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문학작품의 혼란스러운 신 분류방식

원평재 2006. 1. 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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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빨리 변하면서 문학 작품의 분류 방식도 예전같지 않고 혼란스럽다.

 

문학 작품이 현실 세계의 모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미메시스

(모방)이론"은 많이 수정되거나 다른 주장으로 보완 혹은 대치되었지만

현실의 반영이라는 기반이 달라질 수는 없으리라.

 

 

 

그러므로 문학 작품이 오늘날 급변하는 현실계에 따라서 여러 장르로

새롭게 해체와 재구성의 이합집산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리라.

전에는 책방의 문학 착품 코너를 찾으면 장단편 소설집, 에세이, 시집

등이 국내와 국외 작가편으로 단순하게 분류되어 꽂혀 있는 정도가

거의 공식이었다.

 

 

 

 

 

 

 

 

 

다만 예전에도 소설 작품 만은 다시 순수 문학 소설, 탐정 소설, 과학

공상 소설 등으로 세분화 되기도 했지만 결국 탐정 소설이나 과학 공상

소설 두 분야는 문학 작품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거룩한 독서계에서 

천시되는 운명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고상한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이런 작품들이 꽂혀있을 자격을 얻는

데에는 한 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IT 정보화 사회가 되고 우리가 처한 입장이 좋든 싫든

후기 산업 사회와 깊이 관련을 맺기 시작하면서 문학작품의 콘텐츠는

격변하였으며 서술 구조와 기법, 주제와 가치관도 아울러 사정없이

달라져 버렸다.

 

또한 지식 정보 분야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철 시대로 바귀면서

이제는 콘텐츠의 문제뿐만 아니라 책의 생산 방식과 내용을 담는

테크놀로지에도 가히 혁명적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듯이 이제 종이에 내용을 담던 서적은 눈으로 보는

서적, 귀로 듣는 서적으로 발빠른 변모를 모색하게 되었다.

누가 책을 종이와 활자로만 구성되었다고 정의하였던가---.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제 서점들의 점두 디스플레이 정책에도

일대 혼란이 초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도서관의 사정도 이와같은 혼돈 과정에 일부 들어섰으나 영리가

일차적 목표인 서점보다는 아직 보수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을 하는

형편이다.

 

미국의 서점가에서 사이버 판매를 하는 야후 등을 제하고 가장 큰

판매 실적을 자랑하는 "리얼 서점"인 Barnes and Noble 같은데에서

이런 현상은 극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짧은 기간동안에도 이 서점의 점두 디스플레이 원칙은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다.

 

 

 

 

 

 

"픽션과 문학"이라는 복합적 뜻을 담은 서가가 있는가하면 "뉴 픽션"

이라고 하는 아리송한 분류를 받은 책자들이 바로 이웃 진열장에서

보이는데 세밀히 분석을 해보면 특별한 특징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혹시 성격이 다른 책자를 찾아본다면 "자전적 소설"이 눈에 띄는가

하면 일부 역사소설도 있고 팬터지 코너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팬터지 성격의 소설도 보인다.

 

 

 

 

"SF" 소설, 곧 "사이언스 픽션" 혹은 "과학 공상소설"과 "팬터지"로 분류된

진열대에는 재래의 과학 공상 소설 분야의 작품과 우리가 영화로 접했던 과학 공상 이야기들이 꽂혀있다.

"ET"류가 여기에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뉴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진열대와 본질적인 장르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진열대의 내용 범주는 거의 같았으나 새로 출간된 과학 공상 소설일

따름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로맨스" 문학 작품과 "뉴 로맨스" 문학 작품도 비슷한

차이, 혹은 차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혼란과 궁금증으로 서비스 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역시 예상했던데로

점두 디스플레이 방식의 차이 내지 "차이 없음"이라는 답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확인을 시도해 보아도 카테고리의 차이가 없고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법일 따름이라는 정확한 답변만 얻었을 따름이었다.

 

 

 

 

 

 

 

 

 

 

"미스터리" 작품과 "뉴 미스터리" 작품에도 그런 정도의 차이 밖에는

찾아낼 수 밖에 없어서 기본과 원리를 찾기 좋아하는 인문학 연구자

에게는 아쉬운 답변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요즈음에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만화"를 누가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했던가.

그러나 미국의 평론가 "테리 이글턴"의 말처럼 "모든 미디어는 모두 문학

텍스트"라는 말처럼 이제는 만화 콘텐츠를 두고 문학 작품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어리석은 경우는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만화의 종구국이 일본임을 반영하여서 대부분의 만화 작가 혹은 그래픽

노블 작가는 일본인들이었는데 이제는 확고하게 문학 정전(正典)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다.

대본은 물론 모두 영어로 되어있었다.

 

 

 

 

 

 

 

 

 

 

이제 에세이와 시집의 차례가 되엇다.

이 두 장르는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이 전통적인 단일 분류로 변화의

광풍을 외면하고 자기 주소를 지키고 있었으나 그러다 보니 다른

장르에 비해서 너무나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긴 요즈음 출간되는 모든 산문들은 모두 에세이에 속하고 독자 보다

많은 사이비 시인들은 시집 출간을 망설이고 있지않은가.

운문의 시대에는 조종이 울리는가---.

 

 

 

 

그러고 보니 쉐익스피어를 위시하여 드라마의 세계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그랬다.

이 시대가 과연 어떤 시대인가,

 

이 영상의 시대,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에 이 작품들은 평상의 진열대에

끼어있지도 못하고 문자 그대로 한쪽 코너에 쳐박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초라한 서가 위에는 장르를 달리하는 존 스타인벡과 뉴 노블 계열에

속하는 작가의 작품 표지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는데,

그 밑에서나마 코너가 할애된 것이 천만다행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