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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 이강소 화백의 현대화랑 "소멸"전에 부쳐

원평재 2018. 10. 7. 08:29










축시, 이강소 화백의 현대화랑 소멸전에 부쳐


전위미술로 일생 전위의 발걸음인

외우 이강소 화백의 소멸 전람회에 갔어

주룩주룩 가을비가 소멸 찾는 발자국을 적셨지

지난 세기 70년대, 화백의 초창기 회고전이었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전위적

오관은 물론 오장육부까지 긴장 되었어--

아니 지금은 내 눈도 화백 덕분에 꽤나 개안되어서

전방위적으로 태연히 감상하고 찬탄을 날렸지

이렇게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던한 축시도

흔들리지 않고 읊잖아

 

소멸 Disappearance는 우리가 멸하는 그날까지 부딪는

끝없는 화두이지

나타나고 보이는 appearance에 대한 회의와 의문

끝없는 채죽질

화백은 작품 자체인 목로주점에 친구들을 앉히고

즉자적 존재의 일인칭과 대자적 상대적 인식 방식을

쉽고 부드럽게 역설 했어

음색은 옛 목소리 그리운 그대로였어

 

소멸이 생성의 전위이든 후위이든

그는 존재의 양식을 의 소통작용

communication of "gi"로 보았어

“g"는 유성음이니 로도 읽히지

들어갈 때 입구에서 본 생김과 멸함이라는 공간의

황금사과

지하에서 갑자기 길을 잃게 했던 백색 갈대군락

이층의 윤기 나던 굴비와 깨어진 돌덩이

엉성하게 맞춘 사슴의 뼈

박제된 가금과 일련의 그림과 또 흑백 누드 사진들

내 친구의 나신

그 한 켠에서는 찰나의 영상을 영원히 돌리고 있는 비디오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한없는 의문투성이가 되어서야

문득 화백의 전략에 완전 포섭 되었구나

그나마 깨달음이 온건

뒤풀이 숯불고기를 뒤적이면서였어

 

안내를 하다 보니 화백은 늦게야 저만치 혼자 앉았고

그런 공간 배치도 삶의 또한 존재양식이런가 싶더군

아직도 강골 몇 사람은 화백 이끌고 나중에 이차 갔을 거야

 

떠오르는 건배사를 지그시 누르고

돌아와 여기에서나마 그 말 올려보리다

소생이 선창할게 중생은 모두 화답해 주시길,

현대미술 어렵지?”

아니야, 강소 있어 쉬웠어

 

내년 봄을 기약하는 화백의 언질을 귀 담았어

20세기 세기말 때의 이강소 현대미술 회고전과

21세기의 전위공간을 함축 하였어

동심 때 이까소라 불렀지만

지금 피카소를 능가하고 MoMA 현대미술관에도 나아간

전위의 외우여

다시

소멸과 생성을 위하여 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