀러 (Anton Stadler 1753-1812)의 청탁으로 이 곡을 썼습니다.
이곡으로 그는 적지않는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편성은 클라리넷, 바이올린2,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를 사용했습니다.
전곡 연속듣기
Karl Leister, Clarinet
The Vienna String Quartet
1악장 (Allegro)
Karl Leister, Clarinet
The Vienna String Quartet
2악장 (Larghetto)
Karl Leister, Clarinet
The Vienna String Quartet
3악장 (Menuetto-TrioⅠ-Trio Ⅱ)
Karl Leister, Clarinet
The Vienna String Quartet
4악장 (Allegreto con VariazioniⅠ- Ⅳ- Adagio -Allegro)
Karl Leister, Clarinet
The Vienna String Quartet
Karl Leister, Clarinet (1937-G.)
클라리넷 주자였던 아버지에게 13세부터 클라리넷을 배웠고,
1953년부터 4년간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고이저를 사했습니다.
재학중에 이미 솔리스트로서 활약하였고, 57-59년까지 베를린 코미세오퍼의 수석 주자를 지냈습니다.
59년 이후 베를린 필하모니의 독주 클라리넷 주자가 되었으며,
66년 베를린 필오케스트라의 멤버로서 첫 극동 공연을 했습니다.
현재는 베를린 필오케스트라에 있으면서 솔리스트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실내악 분야에서도 베를린 필오케스트라 관악 Ens베과
베를린 필오케스트라 목관 졸리스텐, 앙상블 빈-베를린 등
여러 앙상블의 일원으로 국제적인 연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악기는 월러(Oehler)식 불리처인데,
독일 전통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은근한 음향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문예학술 저작권 협회 총회가 있던 날 (0) | 2013.03.10 |
---|---|
BBB 운동과 선진화 포럼 (0) | 2013.03.05 |
벌써 가을 컬렉션 (0) | 2013.02.25 |
인사동 불난 터 (0) | 2013.02.22 |
해바라기 보던 날 (0) | 201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