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

원평재 2004. 7. 10. 07:03
지난 4월에 미국에서 만났던 Dr L. 부부와엊그제 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내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에 관심이 많은 줄을 아는 Dr L.이 헤밍웨이가 열광하였던 스페인의 "산 페르민 투우 축제"로 화제를 돌렸다.생각해보니 지금이 바로 산 페르민 축제 기간이었다. 7월 6일에 시작하여 14일까지 9일 동안을 열광 속에서 보내는 투우 축제이다.년전에 팜플로나에서 벌어진 이 투우 축제에 그가 다녀왔다고 했다.헤밍웨이가 열광했던 축제를 바로 그 장소에서 체험한 그의 일화가 많았다.헤밍웨이가 그 축제에 탐닉한 것은 삶과 죽음이 일순에 갈리는 그 장엄한 순간에 자신도 포함시켜서 인생이라는 덧없음을 덜어보려고한 비장한 참가 의지, 역설적 앙가주망 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그가 진정한 용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비겁의 다른 표현이었다던지 하는 동시대인들이나 후세인들의 입방아는 그저 제자리 앉은뱅이 방아찧기일 뿐이다.황소의 앞을 직접 달려가 보라!나도 여름에 스페인에 갔었으나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에는 가지 못하였다.그 곳이 바로 바스크 분리, 독립주의자들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안전을 생각하여 망서렸기 때문이었다."제리 에체베리아가 바스크 출신이지---"Dr L.이 문득 이야기 하였다.우리가 서로 모두 아는 여성 provost, Jeri 말이었다.라틴 계통으로만 알았던 그녀가 바스크 커뮤니티에 속한다고---.강철같던 그녀 특유의 꼭 다문 입술은 그런 연유에서였나---.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당대의 공황감과 허무감을 진단하고 치유, 혹은 함께 앓기 위해서 그려진 서사였다.앓기 위하다니, 그저 함께 앓으며 토해낸 서사였다.허무의 개념은 통시적이자 공시적이어서 그의 서사는 고전성을 띄게된다.먼저 이 작품의 표지에 실린 제사(題詞)인 "구약 전도서"를 올려서 음미해 본다.
 

구약 전도서에서...



**세상 만사가 헛되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 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전도서 1:2-11***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프랑스 파리는 미국에서 온 "본국이탈자"들로 득시글거렸다.
이들은 주로 참전용사이자 예술에 관심이 많으면서,본국에서는 현실 부적응증을 겪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전
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피를 말리던 청년들은 하루 아침에 고국에서 전쟁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경이와 외경은 망각에게 자리를 물려주거나, 아니면 과도한 자기 과시자는 이웃으로 부터 곧 
'사람 백정"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유럽 특파원의 자격으로 파리에 온 헤밍웨이도 본질적으로는 이들과 같은 동류항의 사람이었다. 
전승국이라고 하는 프랑스의 청년들도 "전후파",즉 "아프레 게르(apresguerre)"의 심사에서는 
역시 동질적이었다.
이들을 묶어서 "잃어버린 세대"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기성의 가치를 상실한 세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참전 용사의 연금을 쪼개어서 끊임없는 음주와 성적 환락에 몰두하였다. 
하긴 전후 당시에는 달러의 평가절상(dollar appreciation)이 대단하여서 이들의 방종을 지탱해 
줄 수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삶을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서 샅샅히 그려놓았다.
신문기자이자 戰傷으로 성 불구가 된 "제이크 반즈"는, 역시 첫사랑의 남자를 전쟁중에 이질로 잃고서,
살아 있을 때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했던 사실에 크게 상심하고 있는 "브렛 애슐리"와 정신적인 
연인 관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한 관계일 뿐이다.
회한과 현실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정서불안정을 겪는 브렛은 제이크와 친구 사이인 로버트 콘과 
관계를 맺고, 또 다른 유럽의 귀족들과도 난혼 관계에 빠진다. 
동시에 그녀는 마이크 캠벨이라는 영국의 귀족과 약혼 관계를 맺었으나 그도 알콜 중독자에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이 일단의 청년들은 7월이 닥아오자,모든 기성의 가치는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는 아직 설정되지않은 
전후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일대 탈출을 시도하여, 스페인에서 7월 초에 열리는 "성 페르민" 대축제를 
향하여 출발한다.
도중에 제이크는 아직도 심신이 건강한 친구 "빌 고튼"을 만나서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고 함께 
송어낙시를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꽤 많이 회복된다. 그러나 시인 엘리엇이 비슷한 시대에 당대를 
빗대어서 "황무지"로 보면서 같은 제목의 시를 쓰고 그 속에서는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생식 불능에 
바지자 동물의 피를 남근에 바름으로써 생식기능이 회복 되었지만,
그것은 시적 상징의 세계이고 현실은 동떨어진 상황일 뿐이다. 성 페르민 축제, 즉 투우 축제가 열
리는 팜플로나에서 브렛은 멋진 젊은 투우사 로메로를 유혹하여 즐겁고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
Pedro Romero was great!"이라는 묘사는 "wonderful"의 차원을 넘어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로버트 콘이 나타나서 브렛에 대한 기득권을 천박하게 들먹이며 좌충우돌하다가 마침내 
로메로를 두들겨 패서 초죽음을 만든다.마침내 빛나던 축제도 끝나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공황감 뿐이다. 
브렛은 일찌감치 로메로와 함께 마드리드로 내뺐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되었다. 
브렛은 젊은 투우사를 더이상 타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가 떠나도록 풀어주고 제이크에게 
빨리 돈을 갖고 와서 자신도 구해달라고 전문을 친다.마침내 제이크는 돈을 치루고 두 사람은 
마드리드의 호텔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기차 역으로 향했다.브렛이 말했다.
"오, 제이크. 우리가 함께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제이크의 대답은 가정법 과거, 즉 현재 사실의 반대에 해당된다.그에게 있어서의 현상타개책은 
가정법의 범주내에서일 뿐이다.
소설은 이 가정법의 대화로 끝이난다.Dr L.이 한참만에 물었다.
헤밍웨이 작품중 가장 좋은게 무엇이냐고---?
"무기여 잘 있거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것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이지요", 브렛 애술리가 나오는---.바스크 사람, 제리 만큼 단호한 
입술로 내가 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