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소설가의 "리투아니아 여인"이 현지 리투아니아 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소식을 전합니다.
3년여에 걸친 난산 끝에 나온 결과이고 언어 사용 인구로 보아 결코 많이 팔리지 않을 악조건에서
집념으로 이루어낸 결과인가 합니다.
계간 문예지 <문학의식> 가을호에 올린 리투아니아 기행문도 올립니다.
음악은 리투아니아 출신 "이네사 갈란테"의 "아베 마리아"입니다.
리투아니아 공화국 대통령 궁
리투아니아 기행
발칸 7개국 여행이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이제는 발틱 3국이
흔한 말로 "뜨는" 추세이다.
두 지역이 발길을 끄는 까닭에는 두루 몇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기호와
문화수준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단순 관광을 재치고 보다 다른 요소, 예컨대 역사의식
같은 것이 발동하는가 싶다. 그것도 영웅호걸이 호령한 거대 국가 지역 보다는 우리처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내기 위하여 역사의 단련을 호되게 받고 그 치열한 형상을 간직한
나라들, 말하자면 요새 뜨는 나라들이 바로 그런 예가 될듯 싶다.
여행도 이제는 먹고 마시는 공간의 확보가 아니라 연민과 공감과 동감의 기회 포착에
그 중심을 잡고 있으니 여행사나 가이드들도 더욱 분발할 일이 아닌가 싶다.
발틱 3국은 특별히 역사나 지리에 흥미를 갖지 않은 사람으로는 그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다.
관광사에서는 흔히 "에-라-리"라고 통칭하는데 순서는 음운상 그리 된 건지 북해 쪽에서
아래로 내려 부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력의 등급은 아닐 것이다. 내 경우 인상적 순서라면
리투아니아를 맨 앞에 두고 싶다.
고백컨데 이문열 작가의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지만
호수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트라카이 성채, 또 저 기이한 십자가의 언덕(Hill of Crosses),
그리고 수도 빌리우스와 제2의 도시로 내려앉은 타우나스의 갈등, 등등이 내 시야와 의식계를
어른거리는 탓도 큰 것같다
특히 대소항쟁의 상징 십자가의 언덕은 독립을 쟁취한 지금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사유를 이끌어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개별화가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집단화에
의지하려는 인간 본능의 적나라한 표출은 아니겠는가---.
리투아니아로 들어가며 쓴 일기를 열어본다.
"리투아니아로 들어서서 수도인 빌니우스로 향한다.
간간히 비를 만난다.
원래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은 리에뚜바에서 나왔는데 뜻은 "비"라고 한다.
자살율이 세계 1위,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을 가리키는 "자뽕"이라는 말도 있다고한다.
마약이 심하여서 매일 주사기를 돌려가며 맞는 족속들도 있다고한다.
전에 북유럽 3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다닐 때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것 같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않지---."
리투아니아는 북유럽(북위 55도)에 위치한 인구 3백만의 조그마한 나라,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1/3수준이고 국민소득은 2만불,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는데, 지금은 나토와 유럽연합(EU)회원국이다.
러시아, 독일, 폴란드 등 지역의 강국과 인접해 있는 약소국으로서 이민족 지배에 의한
피점령 역사로 점철되어 있는 고난의 역사,
빌니우스는 인구 528000명의 리투아니아 수도로 발음나는대로는 빌뉴스 혹은 빌리우스 등
인데 Vilnius라는 뜻이 어쩌면 "새마을"이 아닌가 싶다. 이전의 수도는 카우나스였다니
더욱 그러하다. 한편 카우나스는 역사적으로 수도의 위치를 갖고 있다가 새마을에 모든
것을 빼았긴 아픔을 간직하고 시민들은 항상 불온한 심리상태를 유지한다니 세상사 모두
만만치가 않다.
반대로 빌리우스는 오랜 역사적 위상을 되찾아온 느낌이다.
도시를 지키는 요새, "새벽의 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러시아 정교회, 성 카지미엘스 성당,
빌리우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부를 자랑하는 성안나 교회, 리투아니아 대통령궁, 빌리우스
국립대학교, 젊음의 거리인 보케츄거리, 성배드로 바울 성당 등 옛 문화의 화려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대국 사이 피점령국으로서 고난의 역사를 이제는 떨쳐버리고 지금은 평온한
도시로 옛 모습의 일부를 보여준다.
카우나스로 달려가면서 아름다운 호수의 성채 <트라카이 성>도 들러본다. 요트를 타고
들어가 본 꿈결같은 곳이지만 함께한 집사람이 지갑을 도난 당한 험한 기억을 추억으로
만든 곳이기도하다. 유럽이 대통합을 이루면서 외지인 좀도둑들이 늘었다고도 한다.
트라카이 호수 성을 떠나 리투아니아의 북부 시울레이에 있는 십자가 언덕으로 향한다.
리투아니아의 독립 전쟁사 중에서도 최근세사인 1918년의 희생이 계기가 되어 이곳
언덕에는 십자가 동산이 생겼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의지를 꺾고 기독교 신앙을 말살코자 낮이면
불도저가 언덕을 밀었고 밤이면 사람들이 다시 세우는 십자가의 전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독립을 이룬 지금은 개인적인 추도의 뜻과 기원을 담아서 십자가를 이곳에 심으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다고 한다. 몇 년전만 해도 규모가 지금의 1/3정도였는데, 최근의 추산에
따르면 십자가 수가 5만여에 이른다는 집계도 나왔다.
1993년 로마교황 성하의 방문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제 이 신산한 역사의 나라는 "리투아니아 여인"이라는 소설 속에서 김혜련이라는
주인공으로 육화되어 그 신산한 기시감을 반추케 한다.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며 리투아니아인이기도 한 그녀, 뮤지컬 음악 감독 ‘김혜련(Helen Kim)'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지니고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서, 또한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매스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부상한다.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과 3년 만의 파경, 그리고 눈부신 성공
이면의 좌절, 또다시 이 땅을 떠나고야 마는 고독한 유목민적 예술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주인공 김혜련의 할머니는 1940년대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당시 둘째 딸만 겨우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미국에서 자란 혜련의 어머니는 대학에서 한국 유학생과 결혼해 혜련을 낳았다.
이렇게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혜련은 한국과 미국에서 자라며 다국적
정체성을 갖추기도 하였고 혼란스러움 속에 빠지게도 된다. 그리고 신산한 삶의 여정을 걷는다~.
사족을 붙여본다.
나레이터는 이문열 작가 자신이라든지, 리투아니아 여인은 박칼린 교수의 분신이라는 말도있다.
나레이터가 글 중에 한국의 홍위병에게 당한 한국판 "문화혁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더욱
작가와 주인공의 이중인화 억측을 자아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또 두 등장인물 간에 단 한번의
근친상간같은 관계가 있었다는 대목에서 속물적 확인 충동도 잠시 일어나게 하지만 모두 작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고 작가들이 겪는 수모일 수있다.
"리투아니아 여인"은 현지 한국 교민의 번역과 빌뉴스 대학교 교수의 감수로 얼마전에
리투아니아 어 판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강인하게 보존되어 온 고유어의 존재에 찬탄하며
어려운 언어로 번역에 임해 온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다시한번 리투아니아를 생각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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