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뉴욕시 교통 파업이 사흘만에 일단 막을 내렸다.
"The End is Near"라는 표제와 함께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방금 TV에 직접 나와서 내일 아침부터는 지하철과 버스가
움직일 것이라고 공표를 했으니,
이 칼럼이 올라가는 시간쯤에는 일단 뉴욕 교통이 정상을
찾을 것 같다.
메트로 폴리탄 교통국의 노조 위원장도 조금 전, 파업에 관한 투표 끝에 일단 노조원들의 현업 복귀를 선언하였고 협상은 근무 상태에서 계속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일단 백기를 든 셈이다.
(폐쇄된 지하철 입구도 이제 열리게 되었고 합승까지 허용
되었던 영업용 차의 사흘간의 호황도 끝나게 되었다.)
해설에 따르면 여론 악화와 블룸버그 시장과 법원의 강경한
방침, 특히 책임자 체포와 노조에 대한 벌금 부과등의 압박이
노조의 파업을 종식시킨 모양이다.
대중 교통을 볼모로 하고도 대중의 인기를 담보하리라고 본
노조의 원래 생각에는 단순히 봉급 인상 만이 아니라 연금과
은퇴 나이에 대하여 일반 근로자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는
현 정책을 돌이키기 위한 이슈 제기가 유리한 여론을 이끌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론의 72퍼센트는 파업 자체에 반대 표시를 하였다.
평균 5만 달러 이상에 초과 수당을 받는 교통국 노조원들에게
서민들이 등을 돌린 셈이다.
(파업 세일이 얄밉기 보다는 동정이 갔다. 이 선전 문구도 이제
파업 종식과 함께 떼야할 형편이다.)
하여간 "뉴욕 교통 대란"으로 표현되었던 이 곳 뉴욕의 교통
기관 파업 사태는 흔히 MTA(메트로폴리탄 교통회사)의
파업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TWU(로컬 100 수송노조)의 파업이라고 해야 조금더
정확한 모양이다.
그래야 이번 파업을 주도했던 주체가 나타난다고 한다.
호칭이나 표현이야 어쨌건 이로 인한 뉴요커들의 고통이
사흘동안 적지 않았다.
아침 출근 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은 가히 교통 전쟁이었고
그래서 출근 러시 아워가 네시부터 다섯시 사이가 되었다는
말도 있었고
저녁 퇴근 시간은 회사에 따라 오후 3시 부터 벌써 술렁거리는 데가 많았다고 한다.
괜찮은 회사에서는 휴가나 출장으로 이 기간을 넘기는 지혜가
동원되었다.
뉴저지 트랜싯 버스의 종착역이자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포트 오소리티에는 옐로우 캡, 즉 노란 영업용 택시가 하루
종일 줄지어 들어왔고 승객들도 긴 줄을 서있었다.
보통 때에도 복잡한 곳이지만 이렇게 붐비는 경우는 드물어서
신문에 사진이 날 정도였다.
택시는 이 기간동안 합승이 허용되어서 더더욱 때아닌 호황을
누렸는데 이제는 좋았던 시절의 추억이 되는지 모르겠다.
롤러 스케이트와 스쿠터, 심지어 자전거를 이용하는 출퇴근자가
늘어났다는 보도가 사실임을 이 기간에 목격할 수도 있었다.
저녁 퇴근 시간에는 승용차들이 주차장처럼 된 거리에서 엉켜
있었으며 1/3갸량의 뉴요커들이 출근을 기피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파업 기간 동안에 맨해튼 거리를 한인거리까지 포함하여서
여기저기를 다녀본 바로는 며칠전의 붐비던 연말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인 식당들도 한산하였고 한인 은행의 ATM 앞에 줄을 서던
고객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들어가 보았다. 큰데는
역시 붑비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흥분하였다.)
(돌아다닐 때만해도 지하철의 버거킹도 별볼일 없구나, 했는데
집에 들어오니 파업 종식 뉴스가 TV를 타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뉴욕 도서관 쪽의 지하철과 한인 거리의 동맥이며
젖줄이던 지하철의 입구들은 모두 텅빈 동굴처럼 을씨년
스러웠고 입구를 가로막아 놓은 쇠창살이 감옥 문처럼 섬찟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저녁이면 엉켜버리는 차도의 교통 혼잡은 시민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기 보다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차를
끌고 나와서 신호등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파업으로 인하여 뉴욕시가 입을 손해는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했으며 특히 한인 소상인들이나 식당업등은 이제
문을 닫게될 판이라고 울상이었는데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라고
하겠다.
파업 종식은 선언되었으나, 25년만의 뉴욕시 교통 파업이라고
하였으니 아직도 전후 사정이 그리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게 보편선, 공동선이 베풀어지는 결과가
빨리 도출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길거리에 나와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나의 평가가
한두시간 사이에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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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교통 파업이 사흘만에 종식하는 순간을 거의 실시간으로 리포트하고나니,
금방 크리스마스가 왔습니다.
뉴요커들이 지하철을 타면서 기뻐하는 얼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겹칩니다.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입니다.
그렇다고 얼른 제 칼럼의 내용을 새로 바꾸기도 좀 아쉽습니다.
그래서 여기 추신의 형식으로 글 몇 줄과 크리스마스 사진 몇 장을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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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시 백화점 쪽의 장식입니다. 멀리 가끔 보는 우리나라의 정교한 루미나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거리의 눈 꽃 장식)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의 몰에 작은 성가대가 방문하며 찬양을---.)
아기 예수가 오신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하다.
예수께서 오신 날짜에 대한 로마 시대 이래의 깊은 상고는 신학적, 세속적
양면 접근으로 꾸준하였다.
나처럼 신앙적으로 별로 내 놓을게 없는 속물의 입장에서는 그저 하필이면
이 엄동설한에 힘들여 오신 아기 예수의 신비한 강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속적으로나마 가늠해 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전래적으로 동지 팟죽을 먹는 세시기의 의미에 성탄은 무언가
광휘를 보내주고 있는듯 하다.
만물이 모두 죽음의 상태로 빠져들고 빛나던 햇살은 하루가 다르게 소멸되던
그 엄동의 어느날,
마지막 불씨마져 잡아삼킬 것만 같던 그 어떤 불가해의 존재는 이제 다시 그
불씨를 토해내고 인간은 부활과 신생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제 되살아난 불씨를 목숨처럼 반기면서 붉은 팥죽을 쑤어
못된 탈취자와 역신을 쫓는 제례의식을 갖지 않았던가.
이 엄동에 아기 예수가 오신 뜻에도 이런 부활과 신생의 신비체적 의미가
이미 만세전에 예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구원자의 손길이 이 동지 섯달에 임재하는 그 오묘하고 신비한 의미를
이제 다소나마 깨닫게 된다.
성탄을 함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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