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누구라 조금씩 바쁘지 않으랴.
지난 주 어느날 저녁은 나도 참 바쁘고 복잡했다.
송년회가 셋이나 그 저녁에 겹쳤기 때문이었다.
장사꾼도 아닌데 이렇게 송년회가 겹친건 내 자의가 아니었으니
순 일진 탓이었다.
별로 모임이 없는 처지인데도 이 날만은 꽤 중요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세군데에서 동시에 나를 불러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세 곳 중에서 둘을 고르고 하나는 버렸다.
우선순위 1번은 내가 종사하는 분야의 학회 송년 모임이었다.
6시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을 하니 두번째 순위인 강남의
7시 모임에는 조금 지각을 하면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섯시의 이 광화문 모임은 학계의 원로들께서 도심의
교통난으로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 30분이 지체되었다.
그 시간에 무대에는 두 젊은 여류 음악인들이 나와서 한 사람은
플룻을, 또 한사람은 하프 비슷한 것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악기는 아이리쉬 하프라고 하여서 수금(lyre) 보다는
크고 하프 보다는 작았다.
이 사람들은 단지 지각 시간을 메꾸고 디너 파티의 흥취를 높이는
수준의
악사들인가 했는데 이 역시 알고보니 경력이 만만찮은 전문 연주가
였다.
애타는 내 마음과는 달리 회의는 늦게 시작되어 회무와 재무보고
까지의 긴 순서를 거치고 나서야 신임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
하였고, 드디어 원로 교수님의 건배 제의로 겨우 미동하기 시작
하였다.
나는 처음 계획과 달리 이 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자칫하면 도심에서의 이동시간 지체로 저녁을 굶을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는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까 말한 두 연주자의 레파토리를 식전에 다 감상하고 먼저 소화
시켜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화려한 경력은 팸플릿에 다 나와있었지만 연주 전에 다시
낭독되고 음미되었다.
음악은 연주자의 정성과 실력으로 듣기에 매우 좋았다.
내 테이블에는 평소 친한 선배 학자, 이재호 교수님이 앉아계셨다.
이 분은 여러가지 업적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번역사에서 오역을
잡아내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일화가 많지만 최근 몇년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책을 낸 이윤기
번역가의 킬러로 이름을 떨치고 계신다.
허구많은 대한민국 오역사 중에서도 이윤기 킬러로 더욱 알려진 것은
이윤기 번역가의 글이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오르고 오늘날 전 국민적
아젠다가 된 대학 논술 시험의 준비서로 그의 책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윤기 번역가는 사사로이는 내 중등학교 동문이 된다.
두 사람간의 논쟁은 급기야 "피터지는" 지경에 도달하였는데 모두
주장을 상호 검증하면서 보다 나은 결론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윤기씨는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번역한게 아니라 저술하였다.
아름다운 정원에 잡초가 어찌 없겠는가"라고 답하고 있는데,
이재호 교수는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의 이윤기 번역본에도
큰일 날 오역과 그릇된 인명, 지명, 역사 추론이 그득하다고 새로
공격의 자료를 공개하였다.
아, 이날의 작은 음악회 팸플릿에서도 이 분은 오자를 잡아내었다.
아이리쉬 하프가 주는 새로운 청음의 세계에 심취하면서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 식사 대신에 와인을 몇잔씩 들었고 나도 기분이 느긋해져서
강남의 두번째 약속은 흐르는 시간 속에 멀어져 갔다.
더우기 이 날은 전례없이 행운권 추첨도 예고되었는데 특히 장영희
교수가 자신의 최근 신작에다가 이해인 수녀님, 법정 스님의 책을 추가
하여서 일곱 세트를 상품으로 내 놓은 것이 돋보였고 장 교수의 친구
김점선 화백은 대형 판화를 이 날의 그랑프리로 내 놓는 것이 아닌가.
장 교수는 선친 장왕록 교수의 아호를 따서 "우보 논문상"을 이미 만들어
기금을 내놓은 바도 있다.
우보 선생님은 나도 생전에 자주 뵈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장영희 교수는
학회를 하면서 인연이 쌓인 분이다.
언론에도 가끔 나왔듯이 투병중인 모습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마침내 듣기 귀한 생음악이 끝나고 그제야 늦은 식사가 나왔으니 이제
도심의 바다를 항해하여 남쪽으로 내려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더구나 고귀한 상품들, 특히 고가의 그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김점선 화백 장영희 교수 이재호 명예교수
스테이크를 썰면서 원로 교수님들의 회고담을 들었고 김점선 화백도
마이크 앞으로 초대되었다.
"분야가 다른 곳에 나타나서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외람되어 사양했으나
생각해보니 해명할 일이 있어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야기의 서두가 흥미를 이끌고 있었다.
무심한듯 던지는 언사에는 사람을 휘어잡는 재미와 은근한 카리스마를
토핑으로 얹은 득도의 경지가 있었다.
"해명할 일이란 제가 내놓은 상품을 아까부터 자꾸 고가의 그림이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판화를 하나 들고 나와서 그저 한 백만원이나 될까요
---.
영희와 저는 고등학교 동기라서 평소 친하고 이번에 낸 책에 제가 삽화를
그렸더니 오늘 이 자리로 끌고 나왔네요.
나와보니 나영균 선생님을 뵙게 되는군요. 이 분이 제가 대학 다닐때
전공 학과의 교수님도 아니신데 어쩌다 보시고는 너는 천재성이 있다라고
쓸데없는 말씀을 주셔서 평범하게 집안에만 있을 위인을 이렇게 바쁘게
만드셨네요.
제가 남편에게 터지기도 했고 아이 키우느라 골몰하면서도 이렇게 살게
하여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녀는 절을 꾸벅하고는 말을 이었다.
"마침 나와보니 이재호 교수님도 계시네요. 이 선생님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장미와 나이팅게일'이나 '목신의 오후' 등을 번역하셔서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그 책 생각이 나서 다시 사서 보려니 절판이 되었답니다.
영희를 통하여 이 선생님으로부터 소장하신 책을 한권 얻어서 보았는데
다시보니 장정도 요즘 세상에는 맞지않는 구식이고---, 번역도 어휘가
구태라서 좀 실망하고 말았지요."
화가의 말씀이라 그런가 말투에 거침이 없었다.
듣고보니 사정은 짐작이 갔다.
정말 우리 시대가 많이도 변하며 흘러갔다.
차제에 책을 하나 새로 만드시라고 여럿이 이 선생님께 권유하였다.
이제 대망의 행운권 추첨 시간이 왔다.
다행(?)인 것은 연말이라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나왔고 그나마 겹치기
출연한 분들과 지방에서 왔다가 기차시간에 쫓긴 분들이 빠져나가서
인원은 한 30명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인원이 줄다보니 우선 기쁜 소식이 좌중에 돌았다.
교보에서 증정한 대형 '영영 사전'이 추첨없이 모두에게 하나씩 다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추첨은 시작되었는데 장 교수의 사인이 있는 책은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영국 대사관에서 온 머리를 박박 민 문정관이 뽑아준 행운권
하나는 내 번호였다.
빙고!를 외치며 상품권을 받았으나 김점선 화백의 그림은 내게서
떠나갔다.
이제 그랑프리를 기대할 기회는 사라져버렸지만 행운의 귀추는 계속
주목되었다.
아, 행운의 여신은 참 지혜로웠다.
여건종 교수가 빙고를 외치며 나갔다.
"아버님이 일찍 자리를 뜨시면서 제게 맡긴 행운권입니다. 아버님 댁에
들러 전해드리고 가야겠네요---."
그 아버님 되는 분은 원로, 여석기 명예 교수님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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