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서부 출장 일지(日誌) / 2

원평재 2004. 4. 27. 07:10
자주 드나드는 미국이지만 갈 때마다 점점더 입국 수속장에서는 구토가 날 지경으로 제대로된 대접을 못받는구나---. 모르면 약이지만 얄면 약이 오른다.못난 녀석들의 거만한 말씨도 못알아들은체 하며 레이저 붉은 빛 아래로 얌전히 지문을 바치고 입국 목적은 아첨하듯 덕담쪼로 읊어야되는데---.하지만 그런건 모두 잊자.예전에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하며 오늘을 슈거 코팅하자.LA 국제 공항에 도착하여 어찌 달콤 쌉쌀한 지난날의 감회가 없겠는가.저 천문의(天文儀)인지 지구의인지를 반으로 잘라 놓은듯한 반구형의 공항 컨트롤 타워도 오늘날은 주위에 높은 건물들이 솟으면서 그 위용이나 자태가 크게 훼절되었지만 그걸 배경으로한 내 젊은날의 실연이나 시련의 개인사는 어찌 달콤쌉살하지 않겠는가 말이다.어쨌거나 추억거리와 오늘 받은 모멸감을 서로 바터하여 가치의 교환(exchange of values)을 하며우리는 셔틀을 타고 유나이티드 에얼라인만이 배타적으로뜨고 내리는 게이트로 갔다.전에 막내가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는 여길 걸어서 왔지.하여간 UA에서도 다시 신발을 벗고 짐을 풀고 옷을 벗는 달밤의 쇼같은거지같은 행위를 하고서야 우리는 목적지인 A시로 가는 프로펠러기를 갈아탈 수 있었다.A시의 A대학은 우리연구소와 오랜 학술 교류를 해온 유명한 대학이었다.총장과도 구면이었고 여자 부총장(provost/교무처장직도 포함된)이나 기타 다른 여러 처장들도 모두 구면이어서 그 곳 캠펴스에 도착해서는안방에 온 기분이었다.우리는 짐을 호텔에 풀고 조금 쉬다가 총장 공관에서 베푸는 디너 파티로 갔다.초로의 총장은 겸손한 자세로 우리를 맞았고 주의회 의원들과 A시는 물론 인근 타운의 시장들도 모두 게스트로 나왔다.아름다운 총장 부인도 조금 늦게 나와서 손님 접대를 했는데 나이로 보면 부군과는 차이가 좀 있어서,문화가 다른 사회의 일반적 현상을 반영하는듯하였으나 손님들이 이러쿵쿵 저러쿵 용훼할 몫은 아니었다.이 곳 디너 파티의 특징은 엄청난 와인 공세였다. 이곳이 어디인가. 나파 벨리를 목전에 두고서 와인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닌가. 술안주는?핑거 푸드라고 하여서 손가락 빨기. 과일과 크랙커와 치즈를 내놓고 겸손과 재치가 어우러진---.그곳 교수들이나 연구원들이나 중국에서 온 연구원들이나 모두 와인에는,아니 와인 마시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실력대로 무지하게 마셔댔다.중국 사람들은 사진 찍기도 좋아하여서 금발의 대학원 여학생들이나 연구원들과 사진을 많이 찍었다. 몇몇 사람은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가려고 뒤로 물러나다가큰 풀장에 풍덩 빠지기도 했다. 날이 무척 더웠다.디너 스피치에서 나는 A시의 와인이 이미 나파 벨리의 와인을 제압했다는 국제적 선언을 선포했다.인근 리들리 시에서 온 시장이 특별히 나의 연설에 깊은 감동을 보였다.리들리 시?맞다.100여년전 우리 선조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거의 노예 수준의 이민을 왔다가계약 기간이 끝나고 본토 서부로 진출했을 때 여기 리들리 시에 김 씨 성을 갖인 두분이 일찍 정착하여 하와이 동포들을 초청하여 일꾼으로 쓰면서 크게 동포애를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나는 작년에 LA에 다른 일로 출장을 왔다가 코리아 타운의 어느 호텔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출판 기념회를 하는 곳에 우연히 참석했는데 거기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그 자손들은 아직도 백만 장자였다. 그들은 한국에 장학 재단이나 스칼라쉽을 제공하는 기관을 만들고자 했으나 카운터 파트가 없었고,여러해 전부터는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입북했던 기록들이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국내에 들어가서 관계 요로에 알아보겠다고 한 내 대답은 그때 이래로 허공에 맴돌았을 따름이었다.오늘 다시 리들리 시장도 두 김씨 이야기를 하였다. 시장은 그곳에 투 코리언즈를 기리고자 기념관도 짓고 있다고 하였다.장한 일이라고 칭찬하며 나는 그에게 덕담을 남기고 강한 인상의 부총장에게로 자리를 옮겼다.그녀의 이름은 제로미니아 에체베리아였다. 통칭으로는 제리였다.제리가 제랄드나 제롬 등의 애칭으로 알고 있던 나는 어느때이던가 제리라는 닉 네임을 사이버 세계에서 쓰는 한국사람을 만나서남성 이름이 아니겠느냐고 물음 표시를 한적이 있었다.그녀는 "중등학교 교과서에 "탐 앤 제리"가 있잖아요",라고 하는 바람에 말을 잇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런 소감을 제리 에체베리아에게 말했다."아하, 그렇군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제리라고만 불러요---." 그녀는 그런 팬시한 대답을 하였다.섹시한 답변이라는 표현도 옳다. 멋진 대답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팬시"라는 표현 수준에 머룰고 싶다.이날 밤 우리 모두는 와인 속을 허우적 거렸다.다만 핑거 푸드로는 배가 고파서 들어오는 길에 미국 연구원들과 스시 바에 가서 생선 초밥을 조금 먹고 정종 사케를 또 시켜서 마셨다. 생선을 미국 사람들이 먹지 않는다는 건 옛날 일이다.호텔 방에 돌아와서 누우니 머리가 일렁거렸다.세면장을 향하여 문간으로 다가가니 거대한 사나이가 세면장 문앞에서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모습은 미남이었는데 매우 고압적이었다.이크 옆 방과 통하는 문을 내가 잘못 열었구나!놀란 내가 다시 왼쪽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보니 긴긴 복도가 좌우로 달려가고 있었고 내 등뒤로는 철커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맙소사, 오밤중에 방을 나와서 자동문이 닫긴 것이다.나는 중정에 있는 풀장을 따라 걸으며 사무실 쪽을 향하였는데 다행히 금발의 미녀 경비원이 앞쪽에서 오는 모습이 보였다.얼짱에 몸짱이었다.나는 풀장으로 기우뚱하며 빠졌다. 금발이 달려왔다. 나는 바닥이 얕은 풀장에서 "어푸, 어푸" 아니 "헬프 헬프" 하였다.이어서 달빛 아니 야간 조명등 아래로 몸짱 금발의 멋진 다이빙, 그녀는 세이프 가이드 훈련도 받은 모양이었다.우리 둘은 사이좋게 풀장을 나왔다. "달밤에 쇼 하지 마세요."내가 옳게 알아들었나?목을 뒤에서 조이는듯 나를 끌고 나오며 그녀가 조용히 경고하였다.아름다운 풀벌레 소리도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피곤할 때마다 울리는 이명(耳鳴)이었던 것도 같다.(계속)

내 격정 시대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모찰트,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Violin Concerto in G major, No.3, K.216)을여기에 삽입해 보고 싶군요.제 日誌와 맞건 맞지않건---.모짜르트는 다른 작곡가들 보다도비교적 많은 협주곡을 남기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중에서도 바이얼린 협주곡은 7곡밖에 작곡하지 않고 있는데이는 그의 피아노 협주 작품과 비교해 볼때 상당히 적지요.더우기 피아노 협주 부분의 곡은 일생동안 작곡한 반면바이얼린 협주곡은 그 중에서도 다섯곡이 모두 1775 년 (19 세) 1년동안에 작곡된 것을 보면모짜르트가 바이얼린이란 악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알 수 있습니다바이얼린 협주곡 제 3번 G장조.K216은이에 앞서 작곡된 제 2번보다 약 3개월 늦게 완성되었습니다바이얼린 협주곡으로서의 전체적인 구성은앞의 제 1번과 제 2번과 비교해 볼 때별로 눈에 띄는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으나작품의 규모나 확실한 기법또는 표현의 폭이나 예술적 가치등 여러면에서 볼 때에는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긴 하지만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제 1 악장협주풍의 소나타 형식입니다전개부는 비교적 규모도 크고,또 비교적 자유롭게 작곡되어 있습니다 제 2악장모짤트가 특별히 배려한 악장이다독주 바이얼린이 주요 주제를 연주하는 전개부가 됩니다 제 3악장"론도"라고 불란서풍으로 표시되어 있듯이거의 불란서적인 접속곡으로써 중간에 짧은 단조의 안단테와장조의 알레그레토의 부분들이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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