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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스털링 성에서

원평재 2016. 8. 24. 15:01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공항으로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들어갔다.

잉글랜드 지역은 몇차례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북 아일랜드를 모두

아우르는 여행이었다.

유나이티드 킹덤(UK)으로 통칭되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실은 얼마나 복잡한가.

월드컵 때만 하여도 각 지역별로 유니폼을 달리하여 뛰어나오는 나라~.

이번 올림픽에는 또 각 지역별로 선수를 안배하여 GBR의 이름으로 출전하고---.


화폐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달리 여왕폐하를 외면하고 역사적 독립투사들의 얼굴을

파운드화에 올려놓지 않는가.

물론 화폐가치는 여왕폐화의 화폐와 같은 값을 유지하지만.



위에 투구를 쓴 로버트 1세(Robert I, 1274년 7월 11일~1329년 6월 7일), 또는 로버트 브루스(중세

게일어: Roibert a Briuis, 현대 스코틀랜드어: Raibeart Bruis, 영어: Robert Bruce)는

스코틀랜드의 왕이다.

1306년에 왕위에 올라 23년 동안 스코틀랜드를 다스렸다.

14세기 초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을 이끌었으며, 1314년 6월 23일에는 에드워드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대의 침공을 배넉번에서 막아 낸 배넉번 전투를 지휘하였다.

현재 스코틀랜드의 사실상 국가인 스코틀랜드의 꽃의 가사는 이 배넉번 전투를 다루고 있다.

스코트랜드의 국화는 엉겅퀴 꽃이다. 날카로운 침이 많은 이 꽃이 영국군의 침투를 막았다는

일화가 따른다.


여왕 폐하가 그려진 영국의 파운드 화.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은행에서는 유로화와 달리 둘다 폄하되어서 한화로 되바꾸려면 각 은행의

본점까지 찾아가야된다.  


비행기의 첫 기착지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멀지않은 글라스고우,

그 인근에 피어린 역사의 스털링 성이있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북서쪽에 위치한 스털링은 인구 1만명이 채 안되는 고도(古都)이다. 

 도심 북쪽 가파른 절벽 위로 우뚝 솟은 스털링성이 압도한다. 



스털린 성을 찾기 전날 밤, 우선 던블레인이라는 작은 마을의 호텔에서 일단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성황이어서 치마같은 전통 킬트 복장의 하객들이 흑맥주를 마시며

환영 인사를 한다. 치마의 체크 무늬를 그들은 타탄(tartan)이라고 불렸다.





다음날 찾은 스털링 성의 입구는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동상이 지키고 있다.

로버트 브루스는 14세기에 잉글랜드 군대와 싸워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쟁취한 인물이다.

스털링 성의 성루에 올라서면 당시 독립전쟁이 벌어졌던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 안의 군사 박물관에서는 스코틀랜드 병사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성벽을 따라 당시의 격전지를 겨눈 대포는 그 당시 독립을 향한 스코틀랜드인의 열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털링 성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스코틀랜드 독립항쟁의 전설적 영웅 윌리엄 월리스와 그를 노래한

여러 이야기에 따른다. 최근에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로 더욱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자유에 대한 해묵은 명제를 더욱 우리의 가슴에 인각시키기도 하였다.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스코틀랜드 게일어: Uilliam Uallas, 1272/1276년 ~ 1305년

8월 23일)는 스코틀랜드기사이자 독립영웅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에서 활약하였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실존 모델이기도 하다.

앤드루 머레이(Andrew Moray)와 함께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에서

잉글랜드 군을 패퇴시킨 공으로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로 임명되어, 폴커크 전투(Battle of Falkirk)

때까지 이 직을 유지하였다.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게 패배한 후, 7년간

숨어 지내다가 스코틀랜드 귀족의 배신에 의해 발각되어 글래스고(Glasgow)의 부근 로브로스톤

(Robroyston)에서 포박당하고, 잉글랜드의 런던으로 넘겨져 처형되었다.


스털링성은 본래 나무로 돼있었으나 현재의 성은 16세기에 돌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영화속의 스털링전투 장면은 주로 벌판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실제 전투는 스털링성과 스털링

다리에서 치열했다고한다. 도시 한가운데로 포스강이 흐르고 그 위로 스털링다리가 놓여있다.

7백년전 핏빛으로 물들었을 강은 이제 푸르다.






강너머엔 월리스 기념탑(높이 90미터)이 솟아있다. 1869년 탑이 세워질 당시 10만여명의 군중이

참석했다고 하니 그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애착을 짐작할 수 있다.

기념탑 안에는 그의 장검이 보관돼 있다. 잉글랜드군에 잡힌 월리스의 육신은 심장이 도려지고 

 네토막으로 잘려 스털링, 퍼스, 록스버그, 버윅으로 보내졌다.




































잠시 브레이브 하트의 자리에 서보다가 발길을 옮긴다.

그레트나 그린이라는 동네로 향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접경지대이다.





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법율이 달라서 영국에서는 미성년에 속한 젊은이들이 접경인

스코틀랜드의 이곳 그레트나 그린으로 와서 이른 결혼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교회가 붐빌 때에는 대장간이나 마굿간에서도 성직자를 모시고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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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강한 스코틀랜드, 그들의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

      


글라스고우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맨 나중으로 돌리고 이제 발길은 레이크 디스트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 등이 거주하였던 호소지방(호반, 호수지방)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