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 윗쪽에는 왜 이리 보랏빛인가---.
오동나무 때문이었다.강줄기가 내내 그런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호반을 따라 한정도 없이
오동나무가 많았는데지금이 개화기,보랏빛을 온몸에 달고 있었다.(아, 그 오동나무 꽃색을 재현해 낼 수 있다면---.
비색이련가---).작은 산이 있으면오동나루를 잔뜩 심고 돌아가는 날에는 그 곳에 뿌려졌으면---.
아픈 곳이 많은 어떤 선배의 말이었다.보랏빛 꽃 달았을 때 그러면 더욱 좋겠구나,원도 한도 없이---.
그분 말씀과 여기 청평의 보랏빛을 내가 엮어 생각해 보았다."너무 뜨겁지 않을까요?"비겁한 내 말.
"어둠 속에 한정없이 누워있는것 보단훨씬 낫지 않을까---."깊은 사유가 있었던듯 선배의 말은 술술나왔었다.어쨌거나
하찮은 대화였지---,영혼과 육체가 갈라서는 이치에서
구원을 얻거나스티브 호킹처럼 우주의 원소나 인간의 원소가합성 비율이 같다는 이치에서 피안으로 가는 출발을 원소 분해로 보고
담담해 하거나 간에---. 가평 설악에 작은 땅이 있어서 정년 후의 재실(齋室)을 만들어 볼까,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진입로가 막힌 소위 맹지(盲地)로 밝혀져 얼마전에 싸게 처분하였다.아픈 가슴을 안고 이곳 저곳 기웃거려보았지만 돈
도 턱없고 있다하여도 산골짜기에 거금을 쏟아붓기가 상식을 넘는 행위 같았다.탤런트, 세은이의 아버지가 내 마음을
알고 자기 친구인 땅 부자의 땅을 구경가자고 하여서 주말에 청평호 안쪽을 세 집의 식구들이 들어섰다.내가 갖고 있던
원래의 맹지는 청평호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설악면"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 왼쪽길로 구비구비 들어가서 "금대리"였다.유
럽풍의 개인 사저와 거대 규모의 모텔이 5-6년전 새로 난 길목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이제 얼마 후면 서울사람들은
오물을 먹고 마시고 바르고 지내겠구나 하는 근심이 문득 발동하였다.얼마를 달려 들어왔을까, 저 적막하던
"금대리"는 이제 백호 남짓의 새마을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이 되고 있었고, 나같은 백면서생이
둥지를 틀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친 듯 하였다. 그렇다고 아무리 친한 사이에서 또 한칸 건너가 친한땅 부자에게
"나 땅 좀 주시오"하고 생으로 땅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어서,호수의 건너편에 있는 잘 알려진 J라는 여걸의
별장만 재미 삼아 건너다보며 한유롭게 구경하였다.요트를 정박하는 시설이 있는 그 별장에는 그 J여걸의 자녀들이
주말이면 물보라를 일으키며 드나든다는데 이 날은 그런 장관을 볼 수 없었다.요트 정박시설은 군청에 허가를
넣어서 어렵사리 승인이 나면 또 1000여만원을 들여서 만들 수 있는데,홍수 때나 겨울에는 예인을 하여
어떤 시설에 가두어 두는 등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고 한다."별장"과 "요트"와 또 무엇은 갖는 순간부터 골
치라는 서양 잠언이 생각났다. 그러면서도 모두 이토록 골치 아파하지 못해 안달하는 시대정신에도 생각이 미쳤다.
제레미 리프킨이던가,소유의 미망(迷妄)에 대한 엄한 제어 기제를성자(聖者)처럼 설교하던---.하여간 유명한 여걸의
아이들은 물보라를 일으키고 난리이지만 정작 본인은 쇠청살 좁은 방에서 고통스레 지나고 있으니 살신성인도 아니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가까운 내 친구의 친구는 또 달리 큰 산을 하나 갖고 있어서 청평 양수 발전소 앞자락의 땅도
다시 찾아가 보았는데,언론에서 많이 떠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와 맞물려있었다.여럿이 개발하면 멀리 청평호도 내려다
보는 선경(仙景)을 이룰 수도 있겠으나 내가 신선되기에는 아직 수양과 자격이 부족하지 않은가---.마음을 달래었다.
하지만 이곳도 또 얼마있다가 다시 와서 보면상전벽해의 모습에 때 놓친 한탄을 하리라.돌아오는 길에 매운탕 집을 들렀다.
"진짜네 집"이라는데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등 재료를 이제는 청평에서도 냄새가 난다하여 화천에서 갖고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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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일품이었다.그 맛이 언론도 탔다고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갖고간 일본 정종을 한잔 하고 대장금이의 세은이 부
모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라고 부탁하였다."세은이가 오늘 저녁 8시부터 시청 앞 잔디 광장에서 축하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어서 전주에서 영화 찍다가 올라오지요---.""두 분도 가셔야겠군.""물론입니다.""무슨 영화찍나요?""
분신사바라는건데 귀신 이야기랍니다. 본인이 대본을 1/3가량 쓴 것이지요.""얼마전에 남산골에 유명한
역술인이 있어서 가봤더니 세은이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팔자에 좋다고 합디다---.
분신사바가 아직 절반도 못 찍었는데 300만불로 일본에 수출 계약이 되었지요. 사주 팔자가 맞나봐요, 호호호.
"세은이 어머니의 말씀.요즈음 일본 여고생들간에 신들린 이야기, 접신, 강신 이야기가 팍 뜬다고 한다.그 흐름을
잡았으니 아무래도 외부지향적 운명이고 팔자인지 모르겠다."제가 딸 덕을 좀 봤어요."세은이 어머니가 깔아주신 멍석이니까
한번 자랑을 하겠단다.앙드레 김이 옷한벌을 맞추어주게 되었는데,그렇게 된 전후 사연을 살펴보면,원래 앙드레 김이 새롭게
뜨는 스타들에게 모델을 부탁하는데두번을 거져 서 주었더니 "빚 마음"(마음의 빚)이 생긴 모양이다. 답례로 옷을 한벌
맞추어주겠다고 하여서 세은이가 어버이날에 어머니에게 대신 드리고 싶다고 여우 소리를 했고,"효녀"의 소원을 앙드레
김이 풀어준 모양이다."앙드레 김은 어떻게 옷을 짓던가요?""보디 가드랄까, 건장한 청년들이 그 분을 보호하는 등,
카리스마가 딱 잡혔던데요. 최고 고수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역시 권위는 매사 자신이
쌓아가야하는가 봐요."외국의 예를 보아도 최고 디자이너가 되면 권위와 신비를 스스로 창출하고 다닌다.꼬꼬 샤넬이나
갸르뎅이 그랬고 다나케어런이나 베르사체나 중국계 안나 수이나 모두 다 들어내지 않고 신비를 감고 다니나니---.
어디 디자인계 뿐이랴---.
민주사회에서의 제왕 되기란 인습적이 아닌 또다른 제왕학이 필요하지."아이구,
우리같은 사람은 제왕은커녕 제가(齊家)도 못하는데 골치만 아프네요."아까 산속에서 따온 두릅, 기름나물, 곰취,
그리고 또 알지 못하는 새순들로 일본 정종의 안주삼아 술이 과한 상태에서 내가 소리질렀다.맘씨 좋은 땅 부자 부부께서도
스타를 키우는 세은이 부모가 오히려 안쓰럽다고 하였다."평범한 내 자식들 다스리기도 힘든데---.
"우째 스타를 키우노---.그분들의 덕담과 위로사였다."여기 앉은 분들 모두 카네이션 잘 달고 오셨네요.
모두 수신제가 하셨어요."세은이처럼 얼굴이 예쁜 부인의 예쁜 결론이었다. 비니압스키의 레전드입니다.
안네 소피 무터도 정경화 못지않게 일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