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했더니 장대 비 내리는 휴일 오후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나누다가 왔는데 정작 청교도들이 세운
이 나라, 미국에서는 성탄 축일의 공식 인사말이 "해피 홀리데이스"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즐겁게 축하해오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어째 공식석상에서는
실종되었는지 궁금증과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리스도"라는 말에 담긴 메시아, 구세주라는 의미 때문에 신앙이 다른 미국민(美國民)
일부로 부터는 반대가 있는 모양이다.
또한 같은 달인 12월에는 유태인들의 명절인 "하누카"와 아프로-아메리칸들의 축제일
"크완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만의 구세주 탄생 축하 개념에는 저항감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해피 홀러데이스"로 낙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엊그제 저녁에는 내가 사는 뉴저지에서 학군 구역이 좋기로 이름난 테너플라이(Tenerfly) 쪽으로 아들과 드라이브를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LA근교 오렌지 카운티에 버금가게 이 곳의 학군을 탐내는 학부형들이
많다고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다.
호기심으로 전에 몇 번 들렸던 곳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지나가며 보니 과연
보통이 아닌 동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집마다 거의 빠짐없이 바깥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품새가 미국 중산층 가정의
저력이 살아 숨쉬는 분위기였다.
그뿐아니라 아직도 잘 손질된 교회 건물에는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예배 순서가 크게
공시되어 있었다.
미국 대도시 근교의 교회 건물에는 조금 과장하면 어김없이 한글로 된 교회 표지가
있어서 영어가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곳 어느 수려한 교회의 게시판에는
"Merry Christmas!! The first six words in Christmas are the most important!"라는 글귀가
있었다.
달러 화폐에 들어있는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빼라고 헌법 소원이 청원된
나라,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에 "해피 홀리데이스!"라야 된다는 나라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용기있는 자들이 구세주의 강림을 강력하게 부르짖는 항변이 아니겠는가..
날이 어두워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온 것이 안타깝다.
글로나마 분위기를 충실히 전달하고 싶다.
미국 하원의장이 얼마 전에 "해피 홀리데이스"라는 공식 인사 대신에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말을 하여서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한다.
당연한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급변하는 세상사이다.
그러나 어쨌든 용기는 처음에 어렵지, 일단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고 보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외롭지않다.
아, 물론 하원의장의 말에 거센 항의도 많았다고 한다---.
믿음이 다른데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크리스마스날 오전에는 JFK공항으로 갔다.
새해까지 연결되는 휴가를 맞아서 며느리가 손주를 데리고 친정이 있는 서울로
다니러 가는 날이었다.
한국에 가서는 하청 공장까지 방문하는, 출장을 겸하는 일정이라고 한다.
나는 배웅이라기보다 아들과 드라이브를 겸하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은 홀리데이의 한가운데여서 매우 조용하였으나 우리 비행기와 일본 비행기가
뜨는 곳만은 유난히 붐볐다.
비수기 요금이 시작되는 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케네디 공항의 한식 메뉴)
일본 비행기 수속하는 곳에는 그 곳 유학생으로 구성된 찬양대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감동적으로 불렀다.
비기독교 아시아 국가인 일본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아무튼 손주가 비행기 안에서 어떤 난리법석을 떨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무사히 서울 도착했다는 전화에 안도했다.
배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롱 아일랜드에 있는 "존즈 비치"로 나가보았다.
흐린 날씨가 마침내 겨울 비를 떨구기 시작하였는데, 해안 도로에는 줄곧 작은 전구와
네온 사인 장식이 설치되어 있어서 무슨 야간 축제가 준비되는듯 하였다.
그러나 빛은 어둠을 밝힐 때 가장 빛나는 법인지,
루미나리 같은 정경을 뽐낼 장식들은 "낮에 나온 반달"처럼 아직은 쓸쓸하였다.
(존스 비치의 이정표이자 로타리 스톤)
하긴 인적없는 백사장의 모래언덕을 오르는 내 마음이 쓸쓸한건지도 모르겠다.
광활한 파킹장에는 싱거운 차들이 몇대 있을뿐 화장실 문까지 아직은 굳세게 잠겨
있었다.
우리가 롱아일랜드를 버리고 뉴욕으로 들어오는 데, 물안개 가랑비는 이제 장대비로
변하기 시작하엿다
일기예보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약간 비쳤으나 대체로 비가 올것이라는 조심스런
양수겸장이 나오더니---.
하긴 아쉬울건 없었다.
눈이 와봐라, 얼마나 일상이 힘들 것인가---.
(철시를 한 비오는 날의 거리 풍경)
늦은 점심을 먹으러 맨해튼 한인거리로 갔더니 유명한 곰탕집 하나는 성일(聖日)을
지키는지 문을 닫아서 그 건너편 설렁탕 집에서 줄을 섰다가 겨우 늦은 요기를 했다.
"이 집은 쉬는 날이 없어요?"
"네, 일년 열두달, 24시간 영업합니다."
자랑스레 씩씩한 대답에 가슴이 공연히 무거워진 "해피 홀리데이스", 비오는 날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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