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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내 마음의 편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원평재 2013. 10. 18. 17:55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녹청의 계절은 어느덧 지나가고 적황의 계절이 시월의 산천을 물들인다.

캐나다의 퀘벡 지역이나 미국 북동부 단풍 벨트는 넓은 땅의 규모로 위풍당당하지만

우리나라의 설악과 내장은 빼어난 기품과 다양한 색조로 북반구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다. 가을은 그래서 행락의 계절이다.

한편 뜨거운 여름을 시원한 가을바람으로 날려 보낸 야외 스포츠도 최후의 승자를 겨루는

파이널 게임을 향하여 하루라도 거르면 아쉽다는 듯 관중석을 가득 채워내고 있다.

전시장과 공연장으로도 여름 열기에 주눅 들었던 발길들이 지금 분주하다. 이런 정황

속에서 노란 은행나무 잎새 사이로 내걸린 “가을은 독서의 계절‘ 문구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아니 그런 공허한 느낌이 드는 자신이 그 무엇인가에 대한 배신자 같은 자괴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도 가을은 정말 독서의 계절인가.

 

통계적으로 보면 가을은 분명 "비독서의 계절"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활동적 동선 위에서 분주한데 독서 대에 차분히 앉아있을 겨를이 어디

있을까.

가을에는 여름보다 15퍼센트 정도 도서 판매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독서의 계절”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좋은 계절에 너무 놀러만 다니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권고사항이자

격문의 성격이 아닌가 싶다.

또 나처럼 놀러만 다니면서도 책을 읽는다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허구이기도

하리라.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였지만, 법정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설파하며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셨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하다. 이 좋은날에 그게 그것인 정보와 지식에서 좀 해방 될 순

 없단 말인가. 이런 계절에는 외부의 소리보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제격일 것 같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

주신 말씀은 표면적인 뜻보다 새겨들을 내용인가 한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뿐인 듯하다.

당나라 대문호 한유 등이 등화가친을 말하고 농경문화의 전통이 강한 중국에서도 지금은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는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시각으로는 일본 강점기 중에서도 문민 통치 강조시기인 1925년에

일본 총독부가 서울에 도서관을 설치하면서 그 개관 날짜가 마침 계절적으로 가을에 맞물려서

"독서의 계절" 운운하였고, 이를 당시 우리말 신문, C 일보와 D 일보가 맞장구를 친 게 그

유래라고 보고 있다.

역사적 고증 여부와는 별도로, "그 기원을 보면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우리가 독서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는다면 좋은 일에 감정이 틈입하는 듯하다.

국가적으로 일본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것은 미국을 본받은 모양같다.

미국에는 물론 그런 “계절”이 따로 없지만 <독서 주간>이 방방곡곡의 사정에 따라 설정이 되고

지역성에 맞추어 캠페인을 벌이는데 마침 일본에서는 이를 국가적으로 원용하게 되었다는

시각이 유력하다.

하필이면 절기가 가을인가라는 데에는 자의적 해석들이 따를 것이다.

조금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미국에는 “금서주간(Banned Books Week)"도 있다.

내용인즉, 책을 금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과거에는 금서 목록이 존재하였고 또 책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책을 더 읽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한편 돌이켜 보니 예전에는 내가 읽을 책을 찾으러 서점을 다녔으나 요즈음은 손주들을 데리고

책방을 향한다. 아니 따라다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맨해튼이나 뉴저지의 <반슨 노블(Barnes & Noble)>을 다녔는데 지금은 피츠버그와 그

인근 도시의 체인점으로 간다.

뉴저지 아들네 집 인근의 꽤 큰 "반슨 노블" 서점은 작년도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기 피츠버그 인근의 열세 군데 반슨노블 서점은 겉으로는 탈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소식으로는 이 서점 체인도 분기 실적 발표에서 8천700만 달러의 순손실을 냈고 온오프

분사 계획도 무산되었다고 한다.

큰 서적상 보더즈(Boders)는 3-4년 전이던가, 회사 자체가 부도가 나면서 전부 파산을 하였다.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건너편의 그 큰 간판이 내려질 때는 문명의 위기감 같은 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분서갱유”와 “문화대혁명”의 인고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전통적인 책방이 문을 닫는 현상으로 문화의 흥망성쇠를 섣불리 논할 수는 없으리라.

 

미국의 경우 대형 양판장, 예컨대 월마트나 자이언트 이글 같은 데에서의 서적 코너는 예전의

일반 책방 보다 규모도 크고 효율적이며 함께 있는 전자 코너의 e-북 리더기 등과 조합하여

새로운 전자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은 우리나라의 대형 서점에서도 기선을

제압하였다고나 할까, 새로운 미래의 지평으로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형세를 본다.

이제는 인쇄와 출판문화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들이닥치는 조짐을 느낀다.

오죽하면 동네 책방에 손님은 보이는데 책은 팔리지 않는 현상이 나올까.

책방에서 책을 훑어보고 책 주문은 인터넷 서점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가을, 단풍 여행길에는 활자책이든 전자책이든, 아니 각각 한권씩 필히 지참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Claude Choe - Blue Autumn(우울한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