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원장님 보이소,
아니 여보라고 부를게요.
여보,
나 정옥이라요.
미국으로 시집간 한 때 당신의 아내, 정옥이라요.
흑인 병사 토미와 결혼해서 고국을 떠난 정옥이라요.
내가 삼각지에 침을 뱉고 당신 면상에 면도칼을 드리대다가
결국 김포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탄 정옥이라요.
세월이 참 빠르네요.
벌써 십여년도 더 흐른것 같네요.
나는 하와이 미군 기지를 거쳐서 모하비 사막에 있는 육군 공정대까지
토미를 잘 따라다니다가 그가 다시 독일로 갈 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어요.
먼저 간 그가 동유럽에서 흘러들어온 백인 아가씨와 사귀는 바람에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거라요.
사실 그동안 술이 과한 토미에게 많이 얻어맞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이를 갈았어요.
빈포 초등학교 선배인 당신이 빈포의 가난한 처녀들은 다 불러올려서 가난 구제를
한다는 소리에 무작정 상경하여 당신 덕분에 이용 기술을 배우고 당신 눈에 들어서
하기 좋은 말로 사모님 소리도 들으며 몸을 섞고 돈을 벌어 당신께 바치던 때가
내 인생의 황금 시절이었어요.
내가 키도 크고 젖가슴도 커서 당신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때에 내 바로 직전에
당신과 살림을 차렸다가 쫓겨난 민숙이 생각을 해야 되었는데 그때는 미쳐
그걸 몰랐더라구요.
이게 마지막이라면서 때가 오면 언젠가는 면사포를 올려주겠다고 당신이 꼬실
때에 내가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당신과 한 방을 쓰며 밤마다 몸을 나누니
내가 그만 홀까닥 헤까닥 몸과 마음을 다주고 정신을 못차린거라요.
당신에게 당한 선배 언니들과 민숙이가 내게 욕을 해대며 결국은 당신이
나의 치마 속 팬티의 미태치로 부터 단물을 다 빨아먹으면 버릴 것이라는
warning을 그렇게 했는데도 더러운게 순정이라 머무적 거린게 지금도 참
한스럽고 치욕으로 남아있어요.
그런 와중에도 토미를 잡은 것은 내가 어리버리하게 당신에게 붙들려있던
마지막 순간에 그나마 이 내 새대가리 같은 잔머리라도 굴려서 활용한
chance-making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하긴 그것도 당신이 지금의 아내, 영숙이에게 눈길이 가면서 나를 어거지로
흑인 토미에게 밀어붙인거라는 사정을 아직도 눈치 못채고 있는건 아니라요.
그가 당신의 묵인하에 그 거대한 미태치를 내 미태치에 들이밀었을 때에
나는 당신과의 모든걸 포기하고 당신을 증오하면서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토미는 매독에 걸린적이 있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나는 당신의 아이를
뱃속에 이미 간직한 때였지요.
이런 이야기 듣고 놀라지도 말고 기대도 갖지 말아요.
그 아이는 나와 토미가 결혼을 한 후, 미국에 와서 낳아서 지난 10여년간을
키웠지만 이혼을 할 때에 그가 양육권을 갖게 되었고 나는 그의 현주소를
당신에게 결코 알려 주지 않을 것이라요.
복수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당신이 눈이나 한번 꿈쩍하겠어요?
오리엔달 페이스를 한 그 아이가 툭하면 흑인 애비로부터 손찌검을 당한다는
것과 그 아이 얼굴이 당신을 빼박았다는 것만 잠깐 알려드릴 따름이라요.
나는 지금 뉴욕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면 발을 딛게 되는 뉴저지에서도
"레오니아"라는 곳에 살고 있어요.
물론 이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때 쯤에는 여기를 떠날 것이지만요---.
배운 도적질이라고 토미와 이혼을 한 다음 한 두해 동안 나는 여기에서
면도사로 일을 하며 살아왔어요.
한인들이 몰려 사는 곳은 허드슨 강변 쪽에 더 가까운데 여기는 그런 동네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긴 도로의 같은 연장선 상에 있다고들 해요.
내가 고국을, 특별히 당신을 증오하면서도 한인들의 숨결을 벗어날 수 없는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네요.
한인들이 이 쪽에서 제일 먼저 몰려 살게된 곳은 포트리 쪽이고 차츰
팰리세이드나 리지필드를 채워나가서 이제는 이 레오니아 쪽으로도 많이
진출했지요.
레오니아는 원래 이태리 사람들이 몰려살던 곳인데 그들도 이제는 많이
흩어졌으나 그들의 분위기는 남아있어서 내가 이 곳을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하고 많은 점에서 비슷해요.
성질 부리는 폼도 비슷하고 아직도 대가족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이고 놀고
하는게 참 부러워요.
그럴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토미가 채간 잃어버린 우리의 아들을
생각하고 세상에 대하여, 당신에 대하여 이를 갈았는데, 그렇게 하면 마음에
평화가 왔어요.
매주 나가는 한인 교회의 목사님께서는 그 증오를 없애라고 설교를 하시는데
증오가 없으면 나는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어요.
동부에 사는 나이 드신 한인들이 노후를 보내기에 가장 선호하는 곳이
팰리세이드 쪽인데 레오니아도 거기에서 멀지는 않아요.
팰리세이드나 팰리세이드 파크 쪽에는 한인 이발관도 많지만 나는 잘난체 하는
한인들이 드나드는 그 곳은 싫고 백인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이 곳의 이발관이
참 마음 편했어요.
편했다고 쓰는건 아까 말했듯이 이제 이 곳을 떠나기 때문이라요.
"Seoul Barbershop"이라고 쓰고 "소울 바버 샵"이라 불리는 이 이발관의
주인은 한인인데 참 후덕한 분이라요.
당신도 마음 씀씀이나 종업원들 돈 주는데에는 인색하지 않아서 그런 점에서는
당신과도 많이 닮았고 그래서 때때로 당신을 그리워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나이도 많고 점잖고 특히 지식이 많아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에는 당신이 족탈불급이라요.
이 분은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잘 지내시다가 간호사하는 부인과 미국으로
괜히 이민을 왔지요.
마음이 좋다보니 남들 말을 믿고 이런저런 사업을 꾸리다가 다 사기를 당하고
늙은 나이에 이발관을 하시면서 소일을 하지요.
간호사 하시던 부인의 연금으로도 먹고살만큼은 되는데 워낙 부지런하셔서
힘 닿는데까지는 일을 하신답니다.
당신도 이제 돈도 벌었고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같은 자식들을 잘 키우고
있으니 무슨 문화 강좌 같은데에 다니면서 공부를 좀 하라고 내가 진심으로
권하네요.
그래서 앞으로 이용원 협회 회장 같은데에도 입후보하시고 뭐더라, 거 무슨
대학에 있는 최고 경영자 반 같은데에도 나가 보시고 우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눈을 뜨기 바래요.
학벌이야 빈포 농고 가짜 졸업장이 있잖아요.
나는 이제 나이가 꽤 든 재미 탈북자의 부인이 되었어요.
우리 이발관 사장님께서 이발사 사람을 구하러 뉴욕의 한인동네, 플러싱에
가셨다가 김씨 성 갖인 탈북자를 만났네요.
조선족 "뀀 식당", 그러니까 산적 같은 것을 구워서 파는 식당에서 일하는
탈북자를 만났어요.
함경도 무산 출신의 김씨는 강을 건너 중국 연변으로 들어갔대요.
그런 후에 중국 공민증을 위조하여 외항선의 조리사, 이발사를 하다가
미국으로 밀입국한 나이 오십의 장년인데 얼굴은 그간의 고생으로
할아버지인 우리 사장님 보다 더 늙어보여요.
그러나 마음은 아직 청년같답니다.
힘도 세고 목소리도 우렁차요.
우리는 일을 같이하면서 금방 정이 들었어요.
원래 함께 탈북했던 그의 가족들은 중국 공안에 붙들려서 도루 북한에
돌아갔는데 "요덕 수용소"나 김정숙 군에 있는 아오지 탄광에 갔는지 소식이
없답니다.
과거가 쓰라린 점에서는 처지가 나와 비슷하지만 험한 정도로는 김씨가 말도
못하게 더하지요.
하기사 쓰라린 과거라면 낸들 보통인가요.
내 과거지사를 다시 생각하면 낸들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어요.
우리 사장님의 주선으로 우리는 한인 교회에서 혼례를 올렸지요.
그가 내 시민권 때문에 달라붙었다고는 생각지 말아요.
불법 체류자가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 한다고 일이 쉽게 풀리는건 아니라요.
김씨도 그런건 다 잘 알고 나와 혼례를 치룬 것이라요.
그런데 지금 큰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국 국회의 "인건 위원회"라던가 하여간 그런 데에서 탈북자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며칠 후면 우리는 워싱턴 디시로 가서 무슨 청문회라던가, 히어링스라는
데에 가서 질문에 답을 하는 가슴 떨리게 큰 행사를 하게되었어요.
신문과 방송에도 나간다고 하대요.
우리는 당분간 워싱턴 디시에 머물면서 많은 일을 하고 아마도 김씨는 정치적
망명자로 분류되어 미국 체류가 합법화 될거래요.
우리는 이제 후리덤 화이터로 북한 인건 문제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후리덤이라고 하는 인간 본유의 자유의지" 확보를 목표로하여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그러니까 리버티를 쟁취하는 전쟁에 전사로 나가는 김씨를 남한으로
부터 온 이혼녀가 적극 내조하는 틀이 짜여진 것이라요.
우리를 도우는 세계 자유인 협회에서 많은 것을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라요.
후리덤이니 리버티니 하는 이바구도 모두 거기서 얻어들은 것이라요.
하지만 정작 한국 공관이나 한인 협회에서는 무관심인지 싸울 일이 따로 있는지
그럭저럭 간망이나 보고 있는 모양인데,
국무성에 있는 국제 자유 협회의 한인 동포들은 열심이라요.
옛날 북한에서 내려온 한인들의 후손들이 특히 많이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그야말로 자유와 독재의 차이를 몸소 겪거나 바로 선대로 부터 생생한 체험을
전해 받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솔선 참여하고 자유를 위해 헌신하는거라요.
탈북한지 칠팔년도 더 넘은 김씨는 요즈음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하고
헛소리를 지르는 것은 보통이랍니다.
모두 북한에 있을때에 당한 압제의 경험과 다시 잡혀 들어간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과 앞으로 미국에서 그가 해야할 큰 일에 대한 기대와 걱정
때문에 악몽을 꾼다는 것이지요.
자유가 무엇인가를 나는 잘 몰랐어요.
예전에 군사독재 물러가라고 하는 대학생들의 데모를 보고도 배부른 녀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벌이는 굿판인줄로만 알았었지요.
하지만 내가 토미에게 얻어맞으며 나는 참다운 삶과 자유가 무언가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포로 부터의 자유, 나아가서 인간의
자유 의지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김씨는 상하원 특별 위원회에서도 증언을 하며 행정부 쪽에는 제이 레트코위츠
미국 북한 인권 특사와도 면담을 하게 된다네요.
동아태 담당자인 크리스토퍼 힐이라는 사람도 만나는 모양이라요.
이런 일들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어디에서 정착을 하게 될는지는 아직
몰라요.
김씨는 재미 탈북자 사회를 건설할 계획이 있지요.
아직 한인 사회로 들어오거나 합칠 생각은 없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한인들로 부터 무시 당한 기억들이 응어리로 남아 있을 것이라요.
그 외에도 한인들에 대한 공포감도 있는가 해요.
가령 리지필드에는 전에 한국에서 중앙정보부장을 한 다음, 미국에 망명을
했다가 행방불명이된 사람의 어머니와 며느리가 살고있어요.
집이 허름하기는 해도 그냥 견딜만 한 집에서 사는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고부간의 관계를 청산했다고 하는데 이제와서 또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답니다.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소문이 돌고있는 한인 사회를 김씨는 혐오하고
두려워한답니다.
모두 지난날들의 일들이고 근면성실한 한인사회의 성공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어도 아직 동포애로 한 몸이 되기는 어려운 모양이라요.
내가 당신을 증오하는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듯이 김씨의 상처 받은 마음인들
오죽하겠으며 하루아침에 치료가 되겠어요.
무슨 업보가 있어서 세상은 이 민족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놓는지 가슴이 아플
따름이라요.
이제 편지를 끝내는 순서로 들어가야겠네요.
세월이 좋아져서 당신도 그렇게 시골 불쌍한 처녀들 데려와서 재미 보던
시절은 지났겠지요.
지금 데리고 사는 영숙이를 끝으로 당신도 마음잡고 열심히 산다는 이야기는
잘 듣고 있어요.
다행이군요.
이제와서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내 개인적인 욕심이라요.
내가 그래도 실패자가 아니라 석세스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신문이나 방송에 김씨와 함께 내가 나갈 기회도 있지만 나도 그렇고 미국쪽
사람들도 말려요.
"That's a caricuture!"라고도 하고 내가 나서면 폴리티컬 게임에서 질 우려가
크대요.
생각해 봐요,
용산 삼각지에서 양색시하던 면도사가 미군 병사로부터 이혼을 당한 다음
탈북자와 붙어서 일을 꾸민다는 악선전이 나오면 무얼로 이기겠어요.
그래도 나는 승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당신에게는 알리고 싶은 거라요.
두번째 이유는 당신도 북한 인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여달라는 거라요.
이발쟁이가 무슨 그런 거창한 구호에 귀를 기우려야 하느냐고 펄쩍 뛰지말아요.
이제 곧 우리가 펼치게 될 "한 민족 공동체 되살리기 운동 본부"에 매달 3-4만원
정도라도 후원 회비를 내 주고 우리 동기들에게도 적극 참여해 주도록 부탁하는
것이라요.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나도 당신을 증오하던 감정 다 버리고
흘러간 사연으로 정리하겠어요.
때가 오면 토미가 데려간 당신과 나 사이에 난 아들도 찾아보도록 함께 애를
써봅시다요.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당신태도가 내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요.
당신이 인간적으로 나오면 나도 증오라는, 사실 쉽고 편한 마음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라는 힘들고 괴로운 길을 택할거라요.
이 편지는 읽는 즉시 찢어버려야겠네요.
그 야무진 영숙이가 매일 저녁마다 하루 수입을 모두 챙겨서 수금해 가고
당신을 감시감독한다는 이야기도 잘 들었기에 하는 말이라요.
영숙이가 독하지만 똑똑한 거라요.
영숙이 같은 아이를 마누라로 삼은건 정말 행운이고 땡잡은 거라요.
마음 잡고 잘 지내시길 바라며 우리의 운동에는 꼭 동참하기를 바래요.
레오니아를 떠나며
정옥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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