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 속에서

원평재 2005. 8. 21. 14:56

허드슨 강상에 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페리의 선착장이 두엇 있는 줄은 누구나 안다.
거기 뉴저지 쪽 가장 큰 선착장 옆에 "Arthur's Landing"이라는 아메리칸 식당이 있는데,

그 이층에서 오늘 손자의 돌 잔치가 열렸다.

 

 




(초상권을 보호하면서 사진을 고르다보니 힘이 듭니다,)

 

 




뉴저지 쪽에 회사가 있는 큰 아들과 맨해튼 쪽에 회사가 있는 며느리의 동료들이
모두 찾아 오기 좋은 위치라서 그렇게 정했다는 곳인데 허드슨 강 건너로 맨해튼의 전경이

보이는 탁 트인 시야에 하객들이 모두 즐거워해서 자화자찬 같지만 일단 잔치 분위기는

출발부터 고조되었다.

 

 




나는 나대로 최근에 큰 비가 내린 허드슨 강의 도도한 흐름이 세월에 비유되면서 내색은
않았으나 만감을 건질 수 있어서 깊은 상념을 즐기고 있었다.

한인 타운에 미리 맞추어 놓았던 돌 잔치 고임새와 떡과 한국 음식, 그리고 여러가지 설치물

들은 아침에 좀 일찍 나오면서 찾아와서 헤드 테이블과 하객들의 테이블에 고루 나누어 놓고,

메인 디쉬는 식당에서 양식으로 걸맞게 차려놓으니 동과 서가 만나는 퓨전 돌 잔치가 그럴듯

하였다.


 

오래 전, 허드슨 강가에서 처음 감회를 풀어 놓았던 때의 뜨거웠던 감회와 감상은 이제 내

가슴에서 미지근하게 식어버렸지만 젊은 하객들과 데리고 온 아이들이 미래를 향하여 크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지나간 열정의 잔열은 아직도 남아있는듯 하였다.
자신에 차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21세기의 주인공들임을 자처하면서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이" 세월을 그냥 보내주지는 않겠다는 듯이 그들의 겨드랑이에 억눌러 끼고

수직 비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이를 돌아가면서 한번씩 안아보는 순서)

 

 

나는 문득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가 누이인 도로시와 함께 처음 "와이 강"을 보고나서

5년의 세월이 흐른 연후에야 "틴턴 애비"라는 절창을 부른 경과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낭만주의자 워즈워드가 가장 혐오한 것은 감정과 감상을 그 자리에서 탁 털어내는

시심이었다.

그는 진정한 시심을 "spontaneous overflow"라고 하였지만 적어도 세월이 띄워내는

발효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다음에 나오는 감상을 최상의 것으로 삼았다.
"틴턴 애비"라고 짧게 부르는 다음 싯귀가 그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FIVE years have past; five summers, with the length
      Of five long winters! and again I hear
      These waters, rolling from their mountain-springs.
      With a soft inland murmur
      --Once again
      Do I behold these steep and lofty cliffs,
      That on a wild secluded scene impress
      Thoughts of more deep seclusion; and connect
      The landscape with the quiet of the sky.
      The day is come when I again repose
      Here, under this dark sycamore,

 

 

인문과학을 하느라 고생한 경험이 쓴약이 되어 나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꼬드겨서 모두 공대와 의대를 넣었더니 큰 놈은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가 보스톤의 저 공대에서 MBA를 하여 본업을 바꾸었고 나머지

둘은 본업에는 충실하고 있지만 곁눈질이 심하다.

 

위에서 아이를 안아보는 백인 젊은이도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 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는데 강사 자리로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부인은 며느리와 같은 패션 회사의 일류디자이너이다.

그는 내 연구 활동을 돕겠다고 여러가지 제안을 했는데 내 며느리의

제부는, "아버님, 그냥 편히 쉬십시오."라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적시타를

날렸다.

 

며느리의 언니와 제부는 얼마전 까지 남미 금융장세의 중심에 있었는데

이제는 미국 국내 투자 은행으로 옮겼다고 한다.

잘 모르지만 한 템포 조절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모두 금융 쪽이나 패션 쪽에서 이 세기를 이끌어

가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젊은이들의 한 마당 모임이었다.

손자 녀석은 말이나 걸음마가 빠르지 않은 "밉세이(밉상)"이다.

아마도 말은 우리말과 영어와 필리핀 메이드의 영어를 모두 배워야

하기에 그렇고, 걸음마는 뒤통수가 나와서 그럴법하다고 믿는다.
할아버지의 마음이란 이러하다!


 

손자의 이름을 묻는 이 공간의 요청도 있으나 좀 멋적은 일이어서

 20세기 한때에 진보적으로 튀는 시를 지은 미국의 시인과 또 그

시인을 흠모하여 자기의 이름도 그렇게 지은 어떤 미국의

가수와 이름이 같다.

모두 아들 부부의 작품이다.
물론 우리말 이름은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

 


       

     (오른 쪽의 뾰죽 건물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내일은 디트로이트로 가서 평생 의사로 지내고 있는 동생과

패밀리 리유니언, 가족간의 재회를 년간 계획으로 일주일간 한다.

 

내 질녀의 이름은 한 때 유명했던 패션 모델의 이름을 땄으나

지금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다.

얼마전에 함께 의학을 하는 교포 청년과 약혼을 했다고 한다.

내 조카도 리서치 메디칼을 하고 있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듯이---.

둘다 학부는 하바드를 나와서 우리를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