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시간은 언제나 섭섭하고 쓸쓸하다.
귀국을 앞 둔 주말에 아들 내외가 우리를 허드슨 강의 사우드 시포트로
안내하였다.
"고맙다."
내 말에 "덕분입니다. 저희들도 2년인가 3년만에 와봅니다"라고 하였다.
덕분이라니 갸륵하였다.
틀리기를 바랬던 일기 예보가 정확하여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니 스산하게 겨울 비 오는 날씨가 한 무드를 하였다.
뒤로 브룩클린 다리와 더 뒤로는 맨해튼 다리를 배경으로 나도 한 커트
하였다.
브룩클린 다리에는 감회가 있다.
내가 작년 늦가을에 복통을 앓으며 가까스로 진정이 된 상태에서
브룩클린으로 가자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 전에 이스트 빌리지를 찾아갔을 때에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곳으로 부터 밀려 온 그곳 예술가들이 이제는 브룩클린으로 다시 밀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라서 그랬던 모양같다.
그날 복통이 소강 상태를 이루자 우리는 브룩클린의 석조 건물들을
감상하였던 것이다.
당시 그곳에 가서 살펴보니 거주민들의 구성은 백인 쪽이 아니었다.
그 좋은 석조전 미술관과 공공 건물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예술적
돌집들을 뒤로하고 백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많은 예술가들이 맨해튼으로 부터 밀려오면서 이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동네가 처음 형성되던 초기의 활력을 곧 되찾을
것이 확실하였다.
어쨌거나 그 늦가을의 브룩클린 방문이 무리가 되었는지, 그 다음날
나는 한 밤중에 응급실로 실려갔던 것이다.
그런 난리를 치른 날들도 몇달이 지났다.
이제 떠나는 주일이 되어서 몸과 마음을 고친 건강한 상태에서 나는
그 다리를 뒤로하고 섰다.
타고온 차를 고가도로 아래에 세우는데 일요일, 손님도 없는 빈 공간의
주차료가 24시간을 통으로 하여 21달러였다.
세시간만 세우겠다니까 2달러던가를 빼주었다.
가히 살인적었다.
아니 서울도 그렇지 아마.
가히 "서울적"인가---.
그 고가도로 아래 빈터에서 광대가 불놀이와 외발 자전거 타기를 추위
속에서 몇 안되는 관중들에게 보이며 자선을 구하였다.
동전이 쩔렁거리는 모자에 1달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페리나 크루즈가 떠나는 선창 옆에 세워진 시푸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복잡한 이름의 시푸드를 "알 라 카르테"로 시켰더니 야박한 분량이었으나
맛은 좋았다.
나와 아들은 칵테일을 한 잔씩 시켜서 마셨다.
나는 아일런드 베리였고 아들은 더 복잡한 것이었는데 대주(臺酒)가
모두 "럼"을 사용하여서 좀 강한 편이었다.
중국에서온 정크선도 있었고 워터 택시라고 물길을 관광시켜주거나
통근 때도 달리는 작은 배가 있어서 호객을 했으나 날이 추워서 여름을
기약하였다.
나오다 보니 "풀러턴 피쉬 마켓"이라는 큰 간판이 보였는데
우리 수산업 업자들이 뉴욕 어물 시장을 주름잡으며 오래 사용하다가
최근에 옮긴 바로 그 옛 건물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비릿내 나는 선창들은 오래 유서깊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날씨 좋은
후일에 꼭한번 돌아보아야할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를 건너 오후의 브룩클린으로 오랜만에 다시
들어가 보았으나 작년, 그 늦가을 밤의 감상은 겨울비 속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달빛 속에서 일상을 보고 그 세계를 그려내야 한다"는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의 "로맨스 론"이 생각났다.
햇볕 아래 보이는 세상은 작가가 감당할 대상이 아니고 달빛 아래,
하다못해 거을이나 물결 위에 비친 일상이라야 로맨틱한 가치를 새로
창출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처럼, 다시 가 본 브룩클린은 허드슨 강에
제 모습을 드리워서 겨우 제 진면목을 뽐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역시 맨해튼을 거치게 되엇다.
57번 거리의 유명한 시계포, Tourneau Time Machine을 지나오는데
틱톡하는 초침 돌아가는 소리 가운데 "서울 시간"도 태극기 휘날리며,
뉴요커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감격이 따로 없었다.
우리 깃발도 알아주다니.
아니 왕성한 시계 구매 사절단들 탓인가---.
까르띠에(Cartier)가 몇년 사이에 두배로 뛰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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