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헤밍웨이 (2) /산 페르민 축제도 끝나고---

원평재 2004. 7. 19. 09:28
성 페르민 (San Fermín) 축제 스페인 북부의 나바라 자치주 수도인 빰쁠로나 市에서, 매년 7월6일~7월14일까지, 빰쁠로나 교구의 수호성인이자 나바라 자치주의 공동 수호성인인  성 페르민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성대한 축제.성 페르민: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복음을 전파하러 프랑스의 Amiens에 갔다가 참수당한 성인이라고 한다. 그는, boteros(구두나 포도주, 식초, 식용유등을 담는 가죽용기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 포도주를 취급하는 사람들, 제빵관련업자 등의 수호성인이기도 하고, 장장 204시간 동안 빰쁠로나가 축제에 빠질 명분을 제공한 성인이다.성 페르민 축제의 진화과정: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지, 기록에 의하면 13-14 세기에 이미 산페르민이 있었고, 16 세기까지는 10월에 열렸었는데, 대개 10월엔 기후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7월로 당겨졌다고 한다.사가들에 의하면 어쩌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3가지 축제가 합해져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즉,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페르민(Fermín) 성인에 대한 종교적 성격의 축제와, 14세기부터 형성된 주기적으로 열리는 커다란 시장과 그 잔치, 또 그 때쯤 시작된 투우축제 등이 합쳐진 것이다.



산 페르민 축제를 체험한 헤밍웨이는거의 첫번째 장편이랄 수 있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써낸다.그러나 구약 전도서의 내용에서 가치를 무가치화하고 그 거대한 붕괴, 해체의 위에서 하나님믜 목소리를 영접하라는성경의 진정한 메시지는 아직 체험되지 않는 모양이다.아직까지도 그는 허무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뿐, 그 극복은"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겨우 시도될 따름이다.그것도 신의 경지가 아닌 인간적인, 지극히 실존적인 가치로.헤밍웨이를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가족관계, 특히 부부간의 이해성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가정의 정서적 분위기가 성장기의 소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헤밍웨이의 경우, 외과 의사인 아버지와 교회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음악학원을 운영하였던 어머니는 외견상으로는 어떤 부모보다도 더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전문직인 의사생활 이외에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영위한 여가생활은 주로 사냥과 낚시였다. 사냥을 위한 도구는 물론 엽총이었고 낚시도 동양적인 강태공 방식이 아니라 힘차게 흐르는 여울에서의 견지낙시, 넓은 호수에서의 릴 낙시, 그리고 바다낙시 같은 역동적이고도 야성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여기에는 야외 생활도 필수였다. 교회 성가 지도자인 어머니의 일상이나 인생관은 이와는 정 반대 였으며 속으로는 은근히 남편을 경멸하였다.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한 것은 필연이었다. 남편에 대한 폄하와 몰이해는 가끔 헤밍웨이의 단편에서도 투영되는데, 예를 들자면 새로 집을 지어서 이사를 간 어떤 가정에서 그 부인이 남편의 오랜 사냥 전리품, 사냥 도구들, 오래 수집해온 야외 생활의 기념품들, 인디언의 유품들을 이사 당일날 모조리 태워버리는 장면 같은 것이다. 실제로 헤밍웨이의 어머니는 음악학원 경영으로 돈도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새 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고 낚시와 사냥의 도구들과 샤냥물, 그리고 인디언의 화살촉이나 기념물들을 태워버리기도 했으며 이로 인하여서 가정 불화가 심화되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수입도 괜찮았으나 플로리다에 개발 붐이 불던 당시에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자기 재산을 다 날려버렸다. 두사람 사이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아버지는 자살을 하였다. 이 자살의 직접적 원인을 헤밍웨이는 항상 어머니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엄격히 따지고 보면 헤밍웨이의 집안에는 자살의 내력이 있다. 가계를 따벼보면 헤밍웨이의 할아버지도 자살을 했다고 하며 마침내 헤밍웨이도 자살을 하고 그의 손녀 "마고 헤밍웨이"도 후일 자살을 했다. 마고는 전도가 꽤 유망하였고 소위 한참 "뜨는" 여배우였는데, 매스컴에 등장할 때마다 너무 심하게 벗는다고 느껴지더니 어느날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아버지 쪽의 생활방식을 더 흠모해온 헤밍웨이였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동서고금의 고전 문학 작품을 섭렵하였는데 크게 영향받은 작가로는 뚜르게네프, 마크 트웨인, 그리고 셔우드 앤더슨 등이있다. 한편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냥과 낚시에 심취했고 이러한 야외생활의 체험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십대 초반에 그는 동정을 자기보다 연상의 "트루디"라고 하는 인디언 처녀에게 바친다. 트루디는 소위 "밝히는" 계집아이였는데 이러한 투의 작가의 표현과 생각은 오늘날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로부터 그가 형편없는 가부장적인 작가라고 비난 받는 요소가 된다. 물론 그보다 더한 이유는 "무기여 잘있거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영웅적인 남성으로부터의 보호와 피난처를 至高의 가치로 여기는 여자 주인공들을 만들어낸데에 연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저 날카로운 페미니스트들의 각을 세운 발톱을 어떤 남자가 견뎌낼 수 있으랴. 헤밍웨이는 대학엘 가지않았다. 바로 지방 신문사의 기자로 입사한 헤밍웨이는 그곳에서 기자 수업의 첫걸음인 문장 수업을 받는데 "짧게 쓰라", "쓸데없는 수식어는 생략 하라"라는등 저널리즘 수업에 열중한다. 결국 이 작문 스타일은 20세기, 그리고 나아가서 오늘날의 인터넷 문화에 딱들어맞는 문체와의 운명적 조우라고 할 수있다. 사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문체가 뭔가? 온갖 변설과 미사여구, 그리고 군더더기, 혹은 그 군더더기를 떼어야한다고 협박을 하면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더 많은 군더더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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