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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상 잔상

원평재 2014. 10. 20. 10:32

 

 

 

 

 



외솔상 시상식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놀랐다.

중고등학교 때에나 열심히 들었던 그 이름 외솔~

지금은 마치 과거의 어느 시점과 그 가상 공간에서나 존재하는가 싶었던 존함.

그런데 서른여섯 번째 외솔상 시상식이라니~!

금년도에는 친교와 존숭을 마지않는 울란바타르 대학 전임 총장

최기호 박사께서 수상한다는 반가운 전언이었다. 

국어학자인 최 박사는 울란바타르 대학에서 총장으로 봉직할 때에

"한-몽골 문학 세미나"를 개최하여서

전공도 아니면서 발제 및 패널로 나갔던 기억이난다.

 

계간 문예지 "문학의식"을 중심으로 문학적 연대를 갖는 여러분들이

그때 함께 울란바타르 대학을 방문하여 그쪽 학자들과 정겹게

양국의 문학적 관련과 공통된 뿌리를 찾는 논의를 나누며 이어 문화탐방도 하였다.

최 박사는 지금 그곳에 석좌 교수로 봉직하며

한-몽골 관련 학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는데 

귀국시에는 인사동과 낙원동에서 지인들과 한유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외솔 선생께서는 지금으로 부터 120년전 10월 19일에 탄생하였다.

시월 상달에 외솔상 수상식이 연면히 내려오는 연유는

외솔의 탄신일과 유관하다.

거기에 덧대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하신 절기와도 맥이 닿으니 그 의미로움을

더욱 다행스럽다.

시상식장이 세종문화회관 안의 예인홀인 점도 뜻깊다.






부인께서도 나오셔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하였다.


 

애국가는 1절도 생략하는 의식 절차가 십상인데 이날은 오랜만에 정말 4절까지 모두 불렀다.

당연한 일이 기이하였다.

 

순서에 따라 "외솔찬가"도 있었다.

외솔찬가는 그간 작사 작곡 등등에서 친일 인사들의 이름이 거명되며 말이 많았는데

이날 들은 노래는 무게감과 흥겨움이 함께하였는데 처음에는 그런 상식이 없이

무심코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나서 사회자가 "이번 시창이 어떻게 들렸느냐?"고 묻는 말이 생경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전말과 관련이 있는 언급이었던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 확인해 볼까한다,


 




 

 

이날 수상자로는 문화부문의 최 교수 말고도 공로부문에 유동삼, 이수열님이 함께하였다. 

 

최홍식 외솔회 이사장께서 시상을 하였다.

 

부상은 최 박사의 부인께서 받으셨다.
일천만원이라는 거금이었다.




 

모처럼 나가본 세종문화 회관에 현대풍의 데코레이션이 덧대어져서

보기에 좋았다.





이날 약속이 중첩되어서 만찬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 국립 국악원 우면당에서

판소리 고법을 들었다. 




주말에는 단풍 구경에 나섰다.
길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는데 설악산 가는 길과 갈라지는 데에서

겨우  중부 고속도로가 구실을 하였다.


가을 걷이가 한창이었다.




목적지는 문경 새재였다.

아직 단풍이 불타는 단계로 들지는 않았고

불을 지피는 정도랄까~~~.



이대 고사리 수련원은 아직 단풍 불이 붙지 않았다.


 

봉직하던 대학의 ROTC 선후배가 일년이면 몇 차례 야외 행사를 갖는데 이제 선배들을 봐주느라고

산행은 줄이고 트래킴을 하는데 아직은 후배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















안흥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깃발이 눈에 띈다.

안흥 찐빵의 그곳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선생님-학부형-학생 들로 조직된 트래킹 팀이라고 한다.

사진을 많이 찍어서 올리시고 

안흥 찐빵도 많이 사서 드시라고 한다.

학교를 위하여, 또 지역 사회를 위하여 PR의 선봉에 나섰다고 한다.


문경이라고 하면 사과의 고장이다.

예전 내 고향 대구 사과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안동에서 큰 사과밭을 가꾸는 친구 생각이 난다.

사과 생육 선이 북상한지도 오래된다.

연변 과기대에 한학기 체류할 때에는 그곳의 "사과배(핑구어리)" 밭도 보았으니

문경 사과에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문경 사과 맛이 대단하다~~~.








꿀 사과 맛을 전하며 이번 리포트 마칩니다.


트래픽에 걸려서 문경 온천 벨트에 속하는

"앙성 온천"의 온천욕은 생략하고 돌아온 

역전의 장교단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