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운 친구중에 인터넷 ID를 "마스타"로 쓰는 사업가가 있다.자동화 기기를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니 기술자이자 사업가인 셈이다.원래는 직조 관련의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는데 한동안 고전(苦戰)을 했다.살아가는 전공이 다른 내가 깊은 내용은 알수 없었으나 부품중 자동화 센서가 문제였던 모양이다.그러나 곧이어 전자 공학의 비약적 발전이 이 부분에 획기적 변화를 갖여오면서 자동화 공정을 개발하는 그의 사업에 서광이 비쳤다.그의 자동화 기기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타월과 이음새 없이 통판으로 짜는 언더웨어 쪽에대박이 터졌고 중국과 인도에서도 수공업 직조의 원가와 자동화 쪽의 원가가거의 손익 분기점의 분수령에 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이제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어쨌거나 그의 제품이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마침내 이런 곳까지 뚫고 들어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상표가 바로 "마스타"였다.하여간 그는 사이버상의 닉 네임까지 마스타로 하였으니 리얼한 세상과 사이버 세상에 두번 태어난 셈이었다.그런 그가 세상을 돌아본 끝에 새로운 욕심이 생겼나보다.유럽은 물론이고 인도나 중국이나 파키스탄이나 모두 인생은 유한한데결국 남아있는 것은 예술적 조형물 뿐이더라는 것이다.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Ars longa, vita brevis).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어이, 김 박사. 자네는 금속 공예하는 사람이니까 도예하는 분들도많이 알겠네."그가 오랬만에 찾아와서 접근하며 던진 말이었다."그런데 왜?"내가 그의 투철한 사업가 기질을 알기에 조금 경계의 반응을 보였다."도예 부분에 자동화가 들어갈 여지가 없을까? 내가 예술에 대한미련이 있잖아, 예부터---.""도예 공방 안내는 해 줄 수 있지. 하지만 자동화 공정 팔아먹으며예술가 취향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텐데---.하하하"이건 농담이었고 사실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예술가 기질이랄까장인 기질이 있었고,그래서 그의 사진술, 묵화 등은 어떤 경지에 이르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어허, 김 박사. 바로 그 점이 문제야, 그런 인식이 문제라고---.자네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서너무 잘 모른단 말이야. 적어도 한 예술품이 창조될 때에는 거기에 참여한 각 단계별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의 이름으로 작품 속에 각인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연대 보증같은 거야.예컨데 성 베드로 대 성당은 성당의 건축가도 높이 평가 받지만그 속에 있는 작은 성당, 그러니까 코펠라 시스틴이던가, 그 부속 성당에 천지 창조를 그린 미켈란제로, 수많은 성화를 그린 라파엘, 등등이 모두 찬란하게 함께 빛나잖아---.""하지만 마스타 사장! 거기에서도 물감을 갠 도제들이나 안료를 만든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거나 표가 나지 않잖아, 천정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침대달린 사닥다리 만든 사람도도구만 남았지 그 이름은 사라졌잖아---."물론 나의 이 반대 토론도 서로 낄낄 웃는 가운데 전개되었으며 마침내피아니시모로 소멸되었음 물론이었다.상업성에서 나왔든 예술적 배려가 있었든지간에 하여간 우리는 그가 말머리를 제안한 김에 얼른 날을 잡아서, 우리나라 도예의 메카이자 내 동료들이 군거하고 있는 이천으로 향하였다.부연 설명하자면 예술하는 내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모두 그 쪽, 이천에 몰려 살았다.아니 가족들은 강남에 살았고 남정네들만 시절이 좋을 때에 번 돈으로또 땅값이 쌀 때에 장만한 기반으로 그곳에 아뜰리에들을 지어서 살았다.다만 우리 같이 금속 공예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거창하게 살지는 못한다.예술 작품 장르별 시장 규모 차이 때문이었다.그들이 이천에 몰려산다고는 하지만 각각의 아뜰리에는 사실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아니 예까지 와서 몰려 살지 왜 이렇게 서로 떨어져 살아?"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친구이자 우리를 안내한 도예가에게 흩어져 사는 모습을 힐난하였다."아이구, 모르시는 말씀. 첫째 상품이랄까, 작품이 어느 한쪽은 재고가 쌓이고 다른 공방들에서는 매일 실어나가 봐요. 부아가 나다가 병까지 생겨요. 예술가도 인간인데---."내가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 이의를 달았던 것은 내 친구 사업가 "마스타"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였었다.떨어져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그외에도 또 많다.몰려살면 남자들끼리만 사는데도 서울 사는 부인들 사이에 이런 저런수입 비교가 나오고 급기야 티격태격까지 생기며,또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여러가지로 큰 고민을 안겨주는 점이 있다."사과 한 상자를 사갖고오려고 해도 열집이 모여살면 열상자를 사야된다니까---."머리가 일찍 센 그 곳 도예가의 실토였다.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찾아간 P 도예가의 공방은 바로 옆에 K 교수가 운영하는 또하나의 공방이 있었지만 성격이 아주 달랐다.P 씨는 공공기관이나 교회나 성당의 벽면을 장식하는 큰 규모의 모자이크 벽면과 성상을 만드는 거대 규모의 도자를 구워내는 반면,그 옆 K교수의 공방에서는 생활 용품을 다량으로 구워내고 있었다.P씨의 경우 지난번 이천에서 열린 국제 도자 비엔날레의 상징물이자 메인안내소의 역할을 한 키오스크 건물 및 작고한 시인 A씨의 기념탑을 단일조형물로 구워낸 것이 특기할 만 하였고, K 교수는 요즈음 유행하는 코발트 블루 색갈의 컵이나 수반을 대량으로 구워내고 있었다.내 친구 "마스타"의 관심은 P씨 보다 단연코 K 교수 쪽이었다."이걸 모두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물레를 돌려서 만듭니까?"그가 주위에 있는 젊은이들을 둘러보며 물어보았다."에이, 요즈음 누가 물레를 돌립니까. 모두 전동으로 하지요.그리고 손으로 빚지않고 이 틀에 넣어서 돌리지요. 이렇게 나온 것을얘들이 손도장 찍듯이 눌러서 무늬를 만듭니다.""그럼 예술작품 제작에도 이미 자동화 공정이 들어갔군요"내 친구가 좀 낭패스러운듯이 물어보았다."글쎄 요즈음은 악세레타까지 물레에 붙여놨으니 자동화인지도모르겠지만 이 틀 속에 반죽을 넣고 적당히 돌리는 일과 빼내는 일,다시 손으로 무늬 만드는 일들은 아직도 완전 수동식이지요.이 젊은 대학원생들은 제가 BK-21을 따와서 돈이 나오니까 이 작업을하고있지만 이게 만료되면 순수 작업이든 상품화 작업이든 제 갈길을 가게 되어있지요. 그럴 때는 자동화를 하던지 중국에 넘기든지---."K 교수가 씁쓸히 웃었다."야, 이거 이럴 때가 좋았지!"아뜰리에 구석에 아무나 마시게 설치해 둔 생맥주 통에서 거품을 흘리며 술 몇잔을 뽑아오던 P 씨가 오른 발을 부르르 부르르 리드미컬하게 떨었다. 술이 잔에서 질질 쏟아져 나왔다.우리는 모두 커다랗게 웃었다.나도 생각이 났다. 내 친구 마스타만 어안이 벙벙한채 멀건히 있었다."이렇게 발을 부르르 떨게 하는게 도예과의 전통적 과정이었어."내가 친구인 마스타 사장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 전공은 아니었지만 옆 동네라서 학교 다닐 때 오른발을 부르르떨게하는 이 우스운 구경은 많이 했지."신입생들이 들어오면 물레차기를 시작하는데 왼발만 쓰게 되니까 선배들이 그러다간 한 쪽 발만 길어진다고 겁을 잔뜩 주었다.똑같이 발 길이를 유지할려면 오른 발도 떨고 흔들어야지 아니면 큰일 난다.도예과 아이들이 어떤 애들인가,한 재산 있는 집 아이들이 신체의 균형발육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가---.신입생들이 입학하여 한학기 내내 헛발을 부르르 떨고 다니는 꼴을 금속공예학과 다니는 나도 보고 킬킬거린 기억이 억수로 난다.
쑥쑥 늘어가는 물레실력~~~"예술이 살아있던 좋은 시절이었어!"우리는 맥주 거품을 쓱쓱 입에서 문지르며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고오늘을 탄식하였다."아이구, 그때 흙을 5층에 있는 실습장으로 올리자면 하루 밤을 꼬박 새웠다니까요."누가 또 옛날을 생각하며 추억에 불을 질렀다."맞어. 가마에 넣을 나무를 팰때는 또 어떡허구---. 3개월을 장작만팼다니까.""지금은 어떻게 하죠?"질문은 마스타의 몫이었다."저걸 보세요. 저기 쳐박혀 있는 것이 요즈음은 안쓰는 전기로이고 이젠 모두 프로판 가스로 불을 지피죠. 그래서 잘못 구워진 작품을부시고 하는 모습도 많이 사라졌지요."전기 가마(0.14 루베)가스 가마(1루베), 일명 전투가마라고 하지요"예술작품을 완전 자동화하는데에는 않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단착수하면 제 닉네임인 마스타를 어느 구석에라도 넣어줄 수 있을까요?""글쎄요---, 그건 아무래도---."힘들겠다는 표시였다.예상했던 답이 나오고 있었다."그런건 나중에 또 연구해 보고 우리 선배님인 M화백 이야기나 하자, 이 근처에 계시잖아."내가 말머리를 돌렸다."아, M 선배? 요즈음 참 화풍이 좋아지셨지. 진즉 이혼하시는건데---."누가 미술 평론을 하였다."므슨소리!"내가 좀 웃길려고 어떤 코리디언의 흉내를 내서 "므슨 소리"라고 운을뗐다."므슨 소리! 소크라테스는 악처 크산티페가 있어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잖아."하지만 아무도 내 말에는 웃거나 답을 하지 않았다.아무래도 내가 우리 금속 분야와는 거리가 먼 입체 설치 작업을 하는 M 선배에 대해서 그동안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한모양이었다.조금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에 P씨가 내말을 받았다."그 양반이야 악처 케이스가 아니었지. 지금 아뜰리에를 지켜주는 건 어떤 청년이거든---. 예술의 경지는 참으로 오묘한 거야. 우린 그 양반 같은 경지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르지 못할것 같어. 요즘 그분의 작품은 거의 신기에 가까워!""게이이신가요? 이혼하고 나서 커밍 아웃을 한 겁니까?"마스타 사장은 그 선배를 모를 뿐 아니라 이쪽 사정에 어두우니 겁도 없이 성질나는데로 물었다."아이구, 모르는 부분은 이야기 하지 맙시다."그곳 사람들은 이방인의 거북한 헛말에 다들 입을 다물기 시작 하였다.우리는 나오면서 "Poem"이라고 서명이 들어있는 코발트 블루 빛갈의생활 소품을 하나씩 얻었다."어때?"내가 마스타 사장에게 물어보았다."아직 옛 시대는 다 가지 않았고 새 시대도 완전히 도래하지는 않았나봐. 그리고 도요지의 예술 세계에 지금의 내 입장으로 뛰어들긴 힘들겠네!사실 인생 정리 단계에 순수한 자세로 예술 작품 제작에 투자도 좀 생각해 봤었는데---."그가 갑자기 오른 발을 물레차듯 부르르 부르르 떨며 어떤 결론을 맛보고 있었다.
선운사 - 송 창식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눈물처림 후두둑지는 꽃말이예요나를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당신은 그만 당신은그만 못 떠나실거예요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눈물처럼 동백꽃지는 그곳 말이예요눈물처럼 후두둑지는 꽃 말이예요나를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당신은 그만 당신은그만 못떠나실거예요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눈물처럼 동백꽃지는 그곳 말이예요눈물처럼 동백꽃지는 그곳 말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