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제야의 종소리 / 2001년을 보내며(Essay)

원평재 2004. 1. 21. 18:09
아이들이 다 떠나고 둘만 남은 제야.

아내는 공황감 속에서도 제야의 종소리 듣는 해마다의 습관대로
아름다운 색초를 준비하고 옷도 새로 갈아입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제야 때 마다 가족이 함께했던 기억은
차라리 처음부터 아이들이 나가돌아다닌만도 못했다.

막내는 왜 또 잠시 들어왔다가 제야에 비행기 타고 훌쩍 떠나고
큰 아이 내외는 타임스 스퀘어에서 해마다 축제인 저 카운트 다운 행사를 못본다고,
출장지인 샌프란시스코는 지금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다고 전화를 하여
나이든 부모의 마음만 스산하게 했는가---.

이제 5분 후면 보신각 제야의 타종,
옷까지 신경써서 갈아입은 아내는 빨리 오라고 성화이다.

이때 따르릉 전화가 왔다.
이시간에 무슨 전화?
옛 친구였다.
익숙지도 못한 중등학교 동기회 사이트의 "대화방" 초청이 왔는데
할줄 모르겠으니 나보고 들어가 보란다.
한발 앞선척 자랑했던 내 죄가 많지, 안들어갈 수 있나.

2001년을 보내며---라는 거창한 주제 아래에서
동기생 두어 사람은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네
그림으로 만든 생맥주도 퍼다놓고 케익도 갖다 놓고---.

일 났네.
나도 참여하여 어쩌구 저쩌구,
이미 제야의 종은 울리기 시작하였고
"나 먼저 나간다"고 쫓아나왔으나 아내의 마음은 이미 토라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떡국을 내가 손수 끓여먹고 시무식 행사장으로 향하려는데
그제서야 아내가 미안하다고 뒤에서 향수를 뿌려준다.
Sonata for piano and violin N 9 in A major,Op.47 Kreutzer / Beethoven, Ludwig van1.Ada2.Andante con variazioniⅠ-Ⅳ3.Finale Pr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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