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거처가 있지만 아들이 사는 집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서 어제
이사를 했다.
하루 휴가를 낸 아들은 얼마 안 되는 우리의 짐과 자기들 집의 소파 몇 개,
그리고 남는 집기 들을 닥치는 대로 몇 차례 싣고 왔다.
걱정과는 달리 아파트의 창이 강을 향하고 있어서 강물도 잘 보이고 대안의
신기루처럼 솟은 "맨해튼 마천루"들도 바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들은 전동 드라이버로 식탁도 조립을 해주고나더니, 금방 우리 노트북을
어떤 무선 주파수에 맞추어 놓았다.
그러자 천만리 밖에 두고 온 걸로 여겼던 내 그림자가 어딜 가느냐고 당장
내 소매를 잡아서 주인인 나를 잠시 난감케 하였으나 이윽고 생각해보니
여기 내 안마당이 따라와서 펼쳐진 게 아니던가.
안도와 반가움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 너머 컬럼비아 대학과 맨해튼 전경---.)
엊그제까지 덥던 날이 시원하게 바뀌어서, 뚱뚱한 여직원 “레이철”과 또 다른 관리
직원들 말마따나, 우리는 며칠 전 이사 온 사람들에 비하면 땀도 흘리지 않고
행운아라는 덕담을 들었다.
건물 내의 실내 수영장과 피트네스 센터의 이용권도 받았는데 하지만 내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짐 정리도 하는 둥 마는 둥, 은행 문이 닫히기 전에, 우리는 전에 미국에서 열어놓았던
계좌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미국 은행으로 달려갔다.
결국 예상대로 그 사이에 거래와 잔고가 없었으니 중지가 되어버린 것을 집 사람이
우겨서 겨우 회복이 되었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던 가---.
물론 미국 사회가 논리와 합리의 장터임으로 억지가 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논리를
끝까지 갖다대는 한국인의 그 은근과 끈기가 좀 억지스럽게 통했달 까---,
하여간 새로 만드는 번거로움을 피하는 그 과정이 하도 신통하여서 나는 작성 일자를
다시 쓰는 곳에 과연 내 생년월일을 쓰고야 말았다.
(허드슨 강 상에는 항공모함이 떠다니기도 하고 호화 여객선도 보이고 화물선도
물론 많이 떠다니는데, 제가 있는 아파트에서도 모두 다 잘 보여서 좋습니다.
범선도 떠 다니는데 기다리니까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앙에 보이는 타워가
아시다시피 컬럼비아 대학이고 왼쪽으로 할렘이 전개되고 있지요.
잘안다구요? 컬럼비아 대학이 할렘의 끝쪽으로 붙어있으니 틀림없겠지요---.)
이제 우리는 여러 군데 “몰”을 방문할 차례였다.
“베스트 바이”에서는 TV와 실내 안테나를 샀다.
케이블에 가입하지 않고 미국의 주요 방송프로만 듣기 위해서였다.
“스테이플”에서는 팩스와 복사, 스캐너, 전화기가 달린 복사기를,
그 옆의 “타깃”에서는 진공 청소기를, 그리고 “한아름”에서는 먹을
것을 한 아름 샀다.
우리 때문에 늦게 출근했던 며느리는 늦게 오게 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우리끼리만 저녁을 먹었다.
아들집의 필리핀 메이드는 저녁 8시까지만 집 청소와 취사, 그리고
아이를 보다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쉬는 조건인데,
요즈음 며칠 우리 때문에 좀 그 약속에 무리가 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마닐라에서 고등학교 교사까지 하다가 미국으로 돈을 벌러
왔다고 한다.
밥을 빨리 먹고 우리는 서둘러 아파트로 돌아왔다.
며느리도 그 사이에 자기들 집으로 들어와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손자를 안고 찾아왔다.
한 동네에 사는 맛이 그만이었다.
방 둘에 욕실과 키친이 딸린 새로 지은 이 아파트는 큰 건물 모두가
세를 놓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허드슨 강 너머로 맨해튼의 야경이 극적이었다.
마침 내다보이는 강가에는 새로 분양되는 고급 콘도의 기초공사가
한창이다가, 저녁이라 모두 중지되어 있었는데,
엊그제 그 모델 하우스에 가 보고는 입이 딱 벌어졌던 생각이 났다.
우선 제일 큰 것으로는 300만 불짜리도 있었는데 그건 구경도 못하고
방 둘에 거실이 달린 규모가 140만 불이었다.
물론 모기지로 사는 것이긴 하지만 “다운페이”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한달에 4000불 정도 이상을 지불해야한다면 미친 짓이 아닐까.
아들 내외는 몇 년 전에 두 사람의 신용을 넣어서 모기지로 산 자기들
집값이 그 사이에 무척 올랐는데, 또 더 오르겠다고 좋아하다가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이제 더 좋은 집으로 옮기기가 불가능한건 아닌가, 그리고 요즈음 이
세태가 과연 정상인가---.
지난 주일에는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교회에 나오는 한인 2세의
250만 불짜리 호화 주택이 있는 동네, "앨파인 마을"을 구경하였었다.
물론 그 전에 LA의 고급 동네도 여러군데 가 본 적이 있지만---.
그리고 "앨파인"의 옆 동네이고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테너플라이
마을"도 구경하였다.
“압구정의 젊은 아줌마들이 뉴저지는 몰라도 테너플라이는 다
안다는군요---.”
아들이 그때 말하였었다.
“난 모르겠네. 다만 그 옆의 잉글우드 클리프스는 잘 알지만---.”
잉글우드 클리프스(Englewood Cliffs)는 오래전에 맨해튼에 있던 출판사들이
비싼 임대료를 피하여 몰려왔던 이 근처의 마을로 미국에서 출판된 많은
책들의 꼬리표에 이
지명이 달려있던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산의 헤일리(?) 출판 단지 쯤이
된달까---.
잉글우드를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겨레 숲”쯤 될 것이다.
클리프스는 단애인데, 뉴저지의 이 지대는 기암괴석이라고 할 만한 돌들의
무더기가 단층과 절리를 보이면서 우뚝한 곳이 많다.
절벽이라고 하면 좌절스러워 운치도 없고 어감에도 맞지 않다.
그래, 전라도 말에 “날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꼭 맞는 것 같다.
절벽의 꼭대기라는 뜻이겠지만 앞이 꽈막히는 아래쪽 보다 낫고 또
낭떠러지라는 위기감도 절감된 낭만의 언덕이 아니겠는가.
사랑 나누기도 그만이리라---.
하여간 “한겨레 숲 날맹이”를 왼쪽으로, “허드레 가람"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뉘 집 것인지도 모르는 무선 인터넷 전파에 올라타 오늘의 미주 일지를 띄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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