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회계머니-헤게머니 (4-끝)

원평재 2006. 4. 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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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용원의 면도사 아가씨 중의 한 사람이 "대한 면도사 모임"의 회계를

맡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으니 그녀도 회계머니를 쥐고 있단 말인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면도사 모임을 "면모"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면도를 면모(面貌)라고 했다면서 사실은 유서깊은 이름이라고도

하였다.

"교수님, 면도를 면모라고도 했다면서요?"

복장이 야한 우리 면도사가 애교를 떨며 국문힉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아, 맞습니다. 그게 일제 강점기부터, 그러니까 해방전에 쓰던 일본어가

아닌가 싶지만 하여간 사실입니다."

그의 말은 진지하였고 자세의 간격은 좁았다.

 

"에잇!"

두사람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바로 그때 춘희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국문학 교수의 급소를 손으로 콱 잡았다.

아니 무슨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그 마음임'을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찔찔이 때부터 춘희는 그에게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표현하지 못하다가 면도사와 속삭이는 그에게 그런 식으로 덤벼 든

것임을 나는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면 우리 빈포 초등학교의 평소 분위기라는 핑계가 해결사

노릇을 해 줄 것이었다.

춘희는 그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물건이 시원치않구만, 이게 뭐야?!"

그녀가 비아냥 거리며 급소를 계속 잡고 있는데 국문학 교수가 엉겹결에 그녀를

밀쳤다.

그건 또 그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건너편 이발대 위에 머리를 찧으며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러나 큰 일은 없었다.

머리에는 상처 하나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교수는 사과를 했고 회계머니, 춘희는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더니 자기가

한 짓거리가 있어서 낄낄거리며 너그러이 용서하였다.

 

우리는 "원 대구탕" 집에 가서 미나라를 많이 넣은 탕을 먹고 낮술도

한잔씩했다.

그녀는 우리 둘에게 앞으로는 좀 더 잘 해 보자고 말하며 보드라운 손으로

연신 교수의 허벅지를 쓰다듬었고 그도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실로 반평생 만에 이루어지는 춘희의 꿈이었다.

"됐다 됐어, 그만 만져라, 반 분은 풀렸겠다."

보드라운 손과 마른 허벅지 사이에 내가 개입하고 참견하였다.

 

"사실 난 컴플렉스가 많아."

춘희가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인데?"

내가 물었다.

"그건, 그건---."

춘희가 더듬거렸다.

"속으로 셈이 많다는거야."

교수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었으나 나도 눈치와 교양이 있지, 아무래도

직접적 설명이라기 보다는 춘희의 얼굴을 살려주는 말 같았다.

 

"그래, 그래. 우리 교수님께는 옛날부터 내가 공부 때문에 셈이 많이 나서 항상

거칠게 나갔고, 그리고 이발소 주인 너말이야.

넌 천하에 공부도 못하던 녀석이 돈만 잘 벌고 면도사 아가씨들을 바꿔가며

꿰차더니 마침내 예쁜 마누라도 잘 얻어서 내가 셈이 난거야, 호호호.

앞으로는 우리 정말 잘해보자."

그러면서 그녀는 소주를 한병이나 다 비우고 휘청거리며 먼져 나갔다.

 

한달 후에 그녀는 전화를 걸어서 이자를 온라인으로 넣으라고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가 발품을 직접 팔지 않고 그런 식으로 결재를 하라고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동기회원 자격으로 동기회 돈을 썼으므로 일수를 찍지않고 월별 계산이었다.

 

"직접 오지않고---, 어디 아프냐?"

내 말에 그녀는 "우리 나이의 여자가 다 그렇지 뭐-."하였으나 음성이 좋지는

않게 들렸다.

"지난번 탓은 아니겠지?"

내가 다시 근심하였다.

"아니야, 내가 평소 혈압이 좀 있어. 그런 말 아무에게도 하지마, 영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특히 교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마. 그 어리버리한 녀석이 큰 걱정할거야.

아무 일 없어. 돈이나 제대로 넣어라."

그리고 나서 한 달이 채 못되어서 회계머니, 춘희는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심장마비라고 하였다

 

삼각지에서 남대문 시장에 이르는 뒷골목 상가에는 때아닌 연쇄 소동이

벌어졌다.

그녀가 닳고 닳도록 애지중지한 장부책인가 치부책인가 하는걸로는 회계를

종잡을 수가 없어서 회계머니, 춘희가 이끌어간 돈 세계에는 갑자기 일대 파탄이

오고 말았다.

누구는 "공황"이라고도 했고 누구는 IMF라고도 했다.

빌린 돈이 많은 나까지도 춘희의 죽음은 충격과 슬픔이었고 정말 조금도 기쁘거나

다행스런 마음이 나지를 않았다.

길순이가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만해도 솔직히 돈 계산이 앞섰던 내가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절망감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길순이는 아직 명줄이 붙어있어서 내 가슴이 덜 아프고 그런가.

춘희는 살아 온 모양이 길순이와는 비교가 되지않아서 이토록 가슴이 아프고

그렇단 말이던가---.

사실 그녀가 쓰러진 순간은 어렵게 이끌어나간 그녀의 집안 살림이 완전히 거덜난

것은 물론이려니와 동기회의 살림도 동시에 박살이 난 시점이 되었다.

 

남녀 동기가 함께 모은 돈은 별게 아니었으나 여자 동기들의 기금이 대단했는데

그 돈은 춘희의 수중이나 그 집 안에 있는게 아니라 모두 대출이 되어 한푼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빌려준 사람들은 난리를 쳤고 빌려간 사람들은 종적이 없었다.

돈 관계 처리가 깔끔한 춘희가 빌려 간 사람들의 인감 도장까지 받아놓은 대출

확인증 철이 있었으나 모두 실제로는 돈을 이미 갚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채권자들이 죽은 사람의 장부를 빌미로 채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낼 법적 장치도

없었다.

그렇다고 동기들이 나설 계제도 아니었다.

춘희와 그렇게 밀착하여 춤을 추었다는 녀석들도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피붙이라고는 딸 아이 하나가 있다는 이야기가 동기들에게 전해진 유일한

정보였다.

 

병원의 장례식장에는 동기들이 많이 문상을 와서 날밤도 세웠으나 남대문 시장의

상인들이라고하는 낯 모르는 사람들이 몇 십배 더 많았고 오고가는 말은

모두 일수 돈에 얽힌 이야기 뿐이었다.

시장 사람들 사이에 때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나 가장도 없이 춘희의

가족이라고 나와 있는 초라한 여고생 하나를 보고는 모두 말문을 닫고 말았다.

 

국문학 교수하는 내 친구는 끝내 문상을 오지 않더니 발인하는 날에야

새벽같이 나타나서 나와 동기생 몇 사람과 함께 벽제 화장장에는 같이갔다.

그의 얼굴은 초췌하였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펑펑났다.

"자네 어디갔다 이제 왔어? 술을 밤새 마신것 같네?"

내가 나무랐더니 그가 중얼거렸다.

"그 때 머리에 상처가 나고 피라도 흘렸어야 뒷 탈이 없는 건데---. 멀쩡했던게

화근이었나봐."

"쉬잇! 말도 안되는 소리 말어, 두달도 더 전 일이야!"

내가 낮은 목소리로 얼른 야단을 쳤다.

"딴 소리 말고 대학에 있으니 저기 상주인 여학생이나 앞으로 잘 건사할 방도를

연구 해봐라!"

 

돈이 없는 상가라서 상주인 여고생도 따로 차를 마련치 못하고 장의차 앞 쪽에

함께 타고 있었으나 선 문답같은 어른 둘의 이야기에 다행인지 뭔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춘희는 마침내 한 줄기 연기와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우리는 재 항아리와

위패를 모시는 흥국사까지 따라갔다.

그래도 남대문 상가의 상조회 사람들이 장례 일을 성의껏 추려나가고 있었다.

 

교외에 있는 절에 도착해보니 천도제를 지내기 전에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

의식이 있었다.

여고생이 몇가지 의류와 신발을 불길에 집어넣더니 마지막으로

채권자들에게서 뺏다시피 찾아온 핸드백과 그 속의 낡은 장부책을 울면서

던져넣고 있었다.

그때 분개장이라고 했던가, 빌려간 사람들의 인감이 찍힌 확인서는 경찰에서

갖고 가고,

원장이라고 불렀던가 하는 핸드백 속에 남아있던 장부책은 깡촌에서 올라온

춘희가 천만이 넘게 사는 이 거대도시에서 평생을 버티고 살아온 족보이며

이력이었다.

 

"잠깐만 보자!"

내 친구인 교수가 여고생의 손에있는 그 장부책을 잠시 붙들었다.

그는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겨보더니 또다시 왈칵 눈물을 흘리며 여고생 상주와

함께 힘껏 불속으로 그 장부책을 집어던졌다.

나도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며 눈물이 왈칵 솟았다.

"저 친구도 돈을 빌려주었나?"

누가 뒤에서 궁시렁거렸으나  결코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선이 합일 된 곳은 장부책의 표지였다.

"원장"이라는 두 글자가 빛바래 흐릿한 바로 그 위에는 최근에 다시 쓴듯,

비뚤거리는 필체로 네 글자가 선명하게 있었다.

 

"회계머니",

바로 그 네 글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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