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왕비와의 하룻밤 (연재 네번째 글, 다음 회로 끝)

원평재 2006. 3. 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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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은 한 됫박이나 되는 땀을 장마 뒤의 이슬처럼 등에 흠뻑 짊어지고

새벽부터 일행을 깨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조선족 향사모 회원 하나가 머리를 긁으며 말을 했다.

"강 총무님,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부터 답사하려는 성자산성

동하국에 관해서는 전설과 괴담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동하국 왕비가 몽골이

쳐들어 왔을 때에 많은 재물을 치마 폭에 싸서 아이들과 도망을 가다가 저기 앞 쪽

브르하통 하(河)에 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보다 숲이 우거진 옛날이었으니 수량이 풍부한 깊은 강이었겠지요.

그런 전설이 생긴 이래로 세월만 어려워지면 보물찾기 꾼들이 몰려들곤 했답니다.

문화혁명 이후에 살기가 어려워졌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저 부르하통하를

뒤지고 난리들이 났지요."

 

"뭘 좀 건졌나요?"

"아이구, 세월이 800년이나 흘렀는데 무슨 보물이 있겠어요. 다만 저 산성터에서는

심심치 않게 동전,엽전, 동경, 팔찌 등이 나오고 있답니다. 지금도---."

"그럼 의미있는 탐사를 오늘부터 한번 해 봅시다. 그리고 특별히 유물 관계는 항상

그렇듯이 중국의 문화재 단위 규정에 따라야합니다."

강 선생이 좀 엄한 얼굴을 하고 일행에게 다짐을 받았다.

"저회들은 걱정마시라요. 중국 공민이니 잘못하면 큰 코 다치지요."

조선족 향사모 연길 지부장으로 있는 박 선생이 크고 시원한 대답을 하였다.

 

"저희들은 항상 그렇듯이 지표 조사만 하는 걸로 허락을 받아놨으니 실제 유물이

있어도 처치 곤란입니다. 표토 밑의 지층 조사는 중국 공민이지만 민간단체로는

허가 받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아요.

특히 동북 공정에 동북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너무 관심을 많이 쏟아서---. 요즈음

이 곳 발굴 현장을 한번 보세요. 군사작전 같은 분위기를 알만 할 겁니다."

박선생이 덧붙이는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여간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이 작업에 임합시다."

강 총무가 얼떨결에 몸과 마음을 함께 깨끗이 하자고 강조하였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왕비께서도 몸까지 바치시겠다는데요, 하하하."

연길 향사모의 어떤 싱거운 회원이 크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일행은 그 말에 모두 함께 웃으며 성자산성까지의 대절 차편에 올랐다.

6월의 싱그러움이 달리는 차창으로 들어왔다.

 

차는 브루하통하를 끼고 비 포장 도로를 계속 달렸다.

"브루하통"은 만주어로 버드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버드나무는 위해주는 이도 없는 모래 톱에 혼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성능이 시원치 않은 반트럭은 숨을 헐덕이며 이제 강을 버리고 성자 산성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주위에는 몇채 되지않는 초가로 된 조선족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한족들의 가옥은 아직 근방에 한채도 없었다.

조선족과 한족 가옥 구조의 구별은 주로 귀틀 여부에 있었다.

통짜로 지붕을 만든집은 한족 가옥이고 끝 부분을 망건처럼 처리하여 귀틀을 낸

구조는 조선족,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옛 초가지붕과 같은 것이었다.

 

"아직 여기는 한족이 들어오지 않았네요?"

강 선생이 물었다.

"네, 고구려 발해 선조들의 숨결이 워낙 센 모양이지요, 하하하."

정말 유쾌한 웃음들이었다.

"아니 여기는 금 나라의 지방 장수, 포선만노가 세운 동하국이 아니던가요?"

강선생이 확인차 또 물었다.

"그래봤자 고구려 산성, 발해 산성을 모두 이어받은 것이지요. 또 금 나라의 왕들도

모두 다 우리 김씨입니다. 어제 밤 꿈에서도 왕비께서 말씀하셨다면서요? 하하하."

박 선생의 말이었다.

"개꿈일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문헌 연구 결과만 갖고도 저는 박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확인해 보는것이었지요."

 

길 옆으로는 무우와 배추, 그리고 일부에서는 담배 잎이 무성하였다.

나이든 영감님과 할머니가 풀을 뽑는 옆에서 젊은이가 소를 몰아 밭을 뒤엎고 있었다.

일행은 차를 멈추고 내렸다.

정상은 바로 그 윗 쪽이었다.

"안녕하세요?"

강 선생이 말을 걸었다.

영감님은 경계의 눈초리였으나 할머니는 당당했다.

 

"보물 캐러 오셨수?"

할머니의 말이었다.

"보물?"

"아, 요즘은 뜸하더니 또 왔나보네. 보물 찾을려면 저 아래 브루하통하를 뒤져야지

여기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 뿐이라오.

왕비가 보물 갖고 빠진데는 저 아래 강쪽이라니까요."

할머니가 빨리 가라고 손을 휘휘저었다.

"할머니, 우리는 서울에서 왔어요. 보물 캔 것이 있으면 구경 좀 합시다. 값이 맞으면

살 수도 있어요."

역시 용의주도한 강 선생의 접근책이었다.

그제서야 영감님과 청년의 눈이 번쩍 띄었다.

"저 아래 집에 있는데 지금 가 보시겠어요?"

영감님의 말이었다.

 

"우리는 먼저 저 산성으로 올라가 조사 연구할게 있으니 내려올 때 봅시다."

"그러시구려, 우리도 손 씻고 준비해 놓으리다. 어디 치워놓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영감님도 보통 넘는 단수였다.

이게 모두 한국 사람들이 키워놓은 버릇인지도 몰랐다.

하여간 급하면 오리발을 내 밀 포석이었다.

"할머니, 광우리에 담긴게 뭡니까?"

강선생이 물었다.

"풀 뽑다가 철 지난 인진 쑥과 민들레 뿌리를 캤지요. 점심 잡수실 때나 술 드실때

장에 찍어 자셔보세요. 맛이 쌉쌀한게 반찬은 될게요."

그녀가 광우리에서 한 웅큼이나 되는 풀을 건네주었다.

 

"아이구, 여기 민들레는 독성이 강한데---. 한번 취하면 정신없어요."

박 선생이 조심스레 풀뿌리를 받았다.

그들은 곧장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은 생각보다 평평하고 꽤 넓었다.

그리고 두 방면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한쪽은 거친 돌로 성곽을 쌓았으며

그들이 올라온 쪽만 무방비 상태의 길목이었는데 예전에는 저 아래쪽의 브르하통하가

물길로 방어선을 쳐 주었을 것이다.

물론 성곽과 성문도 있었을테고---.

 

"전형적인 고구려 산성이구려. 환인의 오녀산성과 쏙 빼닮았네. 규모는 훨씬

작지만---."

"네, 강선생님 잘 보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조선족 박선생의 안목도 비상하였다.

그들은 잡초가 무성한 넓은 터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광목을 다시 펴놓은 다음

제사상을 차렸다.

박선생이 축문을 읽으면서 고구려 발해 그리고 동하국의 포선만노 왕과 그 왕비를

위로하고 진무하는 내용을 넣어서 살아서 듣는이들까지도 감동하게 만들었다.

귀신이 있어서 들었을 지라도 이들의 뜻에 감읍할만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갖고온 막걸리와 흰술(白酒/배갈)을 궁궐터에 조금 붓고 나머지는 음복을

하며 함께 나누어 마셨다.

강 선생은 아까 받은 민들레 뿌리를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보았다.

정말 쌉쌀하면서 맛이 있었다.

그는 몇뿌리를 통째 먹었는데 일시에 몽롱한 기분이 밀려왔다.

부지런한 젊은 사람들은 궁궐터를 측량하고 주춧돌도 찾아내서 전체 방위를 잡고

밑그림을 그렸다.

생각보다는 궁궐이 크다는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강선생은 나무 밑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인가 포선만노 왕의 정실 부인, 어젯밤에 본 왕비가 다시 나타났다.

"축문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녀가 눈 가장자리에 눈물을 달고 속삭였다.

"비극의 장소에 와서 우리도 울적합니다."

 

서로 동맹을 맺었던 몽골은 천하통일이 가까워오자 그동안 중원과 한반도에 압력

세력의 역할을 하며 협력관계 역할을 해 주었던 동하국을 쓸모없는 세력으로 보고

불시에 쳐들어와 궁궐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들은 모두 도륙을 냈다고한다.

축문에서는 그런 원혼을 모두 달래어 진무했던 것이다.

 

"감사해요. 그럼 또 들러서 힘을 보태드릴께요. 저희들이나 잘 수습해 주셔요."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고 저녁해가 기우는 현장에서의 첫날 행사도 끝이나고 있었다.

내려 오면서 그들은 아까 만난 노인댁에 들렀다.

성은 김씨인데 본관은 모르겠다고 했다.

족보도 문화혁명 때에 후환이 두려워서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줏어다 놓은 유물들을 살펴 보았다.

동전과 엽전은 흔한 것이었지만 동경(銅鏡), 그러니까 구리 거울은 조금 조잡했으나

짐승들의 그림이 전면에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무언가 상형 문자 같은 것이

주술적으로 둥근 원형을 이루며 또한 새겨져 있었다.

 

농가의 마당 한가운데에는 조선족들의 말로 "방아확"이라고 하는 방아 절구통이

나뒹굴고 있었다.

모두 산성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외에도 산호와 호박으로 만든 반지 같은 것도 나왔는데 강 선생의 관심은 오직

동경에 있었다.

아니 동경보다도 그 뒤에 새겨진 문자의 뜻이 무언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산호와 호박 반지에만 보물로서의 관심이 있었다.

 

"구리 거울이 투박하네. 얼마면 팔겠오?"

강선생이 무관심한듯 흥정을 붙여보았다.

"이건 만원은 받아야 합니다."

할머니가 내뛰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구리 거울이 무슨 만원이요, 그거면 우리돈으로 백만원인데---."

"우리는 이 거울로 우리 아들, 늙은 총각 장가를 보내던지 출국을 시키던지 하여간

팔자를 좀 고쳐보기로 천지신명께 기도하고 꿈속에서 약속을 받았어요. 살 사람이

나타난대요."

 

"혹시 그거 포선만노 왕비가 나타난것 아니었나요?"

"아이구,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동방에서 귀인이 나타나 가난한 우리가 꼭 소원

성취할거라고 꿈 속에서 일러줍디다.

우린 그래서 만원이 아니면 팔수가 없어요. 그래야 이 아들 서울 나갈 돈이 된다오."

할머니가 반색을 하면서도 결연하게 값을 재차 주장하였다.

 

"저기 앞 집은 초가가 아니고 기와를 얹었는데 무슨 집인가요?"

"우리와 농사를 같이 짓는 사람인데 밭에서 보물을 좀 주워다 팔아서 지금은 연길

서시장에 가게를 내고 장사를 나갔어요. 그때 밭에 지천으로 돌처럼 굴러다니는

기왓장을 매일 줏어다가 지붕을 새로 기와로 얹고도 남아서 찾아오는 서울 사람

들에게 거져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또 팔기도 했겠군요?"

"싸게 팔았지요. 그런데 남한 사람들이 그걸 갖고 나가다가 공항에서 걸리고 조사가

나오고 한동안 복잡했어요. 저 집도 지금 공안에서 조사중인데 일이 끝난건 아닌거

같아요. 지금은 빈집처럼 있지요."

"영감님은 왜 기와를 얹지 않았어요?"

"그거 얹으려면 먼저 대들보와 서까래를 다시 갈아야하고---, 잘못해서 내려앉으면

다 죽어요."

 

영감님의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녔는데 기와를 인 집은 큰 쇠통으로 단단히

대문을 채워놓고 있었다.

산골의 저녁이 빨리 찾아와서 그들은 얼른 시내로 돌아왔다.

강 총무는 그날 저녁에도 목욕재개하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연변 향사모 사람들이 한 방에서 함께 자자고 호기심을 표시하였으나 그는 정중히

물리고 혼자 자리에 들었다.

역시 새벽 두어시가 되었을 때 왕비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옷고름을 풀고 나른한 자태로 나타났다.

 

"장부님, 오늘 저희들은 매우 감동을 했습니다."

"아, 우리는 항상 그렇게 예와 제를 올립니다. 오늘만 특별한게 아니지요."

"그래도 그런분들 만나기가 힘들죠. 더우기 이런 산골에서는---. 제발 저희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아까 보신 그 동경과 함께 좋은 땅에 묻어주십시오."

"좋은 땅이 어디인가요?"

"아, 마른 땅이면 어디나 좋습니다. 그리고 그 구리 거울도 꼭---."

"아 그 거란 문자 동경 말이군요. 그게 도대체 뭡니까?"

 

"저희 친정 쪽에서 내려오는 소망과 사랑의 표상 같은것이지요. 저희는 원래 거란과

여진의 씨족이 화합하며 통혼도 하고 지내온 집안인데 그 동경을 집안의 큰 여식에게

대대로 물려주었지요. 그걸 벽에 걸어놓고 얼굴을 비추어보며 화장을 하고 또 뒷쪽의

거란 문자로 사랑의 주문을 외우고 허리나 배꼽에 사향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멀어졌던 남정네의 마음도 돌아온다는 부적같은 것이었어요. 저희 가문이 대대로

권문세도가와 통혼을 하였기에 남자들이 여색을 탐하였고 그래서 집안의 여인네들은

그런 부적이 필요했겠지요.

저도 포선만노 장수에게로 시집을 와서 제대로 한번 사랑을 받지 못하고 허망한

권세만 쳐다보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이 변방 장수로 오면서 금 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황제를 칭하고 나라를 세워서 저는 왕비가 되었지요.

왕비의 생활이 얼마나 고독합니까. 허구헌날 규방은 젊은 궁녀들에게 다 빼앗기고

제가 왕과 침소를 같이 하여도 마음데로 몸사랑을 해 볼 수도 없지요.

점잖은 왕비가 어떻게 호위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방중술을 펼 수 있겠으며 왕인들

저를 따뜻이 사랑으로 감싸 줄 수 있었겠습니끼?"

 

"왕과 왕비의 잠자리도 호위대가 지킵니까?"

강선생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어보았다.

"그럼요.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지르지요. 시종들의 말로는 궁녀들은 온갓 방중술로

왕을 모신다는데---.

그러니 왕의 발길이 중궁의 처소로 올 리도 없지요. 그래도 사내 아이와 딸 아이까지,

모두 둘을 낳아 잘 길렀지요. 그러기를 한 20년, 그런데 갑자기 몽골 기병대가 이

모든 것을 휩쓸어갔지요. 저는 아이들과 궁중의 보물을 안고 물길로 뛰어들었어요. 

열다섯에 시집와서 제 나이 서른 다섯 때의 이야기랍니다. 제발 구천에 떠도는

저희를 수습하여 저승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애수 어린 눈빛이 유난히 인상적인 왕비는 여명이 닥아오자 스르르 사라졌다.

 

(계속, 다음회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