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실종(2)

원평재 2006. 5. 15. 17:51
11955

우리는 신랑의 씩씩한 입장, 신부의 다소곳한 모습,

주례 선생의 지루한 주례사, 신랑 친구들의 야단스런 신랑 다루기,

부케를 서로 받으려는 신부친구들의 아우성을 모두 구경하고나서

심지어 일가친척들의 사진 활영에 까지 빠질새라 끼어든 다음,

예식장 지하에 있는 피로연회장으로 마침내 우루루 몰려 내려갔다.

주말을 내동댕이치고 모여든 "남반", "여반" 동기들이 서른명이 넘었다.

생각해보면 노는 꼴이 가관이었지만 우리의 끈끈한 정이 그러하였다.

 

우리의 동기애가 그런 판이니 고향에서도 "남반", "여반" 동기들이 고속 버스를

타고 여럿 올라왔다.

남반, 여반이라는 말을 여기에서 자꾸 쓰는 것은 이 녀석들이 내 면전이라

그런가 자꾸 이 말을 쓰기 때문에 내 입도 전염이 되어서이다.

통신 강의록이면 어떻고 가짜 졸업장이면 어떠랴,

나도 이제는 빈포 중학교 남반 출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들아, 놀랠 소식 전한데이, 같이 걱정하자."

여반 반장하던 종말이가 좌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녀는 나이 차이가 많은 고향 선배와 결혼을 했는데 아이들 교육때문에

주로 서울에서 살았지만 고향 소문에 밝았다.

남편은 빈포와 고성 사이에서 가두리 양식장을 하고 있었다.

고향 소문에 밝은 것도 그런 사연 때문이었다.

"뭐라카노? 뭐라꼬?"

오십세주로 한 잔씩 건배하던 서울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철만이가 행방불명 됐다, 실종되었다 앙이가---."

그녀가 근심스레 말하였으나 조금 신나하는 기색도 있었다.

"언제?"

"꽤 되었다."

그녀가 목에 다시 힘을 주었다.

 

"에이, 앙이다, 꽤 된 건 아니고 한 대엿새 되었다."

누가 그녀의 목에서 힘이 좀 빠지게 수정을 했다.

"그렇지도 않을걸---, 정확하게는 나흘 전이다."

누가 또 수정을 가했다.

상경한 동기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 정확하게는 나흘 전인데 하여간 그래서 사흘만 되면 물에서도

뜬다고하여 어제는 저수지랑 바닷가랑 다 수색해보고 난리가 났단다."

종말이가 또 좀 신바람이 나는듯 보고를 재개하였다.

철만이라고하면 고향 동네에서는 돈께나 만지는 똑똑한 동기였다.

한창 때에 상경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동기들은 처음에는 서울 생활을 부러워했지만 그러나 하여간

밭뙤기라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 돈을 벌었다.

 

이웃 고성이 발전하면서 남해안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생겼고

그 여세로 빈포의 땅값이 오른 것이다.

철만이는 밭을 팔아서 요지에 건물을 올렸다.

들리기로는 1층에는 음식점이 둘, 2층에는 당구장, 3층은 가정집으로 쓰고

지하에는 대형 술집을 넣어서 월세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였다.

 

"철만이가 얼매나 야무지냐. 바람 피우며 며칠씩 돌아다닐 사람이 아닌데

하여간 사나흘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종말이의 높은 목소리였다.

"그래, 그래, 더구나 지금 지하실 술집을 내보내고 자기가 직접 경영

하겠다고 인테리아 공사를 한창 시켜놓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다는게

말이나 되겠나, 그럴 사람이 아니지."

고깃배를 타는 칠수가 말했다.

 

"너들아! 또 뭐 들은 말 없나?"

종말이의 사람 주목 끌기 방식이었다.

"아, 최근에 잠이 잘 안온다고, 거 머시냐 불민쯩인가 하는 걸로 고성의

병원을 다닌다고 카더라."

누가 정보를 제공하였다.

"가가 도민 체육회 빈포 지부장을 맡고 매일 도장에서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웬 불면증이고?"

종말이가 신이났다.

"머리도 아프고 잠을 통 못잔다고 한달 전부터 매일 병원에 다녔단다."

정보가 조금 더 보충되었다.

"아니 사실은 한달 전부터는 심하게 된 경우이고 가가 일년도 더 전부터

정신불안, 신경쇠약증에 걸렸다고 하더라. 이유는 모르겠고---.

아니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구나."

누가 또 더 많은 정보를 부어넣었다.

 

그때 너털도사라는 별명의 초등학교 교사하는 남궁 선생이 끼어들었다.

"에이, 걱정말아. 선거철이라서 그런거야."

"선거철?"

피로연회장에서 밥을 먹던 입들이, 입을 모아 "선거철?"하고 말을 받았다.

"지난번 4년 전 총선 때도 그랬거든. 김철만이가 고성 김씨 문중을 휘어잡고

있고 또 빈포 초등학교 총 동창회장을 하니까, 그때도 철만이와 가까운 후보

반대쪽에서 마산으로 철민이를 납치인지 하여간 모셔가서 선거 당일까지

한 열흘간 잘 대접하면서 힘을 쓰지 못하게 했다는거 앙이가.

이번에도 틀림없이 그런 공작 같구만---."

 

남궁 선생의 추리가 끝나자 잠시 동안은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래, 그래.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 철만이가 호강하고 있겠네, 뭐."

그런 덕담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계속)

'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 누름에  (0) 2006.06.02
실종(3-끝)  (0) 2006.05.17
실종  (0) 2006.05.13
레오니아에서 온 편지  (0) 2006.04.29
회계머니-헤게머니 (4-끝)  (0) 200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