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에 도박의 도시, 아틀란틱 시티를 다녀왔다.
전에 "라스 베가스"를 몇번 구경간 적은 있었지만 승부 근성이 적어서
그런지 돈을 딴 적도, 혹은 크게 잃은 적도 없었던 것이 내 카지노
경력의 전부였다.
이번 연휴에는 아들이 뉴저지의 아틀란틱 시티를 안내한다고 했으나
사양을 하고,
이곳에 이민을 와서 개인 사업을 하는 중등학교 동기 부부 와 함께
행운을 낚아보기로 하였다.
내 친구도 성인이 된 아들 딸들이 일가를 이루어서 가까이에 살고
있고, 전에 이 자녀들과 몇차례 아틀란틱 시티로 함께 가서 가벼운
겜블링을 오락삼아 즐기기도 했다지만,
세상에 마음 맞는 친구만한 사이가 어디 있으랴.
이번 연휴에는 젊은이들을 모두 재끼고 우리끼리만 거창하게 행운을
움켜 잡아보기로 하였다.
(타지 마할 도박장과 호텔)
뉴저지 턴 파이크와 파크웨이를 따라서 아틀란틱 시티로 가는 길은
휴일을 즐기러 가는 우리같은 사람들의 차량 행렬로 붐볐다.
전세 버스도 종종 눈에 띄였는데 양로원 같은데에서 단체로 가는
노인들이 가득하였다.
노년에 잠시나마 그동안 걸어보지 못했던 인생 살이의 가벼운 요행수를
탐해 보는 양로원 노인들의 나들이를 크게 탓할 바는 없겠으나
요즈음은 도박에 중독된 노인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탄 차의 옆으로는 가끔 리모(limo)라고 하는 긴 리무진 승용차도
지나갔는데 도박 판의 큰 손들을 카지노 회사에서 특별히 모시는
차량이라고 한다.
교민들 중에서도 저걸 타고 다니는 맛에 중독이 되어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데, 떠도는 이야기라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뉴욕이나 LA의 생활전선에서 고생 고생하여 번 돈을 날리는
교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만리타향에서 바삐 살다가 가끔 가벼운 배설 작용을 하는 것도 건전한
재충전에 다름 아니겠고 우리나라에서도 카지노 랜드에 정신적
긴장을 풀어버리고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어느 곳이거나
자살 소동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긴 어느 곳에 살건, 오늘 날은 세상살이가 모두 험한 타향살이가
아니겠는가만은---.
북한의 나진 선봉에 영국 기업이 세웠던 도박장은 중국인들이 몰려
가서 그동안 북한 당국의 수지가 쏠쏠했는데,
그 곳 역시 중국 부자들이 돈을 탕진하는등 부작용이 심하여 중국의
공안당국이 마침내 국경을 막았다는 이야기를 연변에 있을 때 들은
기억이 난다.
인간에게는 도박 충동이 원초적으로 있는 모양이다.
(꽉 들어찬 도박장의 파킹 장)
내 친구의 운전 솜씨 덕분에 우리는 한번도 쉬지 않고 두시간 반 만에
아틀란틱 시티로 들어가서 구경을 겸하여 중심가를 우선 슬슬 돌아
다녔다.
도박장이란 역시 꿈을 좇고 신기루를 잡으려는 인간의 허황된 본능을
뒤흔들어 놓아야겠기에 낮인데도 휘황찬란하게 조명을 받는 빛나는
이름들은 모두 현실의 저 건너편에 있는 환상의 공간들이었다.
예컨데 "타지마할" 궁전이 인도 코끼리 형상과 함께 우뚝 서 있었고,
아랍문자가 어지러운 "카스바"가 있는가 하면 "시저스 팰리스" 건물은
라스베가스에서 본 것과 비슷한 몽환적 모양이었고 남 태평양의
"발리"라는 섬 이름도 느닷없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내 친구 부부가 전에 와서 재미를 보았다는 "쇼우 보우트"로
들어가서 "드림 보우트"를 탄 기분으로 오늘의 행운을 잡아보기로
하였다.
"처음 온 사람이 따는 것이라네, 잘해 봐, 브라보!"
친구가 덕담을 크게 외쳐주어서 나는 힘을 얻고 20달러를 슬롯 머신에
집어넣었다.
원래 "슬롯 머신"의 slot이란 세로로 찢어진 구멍을 뜻하는데 이제는
코인 대신에 지폐를 넣게되어 있어서 모양이 가로로 찢어지게
되었는데도 이름은 그대로 슬롯 머신이었다.
친구의 덕담은 과연 주효하여서 나는 늦은 점심을 먹기까지 꽤 돈을
많이땄다.
친구 부부의 이 날 전적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도박장을 누비던 우리는
부페 레스토랑에 들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18달러씩 하는 밥값은 그렇게 싸지는 않았지만 넓은 홀에는 빈 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레가 왔다.
흔히 밥값과 호텔 비용은 공짜 수준이고 오로지 도박장에서만 손님의
주머니를 턴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은듯 하였다.
오래전이지만 라스베가스에서 2달러짜리 부페를 먹은 내 기억이
혼란스러워졌다.
또한 LA에서는 나이든 교민들이 라스베가스로 은퇴 이주를 하는데
집값이 싸고 세금도 싸고 카지노의 부페도 싸고 잘하면 도박판에서
한 밑천 건질 수도 있어서 그렇다는 우스게 같은 풍설이 문자 그대로
낭설같기만 하였다.
도박은 언제 일어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아니던가.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에 우리는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도박장 내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으로 알면서도 나는 마구
셔터를 눌렀는데 열번만인가에 겨우 한번 정중한 제지를 받았다.
어쩌면 슬롯 머신 쪽을 많이 찍고 블랙 잭이나 룰렛 쪽을 기웃거리진
않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틀란틱 시티는 이름 그대로 대서양변에 신기루처럼 우뚝 서있는데,
여름이면 해변과 길거리에 인파가 미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어서 아무리 연휴라고 하여도 해변가는 썰렁
하였다.
차가운 해풍에 일렁거리는 파도는 고향떠난 나그네의 심금을 슬그머니 울리기
시작하여서 우리는 "밀리언 벅"을 움켜쥘 뜻을 적절하게 접으면서 귀향길에 올랐다.
(겨울날 불온한 대서양의 파고 위로 해조 한마리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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