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차이나 타운" 운운하면 진부한 표현에 피곤한 반응이 예견되어
"화교에 관한 단상"이라고 슬쩍 둘러치기를 하였지만,
실상 이 사람들, 차이나 타운의 중국인들에 대한 상념은 단상이 아니라
장강(양자강)의 길이로도 다 담을 수 없는게 아닌가 싶다.
미국의 대표적 차이나 타운은 샌프란시스코에 있지만,
뉴욕의 차이나 타운 역시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 발생기적 연원을 따지면
애잔스럽기도 하다.
원래는 대륙 횡단 철도를 놓을적에 쿠리(苦力)로 온 사람들이 종점이자
출발지인 뉴욕으로 몰렸고 이들은 또 맨해튼 지하철 공사장에서도
고된 노력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뭉쳐살게 된 모양이다.
차이나 타운은 맨해튼 섬을 동서로 달리는 Canal St.와 교차하는
모트거리(Mott St.)와 베이야드 거리(Bayard St.) 그리고 펠 거리(Pell St.)
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근에는 공자상(孔子像)도 크게 세워 놓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버스를 내리니 예전에 우리나라 시골 정류장에서
표를 파는 아가씨같은 모습이 보여서 "유니언 스테이션"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방향을 물으니 20불을 내고 표를 끊어서 무조건 길 옆의
개 그린 버스를 타라고 한다.
개그린 버스에서 금방 내린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냐고 눈을 부라렸더니
"워싱턴 디시"의 유니언 스테이션으로 가는게 아니냐고 한다.
그 시골 표 끊는 모습의 아가씨가 나를 바가지 씌우려고 한건지
서울 촌 사람인 내가 너무 의심이 많았던건지는 모르겠다.
워싱턴 디시에 유니언 스테이션이 있는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전에도 이런 저런 물건을 사러 이 곳 뉴욕의 차이나 타운에는 여러차례
와본적이 있으나 이번 필라델피아를 다녀오며 "짱꿰 버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길거리에서 싼 물건 쇼핑이나 하던 안목은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예컨데 버스에서 내린 바로 옆의 어떤 조촐한 건물 지하에 들어갔더니
중국 사람 일색인 그 땅 굴 속에는 다닥다닥 붙은 작은 소매 가게와
손금 보는집, 점 집, 이발관, 미용업소가 구경하는 사람의 넋을 뽑았고
식당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코너에서는 또 먹거리가 손님을 유혹하였다.
음식값은 오찬이라고 이름한, 라면을 삶아 국물은 버린 것 같은 것은
2.5불이었고 내가 먹은 고기 만두 한접시는 거금 4불이나 되었다.
식당이라고 해 봐야 엉덩이를 겨우 걸칠만한 작은 의자를 건물 속 좁은
통로에 촘촘히 앉힌 것이고 음식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왔다.
아, 화장실도 들렀다. 30센트를 내고서---.
도대체 현대의 로마 제국을 표방하는 믹국에 이런 개미굴이 존재하다니,
할렘을 아는 안목으로도 이건 좀 심하다는 느낌이엇다.
그들이 쓰는 말은 북경 관화, 만다린은 아닐찌라도 중국어이다.
미국의 잠재적 적국인 중국, 그 유민들---.
개미굴 이야기가 나왔지만 카타콤배와 비교 혹은 비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독교인에 대한 오해로 연결 될는지 모르겟고,
하여간 화교들의 재간은 대단하였다.
길거리에 내놓은 상품들이 어디에 저장되어 나오느냐고?
바로 비스듬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하여서 지하 개미굴에서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 곳으로 물건이 올라오고 있음은 물론 사람도 타고 오르내린다.)
포킵시의 은자라고 내가 부르는 글쓰는 친구를 만나러 떠나며 급히
몇자 단상을 몇 컷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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