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지역 탐방 3)
루마니아 드라큘라 성 (흡혈귀는 호국과 신자유시장 경제의 드라마)
루마니아의 트랜실바니아 지방에 있는 브란 성은 드라큘라 백작 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드라큘라 성은 고딕 공포소설, 요즘 말로 장르 소설의 고전적 바탕으로 꼽히고
마침내는 괴기 영화, 장르 무비의 전형적 배경으로도 군림하게 되었다.
그건 그렇지만 이 기괴한 성을 소개하는데에 "호국과 신자유 경제정신"이라는 거창한 테마를
동원한 것은 과한 비약이 아닐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유럽 국가들은 동방으로부터 쏟아져들어오는 인종적, 종교적 침략으로
부터 항상 나라를 지켜야할 역사적 숙명을 안고 있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동원 할 수 있는
정책 중의 하나가 주변을 향한 공포와 괴기 분위기의 확산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드라큘라 성은 또 무슨 관계인가?
오랜 공산주의 통치 아래에서 이 성은 국가의 소유가 되었으나 동유럽이 자유화 되면서 원래
왕족 가문의 상속과 증여 문제로 소유주가 유동적이 되었고 관리 유지 자체가 벅차 매물로
나오기까지 한다. 여기에 세계화 경제에 밝은 미국인 전문 경영진들이 눈독을 들였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펀드를 모집하여 성을 개축하고 세계적으로 판촉 광고도 하여서 특히
아시아의 일본, 홍콩, 한국인 관광객들을 유혹하였다. 드라큘라가 부시시 잠이깨어 경제적
흡혈의 워밍업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마침내 중국 대륙의 관광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 만세, 드라큘라가 외치고있다.
드라큘라에 대한 개인적 감상은 중학생 때부터이던가,
헐리우드 키드는 아니었으나 재개봉관에서 가슴 두근거리며 몰래 본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크리스토퍼 리 가 주연한 음습하고 무서웠던 영화에 대한 회고조의 기분은 이제
드라큘라 전설이 갖고 있는 가학적, 피학적 상징성을 캐보는 현학 취미로까지 성장하여
발칸반도의 이곳까지 진출하였으니 조금 실소도 나온다.
5층에 달하는 성채안에 자리한 가구와 비치물들은 물론 모두 새로 들여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도 성채 자체는 값싼 세트가 아니고 실물이어서 반갑다.
부실부실 내리는 비도 물론 소방 호스에서 나오는 가짜가 아니어서 위안이 된다.
브란(Bran)성은 1212년 독일 기사단의 요새로 만들어졌는데, 15~16세기에 이곳 트란실바니아
의 교역의 안전을 위하여 지방 상인들이 중수하였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1920년 루마니아 마리
여왕(1875-1938) 에게 성을 바쳤고 여왕 사후 그의 딸 일리아나공주(1909-1991)에게 상속되었다.
앞서 말한바대로 한때는 공산정부에서 국유화(1956년)하였다가 2006년 5월에 후손 도미니크 폰
합수부르크에게 반환 되었다고 한다.
드라큘라의 원형이라고 하는 블라드 테페스(Vlad Tepes, 1431 ~ 1476)는 공식으로는 왈라키아
공이었다. 루마니아 역사상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용장으로 유명하고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1431년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의 슈왈츠부르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블라드 드라쿨은 터키와 영원히 싸우기로 맹세한 용사단의 일원이었다.
13세때 블라드 테페스는 투르크인에게 잡히고 거기서 고문과 사람들을 꼬챙이로 꿰는 형벌을
보게 된다. 그가 포로와 정적들을 꼬챙이에 꿰어 죽인 행적은 이때에 배운 것이라고 한다.
그는 독실한 그리스 정교의 신자였다. 투르크 제국의 침입에 맞서 용감히 싸운 그가 벌인
공포정치는 루마니아 정서로는 수용 가능한 것이었다.
브란성(드라큘라 성)이 오늘날 유명해진 것은 그냥 스스로 된 것은 아니었다.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일랜드 작가 B. 스토우커의 호러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 Vampire
Dracula〉(1897)가 바로 그 근본이다. 트랜실바니아 지방의 한 고성(古城)에 혼자 사는
드라큘라 백작이 있었다. 이 성을 방문한 영국인 하커는 백작이 낮에는 관 속에서 자고 저녁이
되면 일어나서 사람을 덮치는 무서운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흡혈귀에 피를 빨려 죽은 피해자 역시 흡혈귀가 되어 불사자가 된다. 흡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마늘과 십자가, 태양 빛이며 그들의 영혼에는 안식과 평안이 없다. 여담이지만 오늘날의
드라큘라는 이 세가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만담이 되어서 여기 올리기가 거북
하니 상상에 맡겨본다.
이 작품은 1927년 H. 린에 의해 연극으로, 1931년에 T. 브라우닝에 의해 영화로 각색되었고
그후 여러 편의 공포영화가 나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또 벨라 루고시, 크리스토퍼 리 같은
유명한 드라큘라 배우를 배출했다.
고딕 호러 소설의 대명사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엄청난 악이 기독교적 질서를 위협한다는
19세기 후반의 수많은 공포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절대 악의 화신 드라큘라 백작과 그를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분투하는 빛의 전사들이라는 설정은 표면적으로 선악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드라큘라는 죽음과 쾌락을 동시에 안겨다 주며, 가학과 피학 음란증의 은유로까지 발전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만인의 행복론이 또다른 흡혈론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중정에 보이는 저울 모양은 정의의 상징이자 고문과 학대와 살해를 위한
보조역할이었다.
우물은 항상 미로와 통한다.
두레박과 줄은 사라졌지만 도르레에도 십자가는 남아있다.
드라큘라 성을 나와서 조금 달리다보면 집시 마을이 있다.
발칸 전쟁 와중에는 서유럽으로 많이 빠져나갔다가 EU가 불황에 빠지고 이곳 루마니아에는 다시
평화가 오자 많이 돌아왔다고 한다. 루마니아는 집시들에게 관대한 역사가 있다.
집시 아가씨가 물건을 판다.
|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명희 문학관에서의 발제 전문^^ (0) | 2016.10.23 |
---|---|
문학의식 가을호 (수필과 시) (0) | 2016.10.09 |
국제문예 가을호 (시 두편, 논단 하나) (0) | 2016.10.04 |
삼별초와 율도국의 오키나와 탐방 (미래시학 가을호) (0) | 2016.09.30 |
제2회 한글작가대회와 경주 재난에 대한 선언문 낭독 (0) | 2016.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