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이 난게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픈 이야기, 불이 날뻔한(불난건 물론이고) 이야기가 일반적
흥미의 대상은 될 것도 같다.
내가 동기생 사이트 두곳에 글을 올리는데, 최근에 맨해튼 이야기와
사진을 자꾸 올리니까 한군데에서는 재미있다고 격려의 답글과
조회수가 오르고,
또 한군데에서는 바깥에 나가서 사진 찍어오는 몇 사람의 글들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또 가까운 친구 한 사람은 내가 중국과 미국으로 떠날 때에 소식 자주
전하고 특히 사진을 많이 올리라고 주문하더니 최근에는 조금 냉소적인
글을 올려 놓는 것이 무언가 심사가 틀어진거나 아닌가 신경이 쓰인다.
하여간 이번에 내가 고생하는 배탈 사정도 맨해튼 사정과 무관치 않으니
글을 만들어 올리면서도 이래저래 속이 좀 편치는 않다.
(타임즈 스퀘어의 이름을 불러온 뉴욕 타임즈 사옥)
사실 뉴욕, 특히 맨해튼이라는 데는 미국이라기 보다, "The City of
the World."이고,
로마시대의 "로마", 쿠빌라이 칸 시대 원나라의 "옌칭(大都 燕京--지금의 북경)",
오스만 터키의 "이스탄불"에 다름 아니어서, 미국 사람들도 뉴요커가 아니면
이방인들처럼 일생 몇번 관광차 들리는 곳일 따름이다.
기회가 있으면 구경한번 해보고 싶은 곳이야 될 지언정,
중서부 대평원을 버리고 뉴욕 와서 살 생각들이야 별로 없는 셈이다.
내가 방문객의 입장으로 돈도 별로 들이지 않는 기회를 잡아서
나이아가라를 지금껏 다섯번쯤 다녀 왔지만 생활인으로서는 아무 필요도 없는
일이다.
뉴욕이라고 해봐야 물가 비싸고 집값 비싸고 범죄 많고 아무래도 공해도 심하고---.
가끔 열리는 미술관들의 기획전이 생활인의 밥 맛을 높히면 얼마나 높히랴.
또 그런 것은 중소도시에서도 연중 끊이지 않고 있다.
뮤지컬도 순회 공연이 수두룩하고---.
그래도 뉴욕에 한번 맛을 들이면 벗어날 수 없다니 그게 또 뉴욕의 진미라고 한다.
내 짧은 소견이 아니라 오래 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옮겼고 동감하는
부분이다.
말이 옆으로 좀 샜다.
주제가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오리가 무우 밭에 들어가면 중심을 잃는다.
아팠던(아직도 좀 좋지 않지만) 이야기를 꺼낼 차례인가 보다.
엊그제 나는 다니던 도서관을 일찍 나와서 타임즈 스퀘어로 갔다.
타임즈 스퀘어에는 물론 네모진 광장이 없다.
어떤 미국인은 비행기에서 보면 뉴욕 타임즈 신문사 건물이 있는 그
구역이 장방형으로 부각(혹은 인각) 되지 않겠느냐고 제법 설명을 하는데,
하여간 네모진 빈 공간은 따로 없다.
그런데 그 지역 일대, 그러니까 브로드웨이의 핵심이 되는 그 근처에는
뉴요커들도 평일 낮이면 점심 밥 먹으러 갈때에나 나돌아 다니고,
거리를 메우는 대부분의 인파는 미국 각처, 남미나 유럽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동양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당연히 은퇴한 노인들이 태반이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백발을
성성히 날리며 관광길에 나서고 있다.
그러니 미국 사람이라고 붙잡고 물어보아야 나같은 방문객일 가능성이
더 많다.
이곳이 그런 곳이다.
나스닥의 전광판이 요란한 그 건물에 나스닥 사무실이 들어있다는
정답을 얻는데에도 백인 여러사람들에게 여러차례 문의를 한 결과였다.
미국 증권거래소(NYSE)는 잘 알려진데로 월가에 있지만
나스닥은 이 곳 전광판 뒤의 높은 유리 건물 속에 있단다.
나는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한번 가 봤지만 누가 그 곳 지리를 물으면
가르쳐 줄 자신이 없다.
하물며 코스닥이 어디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여간 그 날, 배탈이 난 그 날 내가 일찍 타임즈 스퀘어 동네를 서성인
것은 뮤지컬 티킷을 반 값에 파는 티킷 박스에 가서 줄을 서고자 함이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노인들이 티킷 박스에 줄을 서고 있다. 존경스럽다.)
그곳 높은 건물에 우리의 LG간판이 있어서 반가웠으나 NOKIA 극장은
있는데 우리 기업의 문화 투자는 아직 손이 못미치는 점이 아쉬었다.
다만 굴지의 우리 기업, 삼성등이 MOMA에 투자하고 있는 줄은 아는
사람은 안다.
또한 프로 풋볼 연맹에도 삼성은 공식 후원자가 되어서 내년 시즌부터는
눈에 익은 로고가 보일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길거리에 한 떼의 젊은이들이 연좌 농성
같은걸 하고 있어서 내가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예술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와서 기다린다고 한다.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옆, 여기 노키아 극장에 들어간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럭저럭 표를 사러 줄을 섰는데 뉴욕의 가을 날씨가 양광을 끼고
한참 멋을 부리고는 있었으나 종아리가 시리고 배가 고파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밥부터 먹자.
근처에서 갓 구운 피짜와 뜨거운 커피를 한 잔사서 먹고나니 이제는 피로가
몰려와서 집으로 가고싶은 생각 뿐이었다.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들어오니 그림 그리러 간 집사람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피짜로 채운 뱃 속은 아직도 정량미달이라고 아우성이다.
두어달 전에 시카고 갈 때, 비행기에서 먹지 않고 넣어 온 크래커 생각이
문득나서 먹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시효가 지난 것 같았으나 그냥 먹었다.
그리고 한 두어시간 지났을까, 갑자기 몸이 추워지고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얼마나 추우면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한기가 들었다.
집사람이 저녁을 좀 일찍 지었으나 나는 이미 뱃속이 똥똥해진게 스스로 어떤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이럴 때는 속에 든 독물을 쏟아내는게 급선무데---,
아리송한 의식 속에 그런 궁리가 떠올랐으나 몸은 이미 내 의식을 떠나있었다.
"아이구, 죽겠다."
평소 금기시했던 말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사다 둔 와인이 한병 있어서 그걸 마시면 꼭 막힌 몸이 어딘가 터져나올듯도
싶은데 괜히 술냄새 풍기다가는 미국 병원에 가서 오해를 받을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손가락을 뜨고 등을 두드리니 드디어 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설사도 이어 시작되었다.
그걸 고비로 이가 떨리던 추위도 많이 사라졌으나 몸을 가눌수 없이 힘이
빠지더니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미국으로 올 때에 의료 보험은 들었고 지난 주에 내 중등학교 동기를 따라
나간 뉴저지최대의 한인 교회에는 의사분들도 여럿 계시다는 그 동기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의사분들은 다행히 또 선배 되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밤이 깊었고 갖고 온 비상약으로 차도가 있어서 그냥 밤을 지냈다.
아들은 다음날 그 사실을 알고 왜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고 우리를 나무랐으나
그래봐야 인근에 있는 미국 병원으로 갔을테니 일만 더 귀찮고 까다롭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게 또 우리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효자" 아들에게는 포트 리에 있는 한국 약국에 가서 약이나 좀 지어오라고
했다.
차도가 생기니 우리식의 편한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포트 리 쪽에는 한국 동포들이 동네를 완전히 점유하고 있어서 한국인지 미국인지
모를 지경이다.
참 세상이 좋아졌다.
또한 여기는 65세 이상이 되면 그 동안 내던 의료보험도 내지 않고 메디케어
혜택을 받는다.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고 영주의 권리만 있어도 해당이 되어서 "효자는 자식이
아니라 연방 정부"라는 우스게도 나온다.
물론 깊은 병일 때에는 차등적 보혐에 가입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는걸로
알고 있다.
새벽에는 한국의 딸로부터 전화도 왔다.
부부가 의사이니까 엄마의 이 메일에 즉시 응답을 보내온 것이다,
경과를 이야기하니까 복잡하지 않게 잘 처리했다고하면서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그냥 쉬는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어이구, 내 딸!"하는 소리가 절로나왔다.
워낙 우리나라에서도 좋아하지 않았던 피짜를 내 어이 먹었던가.
또 곰팡이 슨 크래커는 왜 먹었던가.
다시 브로드웨이로 가서 줄을 설 것인가?
브로드웨이에는 아직도 "오 맘마미아"와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는데 그건
나도 한국에서 모두 본 것들이다.
그러나 그 많은 극장에서 새로 나온 문제작, 뮤지컬과 연극이 엄청나게
내걸렸는데---,
유혹은 받지만 당분간은 추위에 떨 생각이 없다.
티킷 바스에서는 브로드웨이에서 밀려나 실험 정신에 가득한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표도 팔고 더 밀려나서 더 실험적인 Off Off Broad (OOB)
작품도 취급하지만 하여간 당분간은 근접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이든 관광객들의 보폭이 장하다.)
글을 만드는 중에 아들이 퇴근 길에 "까스 활명수" 한통과 "정로환"을 사갖고 왔다.
정로환은 일제였으나 활명수는 반가운 국산이었다.
위약(僞藥)과 플라시보 현상도 있다고 하는데, 마음 약해진 내게 이 약이 큰 효험이
있을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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