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교수하는 내 친구는 한달이면 두어차례 이 곳 삼각지를 찾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이용원에서 건강 맛사지를 받으러 오는 것은 아니고
그때만 해도 교보 같은데에서 양서를 쉽고 싸게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여러가지 화보와 영상자료를 구하러 온 것이었다.
삼각지에는 8군내의 매릴랜드 대학이나 군인, 군속을 위한 도서관에서
나오는 철이 지났거나 쓰다버리는 양서를 구해다 파는 책방들이 그때만 해도
간판을 걸지않고 두어집 있었다.
때로 미군과 사는 여인들이 펜트하우스나 스웜프나 플레이보이지를 내다
팔기도 했었다.
"국문학에 무슨 서양 것들 벌거벗은 화보가 필요하냐?"
내가 비야냥거렸더니 그는 무슨 "영상 콘텐츠 개론"인가 하는 책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지은이는 내 친구, 국문학 교수의 이름이었는데 영화와 영상 광고, 비디오 아트,
영상 콘텐츠 등등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내용을 잔뜩 늘어놓고 자기 이름을
붙여놓은 책이었다.
여기 고본점에서 거져 줏다시피한 그림이나 사진을 잔뜩 늘어놓고 거기에 무슨
알기도 힘든 글들을 주절주절 달아놓은 책을 거룩한 교수의 이름으로 내놓았으니
대학 교수가 책 쓴다는 것도 알고보니 조금 우습기는 하였다.
교수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 녀석이 써 놓은 글은 특별히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말들이 많았고 그 뜻은 더욱 이해가 어려웠다.
거기에다가 말까지도 조금 더듬는 품새라서 처음 대하면 대체로 사람이 무식하고
모자라 보이기조차 하였다.
그렇지만 사람 됨됨이, 그러니까 뭣이냐하면 인격적으로는 점잖고 높은 데가
있었다.
친구 놈들이 이리로 오면 모두 내가 권하는데로 건강 맛사지를 꼭 즐기고 가는데
그만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너 고자냐?"
언젠가 내가 놀렸더니 "이 친구야, 내가 자식이 둘이나 되는데---."
이러고는 허허 웃는 것이었다.
내가 이 영업으로 밥을 먹고 돈을 벌지만 이런데 오는 놈들은 경멸하며 살고
있다.
그는 국문학 교수치고는 영어를 참 잘하였다.
우리 이용업소에는 여자 면도사들이 항상 들락날락한다.
미군 GI들 중에는 우리 업소 단골들이 꽤 있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믈론
복무 규정 위반에 속하였다.
지금은 그런 일이 절대 관용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전에는 이럭저럭 넘어갔고
그 때 인연 맺은 면도사들이 미국으로 국제결혼이나 위장 결혼으로 많이
넘어갔다.
그 수속을 대행해주는 업소가 삼각지에 많았지만 그는 무료로 그런 서류를
대필해 주기도 하였다.
책 사는 일과 대필 봉사등으로 그는 내 업소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 어느날 내 이용원에서 그는 춘희를 만났다.
전에도 정기 모임이나 신년회, 망년회 등의 특별 모잉에서 두 사람이
만나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교수하는 이 친구는 빠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아무튼 이렇게 세사람이 속닥하게 만난건 처음 일이었다.
마침 내가 건강 이용원을 더 확장하기 위하여 그녀로 부터 또 돈을 빌리던
참이었다.
그녀는 길순이와는 달리 돈 계산이 명확하였다.
항상 빌려간 사람의 인감 도장을 받아두었다.
그리고 전체 대출 규모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적어놓은 장부책이 또 하나
따로있었다.
"이게 복식 부기로 보면 원장이고 또 이건 분개장이야."
그녀가 언젠가 장부를 흔들며 설명했으나 내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주산-부기 학원을 다닌 그녀의 경리 실력은 보통이 아니라고들
하였다.
그녀는 그렇게 꼼꼼했으나 담보를 잡는 기색은 없었다.
담보 설정 비용이 많이 들어서 영세한 사람들에게는 배보다 배꼽이 크기도
하고 사실 담보 잡을 물건이 마땅하게 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돈을
빌리겠냐고 하였다.
"일수쟁이는 매일 매일 돈 빌려간 사람의 면상에서 인상만 쓰고 있으면
되는기라. 내가 매일 억지로 만드는 우거지 상판을 보고 돈 빌려간 장사치들이
일수를 안 찍을 수 있어?"
그런 악바리가 춘희였다.
남편과는 이혼이라고도 하고 사별이라고도 하는데 하여간 혼자 사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그건 어쨌건 일수 찍는 전문가이다보니 춘희는 동기회 기금도 관리하고
있었다.
직함은 총무던가 무슨 재무이사던가 그런 거창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학교 다닐 때 반장이니 급장이니 하는 것도 종내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의 춘희는 코나 찔찔 흘려서 별명이 코찔찔이었다.
아무튼 이날은 우리 이용원에서 셋이 모처럼 만나다 보니 분위기가 좋았다.
마침 시간도 어중간 하여서 손님도 없었다.
"야, 네가 우리 동기회의 헤게머니를 잡고 있구나."
국문학 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데?"
그녀가 진정 궁금한 기색으로 물어보았다.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리야."
"패권은 또 무슨 소리고?"
나도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보았다.
"춘희가 동기회 재무이사라면서---. 돈을 만지는 사람이 제일 힘이 세다는
뜻이야."
그가 궁리 끝에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렇게 설명을 하니 나도 간단하게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춘희도 금방 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오라, 내가 회계를 맡으니까 힘이세다--- 그런 말이구나. 회계 머니에서
나온 말이구나. 영어도 알고보면 우리 말과 비슷한게 많아. 깡통은 캔이잖니.
그건 그렇고 나는 회계머니를 꽉 잡고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하체가 그렇게
부실해서 어디다 써먹니. 나는 그 방면에도 회계머니를 꽉 잡고 있단다,
호호호."
춘희는 가만히 보니 사실은 머리가 좋아서 서울 말도 잘썼고 필요할 때에는
정말 애교도 만점이었다.
다만 사람 차별이 좀 심해서 탈이지, 제 마음에 들어서 괜찮다 싶거나 필요가
있다 싶으면 그녀가 몸까지도 헤프게 쓴다는 소리를 나는 우리 이용원의
면도사로 부터 듣고 있었다.
우리 면도사들도 여럿 그녀로부터 돈을 빌려서 일수를 찍고 있었다.
모두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꿈을 가진 아가씨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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