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떠난 오크 파크 거리의 헤밍웨이 기념관 표지)
중서부 미주 문학을 지키는 분들
(이 선생 댁의 앨범에서 다시 복사한 따님 부부의 결혼식 때의 사진, 따님은 미스
시카고였고, 변호사인 사위는 고향에서 조부 이래의 가업인 치안판사.)
서둘러 오크파크의 문학 기행을 마치고 아쉬움과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우리는 시카고
다운타운 쪽으로 다시 달려와서 동생은 호텔에서 내리고 세 사람만 교외로 나가는
하이웨이를 탔다.
산이 없는 시카고의 평원을 한 시간이나 달려서 우리는 금석 선생이 있는 타운의
입구에 있는 “우래옥”으로 들어갔다.
(명 교수가 오크 파크에서 구입했다면서 나에게 선물한 화보와 설명이 겻들인
최신 연구서적)
사진으로 익히 알고있던 명계웅 교수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큰 규모의 식당에 한인이 아닌 백인 고객들이 많았다.
명 교수는 단단하고 야무진 얼굴에 1인치만큼의 유머러스한 여유 공간을 남겨두고
있어서 완벽하였다.
세상이 넓은지 좁은지 내가 잘아는 경희대학교의 원응순 교수님과 동서간이 되는
사이였다.
그 원 교수님과는 한창 때에 무교동의 맥주 집을 함께 자주 찾았었다.
지금 그 이름은 잊었지만 그 구수한 호프 향과 넉넉한 분위기 내 가슴에 남아있네---.
우리는 금방 통했다.
문학 평론가 명 교수는 미주 한국 수필가 협회 회장이시고 "노드 이스턴 일리노이
주립대"와 "시카고 한인 문인회"에서 강의를 하는 분이었다.
대뜸 쥐어주는 “Picturing Hemingway"라는 화보 중심의 책자와 작년에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던 미주 이민 100주년 세미나의 팜플렛이 고맙고 유익하였다.
작년 행사의 주최는 사단법인 한국 소설가 협회와 시카고 한인회였는데, 후원은
"한국문화예술 진흥원"과 "한무숙 재단", 그리고 협찬은 "시카고 문인회", "미주 한국
수필가 협회", "시카고 총영사관"이었다.
주제 발표는 윤병로, 김병총, 명계웅 등, 여러분들이었는데 미주 교포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발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할 겨를은 없다.
모듬 고기를 구워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하고 우리는 인근에 있는 금석 선생의 댁을
방문하였다.
성공한 한인들에게 걸 맞는 큰 저택에는 후식을 잔뜩 준비해둔 부인께서 총총히 야간
방문객들을 맞아주었다.
씩씩하고도 탁 틘 성품의 부인께서는 평생을 직장 생활과 사회봉사를 해온 분이라서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직장을 물어보는게 실례이지만 대화 끝에 이야기가 나오자, “노드롭”이라고들어
보셨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아, 노드롭 프라이---.”
내가 아는 체를 하고는 아차 하였다.
미국의 문학 평론가 “Northrop Frye"가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내가 노드롭 항공사의 플라이트 발음을 시원치 않게 한 것으로 일단
간주해주시고 바로 그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나라사랑 어머니회”의 일원으로 청와대에서 밥도 먹어봤다고 웃으며 말하자
명 교수는 밥은 못 얻어먹었지만,
“평통 자문 위원회” 때에 들어가서 이게 주로 남자들의 모임이라 화장실 이용 때에
줄이 길어져 여자 화장실을 실례했다고 익살을 넣었다.
화장실 주제의 그 분 익살이 몇 레파토리 더 있었으나 생략한다.
우리는 미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으며, 이 분들의 열정이 있는 한 교민
문학은 빛날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울러 미국 중서부 지역의 중심, 시카고에 한인들의 발길이 요즈음 뜸한 편이 되었다면서
오크파크의 헤밍웨이 생가를 위시하여 버로우즈 등 작가들과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알 카포네의 집을 묶고 나아가서 마크 트웨인의 족적을 따라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 올리언즈까지 가는 여행 코스를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 때까지는 물론 뉴올리언즈의 재해가 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도 좋은 구상이라고 동의
하였다.
우리가 너무 양안 지역만 다녀서 사실 미국의 진면목이 담긴 중서부 대 평원지대를 간과
한 점이 있지않았던가---.
내가 기왕에 온 김에 가족 앨범을 좀 보자고 하였다.
여러 가지 다채로운 행사를 기록한 앨범 가운데에사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따님이 1999년이던가 미스 시카코로 선출된 사진이었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다음 페이지에는 결혼사진이 나왔는데 헌칠한 미남의 백인
청년 이집 사위가 아닌가.
이 사위가 청혼을 하러 찾아왔을 때, 지금의 장모님께서는 처음 너무나 준비안된
상태에서 깜짝 놀라게 되어 문자 그대로 문전 박대를 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 때의 일이 너무 미안해서 아주 잘 대해 주어도 아직도 장모님 겁을 내는
순진파라고 한다.
신랑은 따님과 대학 동기로서 시카고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일리노이 주, 고향마을에서
조부 때부터 내려 온 치안판사 직을 이어받기 위하여 젊은 부부가 함께 내려갔다고
한다.
가업을 이어 조부의 대를 이었다고해서 매스컴에서도 크게 다루었다고 한다.
매스컴 이야기가 나왔으니 금석 선생도 “사회봉사, 오늘의 인물”로 미국 방송과
한인 방송의 매스컴을 타고 있었다.
한때 이 양반은 시카고 가톨릭 교회의 사목 회장도 맡았다고 한다.
아무튼 미주 사회에서 교민들의 활약은 앞으로 더 강도 높게 이루어져서 그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야 할 줄 믿는다.
내가 집구경도 좀 하자고 해서 우리는 지하에 설치된 당구대 까지 일별하고 밤 늦은
작별을 고했다.
명 교수는 이 도시의 정 반대편에 있어서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 주고 떠나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 분은 내내 미드 웨스트에 있는 미국 제3의 도시에서 특히 한인
교민들의 문화와 문학적 분위기가 어떻게 해야 더욱 성숙할 수 있겠는지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시종여일한 열정을 갖고 있어서 동승한 길손인 나를 감동시킬
따름이었다.
나도 미력이나마 이 노력에 동참할 뜻을 진심으로 표하였다.
(이날 밤 중에 찾은 이 선생 댁내의 사진을 많이 못 찍은 아쉬움과 함께 헤밍웨이 관련
사진들을 올립니다.)
(인디언 캠프와 세밍웨이의 저서, 자필 편지 등---)
(헤밍웨이 비스트로의 자부심 강한 세퍼와 함께)
(외과 의사인 헤밍웨이 아버지의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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