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실종

원평재 2006. 5. 13. 00:19

"재경 빈포 초등학교" 동기생들에게 경사가 찾아왔다.

고향에서는 동기생 자녀들의 혼례가 몇건 있었지만 서울 동기들 사이에서는 처음으로

"여반" 동기가 딸을 출가시키는 축하할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이라 그런가, 동기들은 청첩장을 받자마자 서로 서로 전화를 걸면서까지 제 일처럼

기뻐하였다.

 

더구나 몇몇 동기들의 사고와 사망을 겪으며 다소 침체해 있던 동기회의 분위기가 새로

소생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춘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동기회에서 나가는 축의금도 꽤 될 것이련만

동기회 기금은 이제 바닥이 나버려서 아쉬움만 남았지만 다들 정도 이상으로 봉투에

돈을 넣고 주말 토요일 오후에 영등포 시장 근처, "낭랑 웨딩 홀"로 모여들었다.

 

"여반 동기가 먼저 테이프를 끊을 줄 알았어."

신발 가게를 하는 대머리 박 사장이 자기 예상이 적중하였다는 듯 헛기침을 하였다.

나는 "남반"이니 "여반"이니 하는 말만 나오면 사뭇 기가 죽는다.

빈포에는 소규모 공립 중학교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3개반을 나온 동기들 중에서 삼분의

이 가량이 그 중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한편 부모를 잘 두었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진주나 마산, 혹은 멀리 부산까지

진출하여 중고등을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나같이 중학교 문전에도 못 가본 동기생들이 또 여럿있었다.

 

빈포 중학교는 각 학년이 두개 반이었는데 초등학교와는 달리 공학을 하지않고

"남반"과 "여반"으로 나뉘어서 반 편성이 되었다고 중학교에 들어간 동기생들이

큰일이나 난듯이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1반은 남반, 2반은 여반 하는 식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초등학교 동기들이 다시 모일 기회가 생기자 이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처럼

1반, 2반 하지 않고 생소하게도 "남반", "여반" 하면서 떠들어대어서 꼭 나같은 놈을

능멸하는 소리같이 고깝게 들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던가.

 

나도 물론 나중에 서울 올라와서 통신 강의록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고등학교는

학력 인정 야간 전수학교를 다니다가 마침 잠시 생겼다가 사라진 "빈포 농고"의

졸업장을 돈을 좀 주고 사버렸다.

말하자면 가짜 졸업장을 산 것이었다.

빈포 농고는 문을 닫았다가 그후에 빈포 종합고, 그러니까 "빈포 종고"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졸업 문제를 해결하고난 다음부터는 학력문제로는 그렇게

꿇리지 않는다.

다만 동기생들이 내겐 낯선 말인 "남반", "여반"하고 떠들 때 말고는---.

 

사실 돈만 내면 아름아름으로 미 8군내의 매릴랜드 대학에도 청강생으로 들어갈

있었고 방송 통신 대학에도 등록할 수 있었으나 나는 두군데를 다 조금 기웃

거리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내가 고향에서 데려온 면도사 아가씨들과 살림을 차렸다가 그만 두기를

몇차례하고 나서 지금의 영숙이라는 또순이 고향 처녀를 아내로 맞으면서

마침내 살림에도 재미를 붙이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 시작하며 돈이 들자

내 학력은 일단 정지 시키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물론 학력이 중졸인 영숙이의 제안이 크게 작용하였다.

 

학력이 대수인가,

공부만 조금 하여 교양만 쌓고 남에게 사기 당할 일만 막으면 그만이지---.

공부에 대한 나의 신조는 사실 그러하였다.

마누라인 영숙이의 신조는 나보다 높고 깊었다.

"자기가 서울대학 나오면 뭐하노, 새끼가 서울대학 나와야지" .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에 처음에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영화를 보고

우스게로 하는 말인 줄로 알았으나 그녀의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을 지켜보고는

차츰 그게 진담인 줄을 알게되었다.

진실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샜다.

 

우리는 신랑의 씩씩한 입장, 신부의 다소곳한 모습,

주례 선생의 지루한 주례사, 신랑 친구들의 야단스런 신랑 다루기,

부케를 서로 받으려는 신부친구들의 아우성을 모두 구경하고나서

심지어 일가친척들의 사진 활영에 까지 빠질새라 끼어든 다음,

예식장 지하에 있는 피로연회장으로 마침내 우루루 몰려 내려갔다.

주말을 내동댕이치고 모여든 "남반", "여반" 동기들이 서른명이 넘었다.

생각해보면 노는 꼴이 가관이었지만 우리의 끈끈한 정이 그러하였다.

 

우리의 동기애가 그런 판이니 고향에서도 "남반", "여반" 동기들이 고속 버스를

타고 여럿 올라왔다.

남반, 여반이라는 말을 여기에서 자꾸 쓰는 것은 이 녀석들이 내 면전이라

그런가 자꾸 이 말을 쓰기 때문에 내 입도 전염이 되어서이다.

통신 강의록이면 어떻고 가짜 졸업장이면 어떠랴,

나도 이제는 빈포 중학교 남반 출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들아, 놀랠 소식 전한데이, 같이 걱정하자."

여반 반장하던 종말이가 좌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녀는 나이 차이가 많은 고향 선배와 결혼을 했는데 아이들 교육때문에

주로 서울에서 살았지만 고향 소문에 밝았다.

남편은 빈포와 고성 사이에서 가두리 양식장을 하고 있었다.

고향 소문에 밝은 것도 그런 사연 때문이었다.

"뭐라카노? 뭐라꼬?"

오십세주로 한 잔씩 건배하던 서울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철만이가 행방불명 됐다, 실종되었다 앙이가---."

그녀가 근심스레 말하였으나 조금 신나하는 기색도 있었다.

"언제?"

"꽤 되었다."

그녀가 목에 다시 힘을 주었다.

 

"에이, 앙이다, 꽤 된 건 아니고 한 대엿새 되었다."

누가 그녀의 목에서 힘이 좀 빠지게 수정을 했다.

"그렇지도 않을걸---, 정확하게는 나흘 전이다."

누가 또 수정을 가했다.

상경한 동기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 정확하게는 나흘 전인데 하여간 그래서 사흘만 되면 물에서도

뜬다고하여 어제는 저수지랑 바닷가랑 다 수색해보고 난리가 났단다."

종말이가 또 좀 신바람이 나는듯 보고를 재개하였다.

철만이라고하면 고향 동네에서는 돈께나 만지는 똑똑한 동기였다.

한창 때에 상경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동기들은 처음에는 서울 생활을 부러워했지만 그러나 하여간

밭뙤기라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 돈을 벌었다.

 

이웃 고성이 발전하면서 남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생겼고

그 여세로 빈포의 땅값이 오른 것이다.

철만이는 밭을 팔아서 요지에 건물을 올렸다.

들리기로는 1층에는 음식점이 둘, 2층에는 당구장, 3층은 가정집으로 쓰고

지하에는 대형 술집을 넣어서 월세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였다.

 

"철만이가 얼매나 야무지냐. 바람 피우며 며칠씩 돌아다닐 사람이 아닌데

하여간 사나흘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종말이의 높은 목소리였다.

"그래, 그래, 더구나 지금 지하실 술집을 내보내고 자기가 직접 경영

하겠다고 인테리아 공사를 한창 시켜놓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다는게

말이나 되겠나, 그럴 사람이 아니지."

고깃배를 타는 칠수가 말했다.

 

"너들아! 또 뭐 들은 말 없나?"

종말이의 사람 주목 끌기 방식이었다.

"아, 최근에 잠이 잘 안온다고, 거 머시냐 불민쯩인가 하는 걸로 고성의

병원을 다닌다고 카더라."

누가 정보를 제공하였다.

"가가 도민 체육회 빈포 지부장을 맡고 매일 도장에서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웬 불면증이고?"

종말이가 신이났다.

"머리도 아프고 잠을 통 못잔다고 한달 전부터 매일 병원에 다녔단다."

정보가 조금 더 보충되었다.

"아니 사실은 한달 전부터는 심하게 된 경우이고 가가 일년도 더 전부터

정신불안, 신경쇠약증에 걸렸다고 하더라. 이유는 모르겠고---.

아니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구나."

누가 또 더 많은 정보를 부어넣었다.

 

그때 너털도사라는 별명의 초등학교 교사하는 남궁 선생이 끼어들었다.

"에이, 걱정말아. 선거철이라서 그런거야."

"선거철?"

피로연회장에서 밥을 먹던 입들이, 입을 모아 "선거철?"하고 말을 받았다.

"지난번 4년 전 총선 때도 그랬거든. 김철만이가 고성 김씨 문중을 휘어잡고

있고 또 빈포 초등학교 총 동창회장을 하니까, 그때도 철만이와 가까운 후보

반대쪽에서 마산으로 철민이를 납치인지 하여간 모셔가서 선거 당일까지

한 열흘간 잘 대접하면서 힘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거 앙이가.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런 공작 같구만---."

 

남궁 선생의 추리가 끝나자 잠시 동안은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 그래.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 철만이가 호강하고 있겠네, 뭐."

그런 덕담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덕담은 덕담 수준일 따름이었다.

철만이가  어쩌면 주지육림에 쌓여서 호강이나 하리라는 결론을 내린 그 분위기는

논리가 아니라 남의 일에 너무 야박할 필요는 없다는 계산법이 만들어 낸 일시적

현상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종말이가 결코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다는 투로 다시 치고나갔다.

"어이, 남궁 선생! 지금이 때가 어느 때야. 지난번 선거 때하고는 완전히 달라.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선거법이 생겼는데 그런 대접을 하고 받다가 무슨 일을

낼려고---."

"맞다, 맞어. 그리고 지하실 공사하다가 그렇게 사라질 철만이가 아니라니까.

얼매나 야무지노---."

누가 종말이 의견에 동의하며 남궁 선생을 공박하였다.

 

"철만이 문제로 떠드는구나."

누가 연회장 문간에서 소리를 치며 달려들었다.

고향, 빈포에서 법무사를 하고 있는 준호가 지각 참석을 하면서 좌중을 제압한

것이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 못지않게 기갈찬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공부를 했던 사법고시에는 몇차례 연속

떨어지다가 법원 검찰청 직원 채용 시험으로 검찰청에 들어간 이후 정년을 할때 쯤에는

법무사 자격을 따고 지금은 고향, 빈포에서

법무사 사무소를 개업한 관록이 돋보이는 친구였다.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야. 심각한 데가 있어."

그가 금방 답을 내지 않는 스타일을 아는 동기들이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우리 사무실에 철만이 여동생이 근무하고 있는데 오빠가 요즈음 공갈 협박에

시달려서 잠을 못잔다는거야. 한달 전 쯤부터의 이야기야."

 

"그러면 그렇지"하는 분위기가 좌중을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 건물의 지하 술집이 항상 문제야. 그게 지하 폭력 조직, 그러니까 조폭하고

연계가 되어있는 모양이야. 술집이란 데가 그게 당연하지.

어쨌든 술집 영업이 요즈음 시원치 않다면서 월세를 잘 내지 않더라는 거야.

그런데 철만이가 누구야.

당장 내용증명을 보내고 하더니 결국 술집을 내 쫓고 직영을 하려고 인테리아 공사를

시작했나봐.

그러니 조폭들이 공갈 협박을 시작한거지.

요즈음 그녀석 제대로 잠도 못잤을거야.

나흘 전에도 내쫓은 술집 주인과 대판 싸웠는데 그 이후에 사라졌다는거야.

누이 동생이 울면서 내게 상의를 하더라고---."

 

적당히 덕담 반, 호기심 반으로 결말을 지으려던 분위기가 준호의 말에

급전직하, 무겁고 무서운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돈이라도 좀 거두어 형사들에게 갖다주면서 수사를 부탁해 보자."

종말이가 나섰다.

"야야, 섯부른 짓 하지말어. 요즈음 그런 돈 받는 경찰이 어디있냐. 그러고

조폭 문제에 섯불리 나섰다가 큰 코 다친다.

사태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어."

준호가 역시 관록있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그 술집 차릴 때에 계약서를 만들고 퇴거 조건에 대한 공증서류도

만드는 등, 관여를 많이 했지. 철만이가 얼마나 깐깐해.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그 술집을 들여놓았는데 요즈음 불경기라 장사가 잘 안되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런데도 하여간 이 계약 조건대로 드리밀고 내쫓으니까 술집 주인이 조폭 쪽에

손을 내민 것 같다 이런 말이야.

그 누이 동생이 그로인한 골칫거리를 많이 이야기 하더라고---.

하여간 일이 험악하게 발전한 것 같아. 이거 빈포 가서는 내가 말하더라고

소문내지 말어라."

 

듣고보니 정말 일이 험악하게 발전한 것 같았다.

나도 내 건물에서 이용원을 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이웃을 보면 임대 분쟁이 한두건이

아니었다.

"자아, 여기서 이렇게 죽치고 있지말고 영등포의 밤거리를 누벼야지.

어디 술 파는 노래방으로 가자. 혼사 집에서 돈 나온거 없나?"

준호의 말이었다.

"오늘 저녁 쓸 돈은 충분히 나왔다."

종말이의 꾀꼬리같은 화답 목소리였다.

 

"느그들 오늘 자고 내일 내려가야제?"

서울 동기 중의 하나가 조금 걱정을 먹음은 목소리로 권유를 하였다.

"그럼, 합숙이다."

누가 책임없이 큰 소리를 쳤다.

"아이구, 내려가야제. 대전에서 통영가는 고속도로가 생기고부터

서부 경남 가는 길이 얼마나 단축되었는데---."

"맞다, 맞어. 노래방에서 놀다가 시간별로 각자 사정에 맞추어서 헤어지는 거야."

준호가 말하였고 종말이가 얼른 동조하였다.

 

일행이 근처 노래방으로 갈 때쯤에는 모인 사람들 중의 반이 이미 빠져서 분위기가

조금 식었으나 노래방 사정으로는 딱 맞는 규모가 되었다.

종말이는 노래방 시간을 세시간이나 되게 잡아놓고 맥주 캔도 수북이 시켜놓았다.

안주도 푸짐하였다.

뽕짝 노래는 가수가 따로 없었고 춤 잘 추는 소문이 난 남반, 여반 선수들은

서로 안고 잘도 돌았다.

키가 작아서 아무리 춤 연습을 해도 모양이 시원치않은 나는 멀건히 구경만 하고 있는데

운동으로 다진 철만이의 평소 날렵하게 스텝 밟던 모습이 얼른거리는듯도 하였다.

 

영등포의 허름한 노래방 모니터는 화면이 시원치 않아서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하여간 벌거벗은 여자들이 바다에서 헤엄을 치더니 이윽고 수초 우거진 어떤 저수지가

나오고 거기 남자인지 여자인지 반쯤 벗은 사람이 수영을 하는데 그게 꼭 철만이의

잘못된 모습만 같았다.

"신경쇠약이 되면 절벽도 평지같고 물도 맨 땅 같아서 뛰어들 때 겁이 없대요---."

아까 여반 출신의 어떤 동기가 살며시 이야기하던 소리가 생각났다.

 

조금 마신 술기운과 안타까운 생각에 한참 정신이 없는데 누가 소리쳤다.

하도 시끄러워서 소리를 지른 동기가 남반인지 여반인지도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너들아! 실종 사건이 또 생겼다."

"뭐라구?"

"준호하고 종말이가 사라졌어."

"에이, 그게 어디 어제 오늘 이야기인가. 모른척 하지."

 

그래, 나도 언젠가 들은 바가 있었다.

서울 출장이 잦은 준호가 공방살이 낀 종말이와 가끔 둘이서만 만난다는 소문을---.

우람하고 근엄한 준호와 똑떨어지게 머리좋고 예쁘고 가난했던 종말이의 일시적 실종은

어쩌면 영구미제가 될는지도 모를 철만이의 실종 사건과 겹쳐서

이제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머리에 흰눈을 조금씩 이기 시작한 중년의 마음들을

비감하게 하였다.

누가 나훈아의 "사랑"을 부르더니 조영남의 "제비"가 또 흘러나왔다.

"그거 강남 제비 앙이가?"

어떤 술 취한 목소리가 간주곡처럼 끼어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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