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익히 듣는 잠언 속의 "로맨스"라는 말의 생성과 발전을 한번 고찰해 보고싶다.고대 로마 제국의 강역은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이거니와 멀리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모두 포함하였고 을씨년스런 히드 언덕의 바람 소리 요란한 섬나라 영국도 아우르며 만만치 않은 관목 숲지대, 프랑스의 골 지방까지 확장되어 있었다.이 넓은 강역에서 쓰는 표준어는 물론 라틴어였는데 격변화가 열가지쯤 되는 문법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사유를 담고있는엄청난 어휘의 숫자와 그 심오함도 예사롭지 않은 체계였다. 하지만 이 라틴어의 엄격한 틀은 한번 외워놓으면 그 구사가 오히려쉽고 정확하여서 당시의 광활한 영토를 하나로 묶는데에는 매우요긴한 수단이기도 하였다.물론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평민, 혹은 천민들은 그들의 운명을 감수해야할 따름이었다.한편 마침내 국교가 된 기독교에 대해서 이 제국은 초기에 박해를심하게 했지만, 내세의 천국을 주장하는 기독교 사상이 현실의 통치술에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믿음이자 도구인줄을 파악하고 통치자들은 이 종교를 국교로 정하기에 이른다.이제 가톨릭교의 사제는 의식을 진행할 때에 반드시 정통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성경은 완벽하게 라틴어로 번역되었다.그러나 4세기경에 북으로 부터 게르만 족의 대 침노가 있었고 이후에 이어진 동서로마 중에서도 특히 서로마 제국의 교황권은 교회의 세력과 세속의 세력이 다툼하는 결과에 따라서 크게 흔들렸다.교황권이 때없이 흔들림에 따라서 이제 오소독스한 라틴어의 권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햇다. 일반 민중은 그 동네에서 사용되는 라틴 방언을 공공연히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분열된 로마 제국에서는 지역 중심의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country란 말이 "지역"과 "국가"를 나타내는 거의 반어적(反語的)인이중성이 있음은 바로 이런 내력 때문이엇다. 로마에서 볼때 스페인은 변방의 한 지역이지만 스페인인들이 생각할 때에는 이제 국가 그 자체인 것이다.로마 변방의 이런 언어들을 처음에는 낮추어 부르는 수준에서 "Romans어"라고 불렀다. "로마의 변방어", 혹은 "로마의 찌꺼기" 대충 그런 뜻이었다.이런 로맨스어는 지역적 특성상 이태리 반도의 위, 아래, 프랑스, 시실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등의 자역 로맨스어로 갈라진다.그리고 어려운 문어체인 라틴어는 마침내 교회의 의식에만 사용되는 수준이 되었다.이제 로맨스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자 이러한 그릇에 담는 내용에도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언어"라는 그릇에 담는 내용물, 곧 콘텐츠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이다.이제까지 라틴어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는 거룩한 것, 성스러운 것, 장엄한 것, 신과 天界의 이야기, 등등이었다.그러나 교황권이 약화되고 지방 분권화 내지 민족 공동체가 형성하면서 로맨스어에는 인간의 감성적인 영역이 콘텐츠로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인간의 감성에 가장 어필하는 내용은 어떤 것일까?그 첫째는 말할나위도 없이 남녀간의 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다.그리고 그 사랑도 고답적인 형이상학적 내용이 아니라 욕정과 갈망에 가득한 허리하학적인 것이 당연히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다.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로맨스"라는 말은 우선 남녀간의 달콤한, 또는 쓰디쓴 사랑을 뜻하기 시작하게 되었다.달콤쌉살한 남녀간의 사랑에는 황당한 환상과 상상의 극치인 공상이 자리하게 된다.이제 로맨스어라는 그릇에 담는 콘텐츠는 초기의 가벼운 남녀의 사랑 타령을 떠나서 환상과 공상이라는 인간의 지적 상상력과창조성의 한계를 시험하기 시작하였다.그리하여 흔히 로맨스 문학이라고 하면 "바로 황당무계한 세계"라고 정의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이러한 상상과 창작적 요소가 극대화하여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중세의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와 교부철학의 얼음짱 같은 세계에서도 "고딕 로맨스"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은 공상의 나래가 퍼덕이었고,마침내 찾아온 인간성 회복 운동, 즉 르네상스와 함께 로맨스어에담긴 로맨스의 내용은 남녀간의 사랑의 극치를 완벽하게 담아내기시작하였다.르네상스기에 이탈리아에서 창작되어 대 인기를 끈 데카메론이라던가 이를 모방한 영국의 캔터베리 이야기도 아직 완전히 종교적 색채를 버리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매우 인간 중심적인 발언에 가득하였고 음탕한 내용도도도하게 물결쳤다.18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상사는 다시 고전주의에 대한 회귀를 겪게되는데 아마도 당시 서구 산업사회의 기반이 "그리스-로마" 학문에 대한 탐구를 가능케 하였고 새로 부상하는 시민계급이 이를 자신들의 상승된 신분의 한 표징으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인듯하다. 이렇게 하여 대두된 고전적 흐름을 신고전주의, 혹은 의고전주의(擬古典主義)(유사 고전주의)라고 부른다.그러나 인간의 취향은 어느 한쪽에 오래 칩거하지 못하는 속섣이 있다.뿐만아니라 서구의 팽창과 미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은 균제와 질서를 기본축으로 하는 고전적 틀을 오래 용납하지 못하여서19세기에 들어오면서 마침내 서구사회에는 낭만주의라는봇물이 터진다.Romanticism이라고 일컫는 이 운동은 바로 라틴 문화의 세계에서탈피하며 생성되었던 바로 그 romance주의, 즉 상상과 환상과 감정과 감성주의로 경도함을 의미한다.Romance라는 말을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 번역을 할 때에 일본 사람들은 浪漫이라고 하였고 중국사람들은 魯漫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일본식을 따라갔고 결국 이제 낭만, 혹은 낭만주의라는 표현은 우리의 정서에 완전히 녹아버린 어휘가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