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아웃 오브 아메리카 (그라운드 제로 지대에서)

원평재 2006. 2. 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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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귀국을 앞두고 보니 정리못한 일 투성이이다.

갖고 온 주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개인적 관심과 흥미 차원에서

수집코자했던 뉴욕의 덜 알려진 부분에 대한 발굴 작업도 턱없는

욕심으로 판명되었다.

거기에다 "입원과 수술"이라는 육체적 고통과 시간적 낭비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못한 일에 대한 핑계대기로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중에서도 정리하여 올리지 못했던 아까운 부분들이 짐을 싸면서

여기저기에서 삐죽이 모습을 들어낸다.

아쉬운데로 파편화된 편린들을 이리저리 끼워맞추어 올려보고 싶다.

 

 

이름하여 "아웃 오브 아메리카"로하여 연재의 첫 부분은 "그라운드

제로" 지대이다.

지난해 여름, 뉴욕에 오자마자 들린 곳이지만 그동안 정리를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계획이 이미 완성되었고 "세계 무역

센터(WTC)의 바로 옆에 있어서 피해와 훼손이 심했던 "도이체 방크"

건물도 안전진단 끝에 새 건물의 건축에 발마추어 아쉬우나마 허물어

버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막상 이곳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 

때에는 속이 떨렸다.

재작년인가 급히 지나가며 이미 한번 본적도 있었지만 꼭 방금 전에

피격 사건이 일어나서 건물이 막 붕괴된듯한 착각이 생겼다.

 

 

 

 (뒷쪽 허물어낼 도이체 방크 건물에 망을 쳤다. 게시판에는 붕괴 직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공연히 상처입은 심장에 카메라를 들이 대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붕괴의 자리에 십자가의 모습으로 남은 철골을 보면서 인류

근세사에 저 잔해만큼 상징적, 기호적인 형상이 있을까,

뜻깊은 격랑같은 것이 가슴을 훑어지나면서 마구 셧터를 눌렀다.

 

 

 

 

 

세계 무역 센터(WTC)가 공격을 받기 꼭 한해 전에 바로 그 옆에있는

"월드 파이낸셜 빌딩"에서는 당시 MBA를 하고있던 아들이 그곳에 있는

투자은행에서 현장 수습을 받으면서 우리를 초청하여서 느긋하게

두 건물과 주변을 샅샅이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두 빌딩은 구름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우리는 왔다 갔다하면서

정크 푸드를 먹기도 하고 관광객 수준의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에 와서

현장을 다시 보니 "세옹지마"의 느낌도 든다.

 

 

                          (건재한 월드 파이낸스 빌딩의 세 건물)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서 지하철을 타고갔는데, 폐허가 된 WTC역

에서는 내리지 못하고 그 다음 역에서 내려 월가를 걸어갔는데,

도중에는 미국 증권거래소가 버티고 있었다.

특별한 장식도 없이 칙칙한 색갈에 밋밋하게 권위를 드러내고 있는

이 건물의 출입구는 물론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WTC역은 완전히 통제된 것이 아니라 지하철 라인에

따라서 열린 곳도 많았다. 

보수와 정리를 위한 잠정 조치였는데 처음 가는 입장에서는 내내 가슴을 졸이고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은 폐허에 펜스를 쳤으나 게시판을 크게 세우고

새로 짓는 건물의 청사진을 세밀하고 웅장하게 공식적으로 내걸었다.

대국의 자세를 위엄있게 드러내 보이는 장면이었는데 희생자들의 명단

도 함께 게시하여서 그들의 넋을 조상하는 것 같았다.

 

 

 

 

 

파괴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서는 바로길 건너편에 있는 "21세기 백화점"

으로 발길을 옮겼다.

파괴되고 사라진 것의 바로 건너편에 대규모 아울렛 매장이 있어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그 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화려한 상품

들이 풍요롭게 진열되어서 아이러니컬하게 보였다.

 

일반적으로 아울렛 매장이라면 의류 중심으로 특화되어있는데 이 곳은 백화점 식으로 패션에서 생활용품까지 정말 없는게 없었다.

조금전 까지 인류사를 통시해 보던 거대 서사적 감상은 당장에 현실

감각으로 전환이 되고야 말았다.

 

 

 

 

 

 

 

돌아올 때에는 "그라운드 제로"역에서 지하철을 타기로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야채와 과일을 파는 난장이 섰고 계단

아래로는 부서져 폐허가 된 지하 공간과 임시로 보수하여 쓰는 번잡한

지하철 역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세기부터 그러했지만 21세기의 전장은 전방과 후방이

없다는 이야기가 실감이났다.

 

지금 뉴욕은 전쟁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