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스탄의 암각화
기록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유한한 존재라는 한계로부터 무한과 불멸을 갈망하게된 데에 그 근원이 있지 아닐까
싶다.
세상 곳곳에는 인간이 남긴 오랜 기록물들이 남아있다.
그 규모가 크고도 오랜 곳은 문명의 4대발상지 등이라고 하여 교과서에서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이 보다는 규모가 작고 잘 보존되지도 못하고 외진 곳에 있어서 그 진가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못한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코카사스 산록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의
고부스탄 지역도 바로 그런 지역이 아닌가 한다.
고부스탄은 바쿠에서 남쪽으로 약 64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바쿠를 벗어나면 산천이
모두 메말라 있어, 마치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산은
헐벗었고, 나무나 풀이 있는 곳은 호스로 물을 끌어 오고 있다. 바람도 세차다.
고부스탄 암각화의 문화 경관은 이러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중부의 반사막
바위투성이들의 평원으로 이루어진 537㏊에 달하는 이 지역 40,000년에 이르는 6,000개
이상의 뛰어난 암각화 컬렉션이 있다. 또 인간이 살았던 동굴, 정착지와 묘지 유적이 있어서
빙하 시대 말기의 긴 장마 기간부터 후기 구석기, 중세까지 이어지는 동안 거주자들이
높은 문명을 유지하며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카스피해에서 약 5㎞ 떨어져 있지만 예전 이곳은 주변으로 물이 들어차 있었고,
산에는 숲이 있었다고 한다. 유목민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화산 분화와 오일가스 분출로
형성된 동굴에서 삶을 영위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07년 이곳 암각화가 품질과 밀도에 있어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며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였다.
왼쪽 건물이 고부스탄 암각화 박물관이며 뒷편 산이 암각화를 즐비하게 간직한 지역이다.
설명문은 아제르바이잔 어인데 이곳의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문자는 터키어와 비슷한
라틴 알파벳을 쓰고 있다.
규모가 썩 크지 않고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암각화 박물관의 내부는 자료 정리가 꽤
잘 되어있어서 이곳의 진면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갈대로 만든 배모양과 사냥에 나서는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다. 노르웨이 인류학자 소르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은 이 배의 디자인을 근거로 하여, "노르웨이인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왔다"라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동물의 모양이 음각되어있는데 특히 소의 모양이 선명하다.
소는 부와 힘과 풍요의 상징이다.
카스피 해에 세워진 채유시설
멀리 카스피 해가 보인다,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카스피해는 거대한 호수이나 물 맛은 짜다. 철갑상어가 잡힌다.
바닥에 뚫은 구멍은 동물을 잡은 후 피를 저장하거나 물을 저장하는 장소이다.
인근에 있는 진흙 화산, 접근로가 매우 험하였다.
메탄 가스와 석유, 천연 가스가 분출하여서 불도 붙여볼 수가 있다.
어떤 곳은 불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암각화를 남긴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모두 어떻게 인식했을까
암각화 지역은 원래 거대한 동굴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지각 변동과 함께 이곳은 무너지고
함몰하여 카스피해에 오래 잠겨있기도 하였다.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이곳 사람들은
이후 어디로 갔을까. 바람이 세찬 이곳 사라진 문명의 고토에서 기행시 한편을 남기며
발길을 옮긴다.
(기행시) 고부스탄의 암각화
석기시대에도 바람은 여기 이토록 거셌을까
바쿠 근교 카스피해가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고부스탄
고부는 돌, 스탄은 땅
접신接神을 한 모양새의 바위 바위 또 바위
그 허리에
이만년에서 육천년 전까지
6200 점 아니 그 수도 헤아릴 길 없이
존재와 순간의 양식을 판 사람들은
제식의 엄숙과
현존의 엄혹을 캔바스 삼아
흑요석을 붓 삼아
마침내 시간을 이기고 의미를 펼쳤다
‘엄마 동굴’, ‘황소 동굴’, ‘사냥꾼 동굴’, ‘임산부 동굴’로
암각화의 군락지에 크게 나누어 이름 매김하고
낙타, 사슴, 소, 그리고 이름 모를 동식물은
정물화로 영생의 누비이불
수렵채취, 전투, 춤추는 무인들
창을 쥔 전사(戰士), 갈대 배를 타고 노 젓는 형상은
동영상이 되어 시간의 지속을 새겼으니
그 위쪽 눈부시게 암각된 해와 별은
지상의 현전을 주재하여
우주를 그리는 마음 묻어낸다
저자 약력
*시인-수필가 서초문인협회 회장, 건국대 명예교수, 국제 펜 한국본부 국제교류위원장
한국소설가협회 윤리위원, 한국 현대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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