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기행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원평재 2006. 1. 26. 03:58
 

떠나는 날을 카운트 다운하는 어느날에 작별을 섭섭해 하는 친구의

초청으로 두 집이 만났다.
"롱 아일랜드"에서 30년 이상 "신장 내과" 전문의로 개업을 하고있는
김 박사와는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세대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지난해 말,
이 곳에 사는 또다른 동기의 집에서 만났고 이번이 두번째였다.

 

내가 이제 짐을 싸게 되니까 롱 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으로 초대

하기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맨해튼 한인 거리에서 저녁을 하자는 

초대였다.

우리는 저녁 시간에 꽤 큰 힌극 식당에서 반갑게 재회하였다.
부부가 모두 곱고 우아하게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지난번의 내 느낌이

다시 확인되었다.

 

"그동안 통 귀국하지 않았던것 같네?"
내가 물었다.
"응, 우리 양가 어른들이 오래 노환이셨는데, 일년에 겨우 한 일주일

귀국하면 병 수발하고 대기하느라 집안에만 있다가 얼룬 돌아오곤했지.

친구 만날 시간이 거의 없었어. 동생하고 용케 시간을 내면 근처

골프장에서 살짝 한 라운드하고 다시 달려들어온게 전부였어---."
말이 많지않은 그가 조용히 저음으로 대답하였다.

그의 고향은 시골이었다.
가까이에 골프장이 있나보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음악을 전공하여서 전도 유망한 연주가로 벌써 경력이

많았고 한국계인 며느리도 주목 받는 연주가였다
유태계 사위는 전공이 달랐는데 내 친구 부인이 갖고 온 외손녀의

사진을 보니 영롱한 아기의 얼굴이 그림처럼 예뻤다.

 

부인은 중학교를 우리가 다닌 학교와 같은 도시에서 다녀서 인연의 끈이

닿아 있었고 고등학교는 서울로 왔는데 알고보니 내 집사람의 1년 선배였다.
세상이 좁다.

 

"은퇴는 언제 할건데?"
내가 우리나라 분위기에 젖어서 은발 동안(童顔)의 청년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방면 전공이 흔치않고 또 정년해봐야 별로 재주가 없어서 할 것도

없으니 당분간은 딴 생각없이 일이나 계속하려고 해---.여행도 귀찮은

일이더군."
그가 또 잔잔히 웃으며 답하였다.


"이 양반이 평생에 하는거라고는 병원 일과 골프 뿐이랍니다. 재주가

없어서 남보다 골프 연습도 두배나 해야 되니까 다른 데 눈 돌릴 시간이

없답니다."
부인도 웃으며 거들었다.

 

"나는 단순해서 그런지 골프 치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더군.

다른건 아무 것도 할줄 몰라. 여행도 한두번 해보니 아무 재미없이

귀찮기만 하고, 또 교회도 나가지 않는다네.

그래서 이 세상 하직할 때면 나는 화장해서 뼈를 골프장에 뿌려달라고

할거야.
처음에는 오래 살아 온 정든 집 정원에다 뿌려달리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다가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면 자식들이 찾아와보고

싶어도 못오잖아.

골프장이야 공공의 것이니까 출입이 자유롭겠지. 멤버쉽을 하나씩

주고가도 되겠고---, 하하하."

"맞아, 나무 밑에 뿌려달라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또

화목으로 쪼개질걸 생각하면 잔디밭이 좋겠네, 하하하. 영혼이 있으니

육신에 너무 연연하지 말게."

 

내가 재미 작가 김은국이 쓴 "순교자"에 나오는 공산학정과 고문을

이기고 살아남은 주인공 목사님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신학교에서 사실은 가장 확신도 없이 공부를 마친 그 목사님은 용케

간난신고를 이기고 살아남았으나 주변으로 부터 배신자라는 오해와

질시를 받지만 동족 상잔의 저 피어린 지옥 참상을 보고는 구원의

목소리를 황야에서 외치는 것이다.

김은국이 실존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다.

 

자신이 없는 내가 문득 참람한 기분으로 김은국을 생각한 것은

인간적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얄팍한 심정에서였나보다.

그래, 인간적으로 이제 우리 나이도 'ash to ash"를 예사롭게,

담담하게 이야기 할 때도 되었다.

 

"언제 한국에 또 올래?"
내가 그의 후의에 대한 보은도 약간 염두에 두고 물어보았다.
"금년 6월 30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아들 딸 며느리가 KBS 교향악단과
협연이 있어서 그때 함께 갈까하거든요. 브람스의 더블 콘첼토---."
부인이 대답을 하는데 친구가 얼른 허리를 자르며 덧붙였다.

"6월 30일 밤에 기억이 나거들랑 연주회장으로 와서 만나주면 고맙겠어.
다른 날은 일가친척들과---, 또 가사로 일정이 빠듯해서 못만날 것 같네---."


 

사실이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또 내 얇은 보은의 계획을 미리 사양하는 지혜가 담긴 표정이기도
하였다.

 

 

 

 

 




The thorn bird theme...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자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한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 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