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초복과 중복 날의 동기애

원평재 2006. 8. 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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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사람 잘 만나는 운세도 팔자에 있음을 느낀다.

평생 책상 물림이라 사람 만나는 일이 그렇게 절실하거나 팔자 고칠 일로

까지 비약되지는 않는 삶을 살아왔다 싶지만,

인생의 느슨한 고빗길 마다마다에서 좋은 이웃, 좋은 동기, 좋은 지인들을

우연히 만나게되고, 이윽고 우연은 필연이 되어 서로 교유하면서

내가 베푼 일은 별로 없이 은덕만 빚으로 쌓으며 살아가는가 싶다.

 

Visiting Scholar로 안식년을 얻을 때마다, 그리고 대학 본부 보직자로서의

출장 및 방학 때의 자녀 방문 등으로 길고 혹은 짧게 미국을 들락거릴 때에도

이런 저런 연줄과 연고와 또 우연까지 포함하여서 사람 덕은 많이 본

편이라고 자평을 해본다.

먼 이야기들은 다 접어두고 가까이로는 지난해의 경우에도 갑작스런

발병과 수술을 받게 되기까지 주위의 여러 선배님, 동기, 후배들의 걱정과

보호를 많이 받았다.

 

그때 가까이에서 보살펴준 친구들도 많았지만 특히 중학교 동기인 K와

그 부인께서 베풀어준 살뜰한 도움은 정녕 잊지 못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내게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 감사할 것도

없다." 그렇게 툭 던지는 그 친구의 말이 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연구 교수의 기간이 끝나고 귀국하였다가 하계 방학 중에 나는 다시

이곳 허드슨 강변의 아들 집을 찾았으나 사실 자잘한 재미는 이 K라는

동기와 더 즐기고 있는 셈이다.

아직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그와, 책이나 읽고 어줍잖은 글이나 쓰는

내가 서로 많은 시간을 중첩하여 보낼 수는 없지만 가끔의 전화,

갑작스러운 약속 등으로 우리는 예정에도 없는 즐거움을 수월찮게

향유하고 있다.

 

우리는 북부 뉴저지에서 살고 있는데 그의 업소는 중부 뉴저지의

엘리자베드 라는 곳에 있다.

그는 Laundry Shop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리타이어 준비로 직접하는

힘든 일은 다 빼고 중개 역할만 해도 영업은 짭잘하게 보인다.

최근에는 기계를 뺀 넓은 공간에 주얼리 샵을 겸하여 차렸고 평소의 재능을

살려 취미생활에 준하여 고객들의 "세밀 인물화"까지 주문 받는 일과로

그의 시간은 항상 바쁜데도 집 떠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 도움의 말과

또 도움 그 자체를 나는 그로부터 자주 얻고 있다.

 

아니 우리의 시시때때로의 교유에서 그런 실제적 정보나 도움만이 절대적

이지는 않다.

그보다는 같은 년륜과 경륜에서 나오는 공감과 동감, 공분과 개탄,

그런 감정과 감상들이 우리를 더욱 긴밀하게 엮어 놓는다.

 

지난번 초복 때에도 나는 그런 세시절기와는 관계없이 무심코 그의 업소를

방문하였다.

아니 낮에 무슨 일을 처리하러 나왔던 그가 일부러 우리를 픽업하여 그의

업소까지 데려가서 최근에 확장한 가게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동네의 디스카운트 명품점을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소위 운이 좋으면 값싼 명품을 줏다시피 할 수 있는 유명한 매장이었다.

이름은 Daffy's 였다.

대피즈 구경은 흥미로웠고 그 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조우한 엘리자베드

시청과 시청 광장의 여러가지 기념물과 기념비 등도 인상적이었으나

그 보다도 퇴근 길에 꼽아 보니 그날이 바로 초복이 아닌가.

 

 

 

 

 

우연히 날짜를 맞추어 보다가 초복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순간 의기 투합한

무슨 음모자 같은 시선을 교차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잠깐 동안의 공연한

제스추어에 불과하였다.

이 대명천지 밝은 나라에서 그 위험한 혐오 식품(!)을 잠시나마라도 서로

은밀하게 상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범죄 예비 음모에 해당한건 아니었던지

모르겠다.

우리의 시선은 동감의 웃음으로까지 이어지다가 곧장 표정관리 속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그 과정은 한 여름날 낮잠 속의 개 꿈 같았다.

 

개 꿈일 사연은 또 있다.

사실을 따지자면 나와 그도 이제는 복날의 그 고향 "음식"으로부터 절연

한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초복이라니까 그 "음슥"은 무슨 밀교적 음모를 꾸미는

수준으로 우리의 의식을 넘나들었을까.

아마도 타향살이, 객지의 객기와 센치멘탈리즘 때문이었던가.

 

어쨌거나 개 꿈을 버렸을 뿐이지 역전의 동기들이 초복을 버릴 수야 있나.

우리는 그날 양고기 보양탕을 한다는 유명한 "방가네" 식당으로 가서

한시간 반을 기다려서야 겨우 시장을 달랠 수 있었다.

그때 시간이 저녁 9시 반이었는데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양고기 맛이

정말 그렇게 좋은 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도 우리는 양고기 수육을 먹은 마지막 순서였고

우리 뒷 사람들은 돌아가거나 다른 임시 변통의 요리로 대치하는 사태였다.

 

삼복 더위라더니 무더운 미 동부의 삼복 중에도 시간은 흘러 흘러,

엊그제는 중복날이 들이닥쳤다.

일요일이었다.

이 날도 중복이라서 우리가 만난건 아니었다.

남부 뉴저지, 프린스턴 대학 인근에 최근 저택을 장만한 어떤 교포의 집에

집 구경을 가자는 스케줄이 며칠 전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K 동기는 전부터 아는 사람이었다.

그 집의 공식 집들이는 지난주에 있었는데 내가 다른 약속으로 합류하지

못한 것을 K 동기가 굳이 나를 위하여 새로 스케줄을 잡은 것이었다.

 

 

 

 

 

 

한시간 반을 달려서 도착한 동네의 집 주인은 미국에 와서 오래 수산물

가게를 하면서 마침내 석세스 스토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경우의

주인공이었다.

부부가 모두 착실한 모습에 더하여 기업심과 모험심을 공유한 적극적

인상의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은 운세로 보아서 금년이 큰 경사의 해인듯, 오래 독신으로 지내던

아들과 딸들이 좋은 배필을 구하여서 금년 가을이면 혼사가 줄줄이 이어질

판이었다.

며느리와 사위도 모두 한국계로서 인사성이 은근하여서 참 부러웠다.

 

 

지은지 4년된 집은 현대식이었고 3,000 스퀘어 피트의 주택 공간은

데드 스페이스가 없이 관리가 편하게 되어있었다.

더우기 새로 결혼하는 두 자녀들과도 함께 살 계획이라니 새로 생긴 동네,

뉴타운의 적적함도 문제가 되지 않을 참이었다.

공동 생활도 이런 식이면 타당할 듯 싶었다.

 

집이 들어선 땅은 3.5 에이커의 광활한 들판이었는데 이 곳은 규정상 대지의

기본이 2에이커이고 교통 수단으로 말을 키우면 재산세를 반으로 깎아

준다고 한다.

집을 판 전 주인이 블루베리, 복분자, 복숭아, 포도 등등을 심어 놓아서

우리는 농부처럼 수확을 잔뜩하였다.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곳에는 야생 닭을 사다넣은 울타리가 넓게 쳐져

있었고 잔디 깎는 트랙터로도 매주 하루 일꺼리는 충분할듯 싶었다.

 

 

 

 

 

이곳은 개발 구역이라서 대지 규정도 곧 1에이커 정도로 완화 될 것이라고

한다.

이때 "곧"이라는 표현은 이곳이 미국이라서 빨라야 10년, 혹은 15년 이후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때는 자식들이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사실 미국 인구는 2천 4십년에 4억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자연증가가 5000만, 이민자가 5000만이라는 추산이다.

내 개인적 예상으로는 한때 서울이 그러했듯이 여기에서는 동부와 서부

해안지대에는 향후에도 꾸준히 인구증가와 산업 집중이 이루어 질 것이다.

선택의 용기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중복 이야기가 나왔다.

우연이 잘 들어맞기도 했고 내 친구가 멀리 내다 본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후자같다.

지난번 너무 기다렸던 오리집을 피하고 오늘은 이미 쇠고기 구이집,

BBQ 집이 예정되어있었다.

 

 

젠젠이라는 집앞에는 벌써 차량들이 복잡했고 우리는 대기실에서 10분

이상을 기댜려야 했으나 지난번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고기 맛은 시장하지 않았어도 일품이었고 냉면 맛도 좋았다.

WSJ이던가 NYT이던가 최근에 한국의 냉면 예찬에 지면을 할애했던데

모든 집의 냉면이 다 좋은 것이 아님은 우리끼리는 잘 알지 않는가---.

 

하여간 초복과 중복을 이렇게 화려하게 지낸 햇수도 그리 많이 기억나지

않는다.

말복은 고향 금오산 아래의 초등학교 동기들과 맞이할 듯 싶다.

다만 개 꿈과의 관련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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