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팩션 쇼우와 세종대왕 밀릉(密陵) (연재 3회의 첫번째)

원평재 2006. 3. 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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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정 태 세 문 단 세 예 성 연 중 인 명 선 광 인 효 현 숙 경 영 정 순 헌 철 고 순"

 

사회자는 조선시대 왕들의 시호를 열 번도 더 반복하더니,

"10대 왕은?"

이렇게 물었다.

털털거리는 고물 전세 버스의 맨 앞에 앉은 반지르르하게 생긴 중년이

얼른 "연산군!"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네. 잘 맞추셨습니다. 상금으로 오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박수!"

박수가 터져나왔다.

 

오랜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본부 대기 대사로 와 있는 나를

불러낸 사람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동기생, 박 교수였다.

내 나이에 본부 대기 대사란 이제 곧 공직을 떠나야한다는 예비 신호

발령이었고

마침내 퇴임을 하면 다시 한 2년간 "외교 안보 연구원"에서 글을 읽고

쓸  자유로운 자리는 주어진다.

뿐만아니라 어지간하면 그 동안의 경력 기간 동안에 쌓은 지식과

지혜로 대학강단에 나가도 존중 받는다.

전밈 발령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도 있고하여 겸임이나, 

강의 교수, 연구 교수, 기금 교수 등의 타이틀로 명예롭게 강의 자리도 

얻을 수 있는만큼 내 성정에는 꼭 들어맞는 인생 정리의 수순이었다.

 

박 교수와는 고향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절친한 선의의 경쟁자

관계였는데,

나는 정치학과를 나와서 외무 고시 끝에 여러나라의 대사로 밥 먹고

국위선양하느라 평생을 보냈고,

그는 국문학과를 나와서 박사학위까지 고생을 하더니 서울의 어느 큰

사립대학교 교수로 평생을 지내고 있다.

그가 모교인 국립대학으로 가지 못함을 때로 애통, 절통해 하지만

나는 배부르고 허튼 소리 말라고 면박을 주는데,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UN대사 하면서 주미대사 못하는 한을 갖인 우리 쪽 사정과 비교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자리는 꿈도 꾸지 않았고 소국과 변방만 다닌 사람이다.

 

현대 문학을 전공한 그는 가끔 문학 평론에도 손을 대더니 이제

나이가 들자 직접 소설을 쓴다고 하더니 "팩션"인가 무언가 하는

단편 작품집을 내고는 출판 기념회를 연다고 요란을 피워서 작년

어느 때던가 나도 잠시 참석한 바는 있었다.

 

"패션 쇼우"도 아니고 "팩션"은 무엇이며 이 바쁜 세상에 "출판 기념회"

는 또 무슨 촌스러운 짓이냐고 비아냥대며 참석했던 그 날 행사에서

문학 장르의 재편과 변화와 위기 등등을 나는 놀란 가슴으로 새로

터득하게 되었다.

그때 놀란 이야기는 "팩션 출판 기념회"라는 글로 어디 이름이 좀 있는

문학 잡지에 발표를 한 바도 있다.

엉터리 글을 써서 박 교수에게 보여 주었더니 재미있다고 그가 주선을

하여 어떤 문예지에 글이 올라간 것이다.

 

그 글에서 나는 "팩션 출판 기념회"를 무슨 "패션 쇼우"하는 행사로

잘못 알았다는 것과 이제는 팩션이 팩트(fact), 즉 사실과

픽션(fiction), 즉 허구가 결합된 글쓰기의 새로운 한 장르임을

깨달았다고 먼저 실토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이 횡행하는 이 시대, 그로 인한 현장성, 즉시성,

속효성이 담보되는 시대,

전통적인 문학이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새로운 지평이 바로 사실과

허구가 비빔밥이 된 "팩션"이라는 것을 내가 늦게나마 깨닫고 경탄

했다는 내용을 "뻥"과 재미를 양념으로 쳐서 담아냈던 것이다.

 

글의 끝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팩션"을 우리 말로는

"사설(事說)", 즉 사실과 소설이라는 어휘가 결합된 신조어로 표현

하면 어떨까하는 자칭 탁견(?)도 제안했으나 별로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그는 내 글을 높이 평가하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보듯이

가상의 주인공이 실재의 케네디 대통령과 직접 악수도하고 축하연에

함께 참석하는 등의 상황 설정과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그런 영상을

꾸민 것이 바로 팩션의 본 모습이자 대표적 예라고 하며 이제 활자

매체와 영상 매체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추천사도

달았다.

그의 창작집은 CD로 구워진 소위 "e-book"이었는데 노래와 영상이

들어가 있는 획기적 매체였다.

 

그는 평론가답게 팩션이 역사소설과는 엄연히 다른 장르라는 것도

꼼꼼한 논리와 해설로 명쾌하게 가름하였다.

그러나 현실계에서 바쁘게 평생을 지낸 내게 문학의 세계는 그것으로

그만일 뿐이었다.

내 캐리어를 높이 본 그 문예지에서 수필 같은 것으로 등단 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고도 한 해 이상이 흘러갔는데, 어느날

박 교수가 역사 탐방이나 하자면서 갑자기 연락을 하였다.

 

"이 대사, 자네 세종대황의 숨겨진 왕릉에 대해 들어봤나?"

"뜬금없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모르는구나. 그런게 있대. 만원 한장이면 하루 두끼 식사도 주고

세종대왕 영릉과 인근에 있는그 감추어진 비밀의 능도 보여주고

그런다네.

나랑 한번 그 관광버스 타볼까?"

"박 교수, 그거 공인된 학술 대회같으면 모를까 관광버스 수준이라면

냄새가 좀 풍기는데---.

난 아직도 공무원 신분이야. 잘못하면 망신한다니까. 자네도 교수

신분인데, 사학에 몸담고 있으니까 나하고는 또 좀 다를지 모르겠네

---."

 

내가 은근히 몸을 빼도 박 교수는 막무가내였으며 나도 다시 생각해

보니 크게 낭패날 일이야 없을듯 하여 주말의 이상한, 막말로 요상한 

관광버스 여행에 함께 오르게 되었다.

참가비 만원은 이미 박 교수가 선불을 했다기에 이래저래 그의 강요를

느끼며 주말의 알토란같은 새벽 시간을 헐어서 약속된 장소의 관광

버스에 일단 오른 것이다.

이제 하루 일진이 같게 된 버스 안의 일행들을 살피니 모두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는데 다만 입성들은 모두 괜찮았다.

아무래도 성공한 자식들 덕분에 공양을 받는 팔자좋은 노인들 같았다.

나와 박 교수는 상대적으로 최연소자였다.

 

"자네 이 효도관광 비슷한 데에 어떻게 알고 참여했어?"

내가 물었다.

"응, 대학원 학생 하나 말이 자기 할아버지가 어디서 들은 거라고---,

세종대왕의 비밀 능, 그러니까 '세종밀릉'이 어딘가 존재하는데

그 탐방단이 떠난다는 이야기가 노인 대학 쪽에서 돈다고 내게

헐레벌떡 알려온거야. 국가에서도 지원하기에 이리 싸게 가는거

겠지."

 

"그렇게 엄청난 역사 탐방이 어째 축늘어진 노인들의 경로 잔치처럼

되었을까---.

하여간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속담 잊지

마시게."

 

고물 관광버스는 매연을 검고 길게 꽁무니로 내뿜더니 여주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버스가 중부 고속을 올라타서 조금 지나니까 막걸리와 간식이

나오고 행사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는 "노인 복지 선양회"의

회장이라는 풍채 좋은 사람이 직접 술과 안주를 들고 돌아다니며

권하였다.

나와 박교수도 한잔씩 얼떨결에 예의로 받아마셨다.

술이 한순배 돌고나니 분위기는 아연 활기를 띄어서 노인들 특유의

자식 자랑이 두둥실 버스 속을 한바퀴 돌았다.

자식 자랑으로 몸들이 녹으니까 사회자는 눈치를 보아가며 따로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짝을 맞추어서 한 쌍씩 좌석 재배치를

하였다.

 

"이거 순 묻지마 관광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게 뭔데?"

그가 물었다.

"이 양반이 책상물림이긴 해도 그 말도 여태 몰라? 그러고도 무슨

소설인지 팩션인지 쓴다고?"

"들은 풍월이야 있지만 이러긴 처음이라는거지."

"난들 언제 해봤을까? 척하면 삼척이고 툭하면 옆집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아무튼 이게 말로만 듣던 묻지마 관광, 효도 관광이구만. 훌륭한

국문학 교수를 친구로 둔 덕분에 좋은 경험하네.

빙고! 이 참에 오늘 우리 팔자나 한번 고쳐볼까? 히히히."

아침 빈 속의 술낌에 내가 히히히하고 웃었다.

 

"회장님."

내가 큰 소리로 자칭 노인 선양회 회장을 불러세웠다.

"우리는 할머니, 아니 언니 파트너 필요없으니 신경쓰지 마시오."

"아이구, 그러면 동성연애하시는 줄 알텐데요, 히히히."

이 빤드레하고 눈치 빠른 녀석이 내 웃음 소리를 먼저 귓전으로

나마들었는지 역시 히히히하고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