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폐원에서---

원평재 2005. 11. 24. 08:30
 


동기회 사이트에 국내외로 저명한 언어학자가 학창시절의 일기를 발췌하여 올렸다.

젊은 날의 야망과 고뇌가 교차하는 절절한 내용이 가슴을 찔렀다.


일기 중에는 재능 넘치던 그림쟁이 K 동기의 이야기도 몇 줄 실렸는데, 그림과 글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들던 이 탁월한 친구가 “폐원에서”라는 시를 발표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나도 그 시 제목은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제목처럼 “허무”를 강조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림과 글로 신동 취급 받던 이 친구는 대학 재학 중에 군복을 입고 자살하였다. 

죽기 하루 전날 가까운 친구들을 순방했는데 나도 그 명단의 앞줄에 들어있었다.

11월 11일이라는 외우기 좋은 날을 마지막 가는 날로 택한 그의 의도에는

"우정의 화원"이 "폐원"으로 변질되었다는 인식과 이 폐원이나마 우회해버린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난 그 때 멀리 떨어져 있었어.”

겁쟁이 친구들은 그래도 상처와 같은 양심들은 살아있어서 알리바이 대기에

급급했지만 우리 죄인을 자처한 친구들은 그해 겨울, 눈이 많이 내리던 날에

“유작 전”을 열어주기도 했다.


어제는 수술한 내 뱃가죽을 집도의가 최종 점검하고, 지금껏 얼기설기 철사로

기워놓은 곳들을 트는 날이었다.

스테이플로 기워놓았다고 내가 생각했던 바 대로, 과연 집도의는 동반한 레지던트에게

“스테이플 커터를 가져오라”고 시키는 게 아닌가.


"이머전시 호스피탈" 바로 건너에 있는 이 외과의의 클리닉 오피스는 한 주 전에

왔을 때만 하여도 고운 단풍들이 그때까지도 아직 살아남아있는 녹색 잎새들과

절묘한 보색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주일이 지나서 어제 가보니 폐원의 행색이 역력하였다.


그림쟁이 내 친구가 삶의 “폐원”을 노래한 것은 그의 나이 20대 초였고,

문호 T. S. 엘리엇이 『황무지』를 쓴 것도 약관의 나이였는데,

잘난 나는 무슨 신명이 나서 한 세대를 노닥거리다가 이제야 구약 전도서의

“헛되고도 헛되도다(frailty)”에 상도했는지 모르겠다.


내시경 수술이어서 찢은 곳도 작고 회복도 빨랐으나 수술 시에는 자기의 고생이

많았다고 자화자찬하는 이 이디쉬 계, 집도의에게 나는 다시 한번 더 감사를 표시하며,

끝으로 먹는 음식에 관하여 물어보니 따로 그 관련 브로슈어를 주지 않았다시피

아무거라도 조금씩 몸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잘만 먹으라고 한다.


사실 수술 이후 내 몸 무게는 우리 계산법으로 12킬로그램이 줄어있었다.

여기에서 내과의를 하는 내 선배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그렇거니와,

우리나라에서 대학 병원 의사, 교수를 하는 내 근친은 인터넷으로 먹어서 좋은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을 엄중하게 시달하였는데,

배를 가르고 철사로 기운 서양의사들은 이런 처방을 비웃고 있었다.


혼돈 속에 병원 문을 나서는데, 여직원이 나를 불렀다.

대기실에 한국 노인이 있는데 자기들의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고 계속 앉아있으니

의사소통을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내가 먼저 노인의 양해를 구해본 후에 나서겠다고 하고 그 노인에게 닥아갔다.


“한국 분이신 것 같은데 저도 영어가 서툴지만 저 사람들과 의사소통 하시는 데에 좀

도움이 되어드릴까요?”

“아이구, 반갑고 고맙소이다 만, 저는 진찰을 이미 마쳤어요. 여기 기다리라고해서

앉아있답니다.

제가 미국 딸네 집에 살러 온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반갑고 고맙기는 하지만 정중히 사절한다는 뜻이었다.


“네에---, 그래도 수술은 여기가 아니고 저 건너편 병원에서 할텐데요---.”

내가 한번만 더 비집고 들어가 보았다.

“아, 그럼요.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무언가 사전 조치가 여기에서 있다고 하여

기다린답니다.”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쓴다고 미국 생활 20년이면 시민권자가 되었어도 한참일 텐데

내가 이 자신에 찬 노인에게 무어라고 더 나설 수 있으랴---.


먼발치에서 우리의 대화를 유추한 직원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내왔기에,

나는 출입문을 열고 폐원으로 나섰다.


어제의 병상 일지는 그러하였고, 오늘은 천지에 추수감사절의 풍경들이 역력하다.

CNN의 아메리카 모닝 스튜디오에서도 "맨해튼 거리 모습이 이렇게 조용할 때도

있네---"라고 저희들끼리 시시덕거렸다.

내 몸이 성하였더라면 우리의 추석 전야 같은 풍경을 담으러 나갔을는지도 몰랐으나

지금은 만사가 귀찮을 따름이다.


참, 병원에 가기 하루 전날인 월요일에는 여기 인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내 중등학교

친구가 가게는 부인에게 맡겨놓고 나를 데리고 1차 진료병원과 은행을 두루두루

섭렵케해 주었다.

또 그 전날 휴일에는 가게가 있는 엘리자베스 타운으로 우리 부부를 데리고 가서

고색 창연하면서도 히스페닉 이민자들로 새로운 활기에 차있는 타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게 바로 옆이 저 유서 깊은 “리츠 극장(Ritz Theater)”이었다.


초기 항구도시의 부두 극장 리스트에 들어가는 곳인데 내가 너무 준비없이 따라다닌

꼴이었다.

보물을 건진건데---.

언제 소개할 기회를 다시 갖고 싶다.

사진은 물론 박아두었다.


내일이면 또 한 친구가 필라델피아에서 기다리고 있다.

추석날 찾아 갈 고향이 생긴 게 너무나 다행이다.

아들 녀석도 가까이 사는 처가 권속들과의 만남보다 새로 생긴 향리의 어른 친구

만나기가 더 기다려지나 보다.


가벼운 여행을 해도 좋으냐고 어제 집도의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시간 가량 드라이브를

한 다음에 꼭 10분간 걸어 다니며 가벼운 운동을 하라고 한다.


가을은 폐원과 과육의 이중가치가 혼재된 계절이다.

구약 전도서에서도 만사를 모두 헛된 형상으로 보면서 마침내 절대자의 절대적

말씀만이 이 모든 헛된 것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른바 가치의 교환(exchange of value)을 역설한 말씀이다.


추수 감사절을 감사의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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