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상상과 공상과 환상의 세계는 이후에 과학문명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의 물결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낭만주의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에리한 분석을 꾀하기 보다는 일단 감성 속에서 이리저리 적절하게 왜곡, 확대, 혹은 축소한 형태로 피사체를 묘사하니,지동설과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거쳐서마침내 뉴튼의 물리학을 깨닫게 된 세대들이 이런 낭만주의적 문학세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만은없었다.과학의 발달과 함께 산업사회로 들어선 사회 현상도 너무나 복잡다기하게 되어서,"어~~" 혹은 "아!"하는 영탄의 틀로 재현한 현상이나 사고로는 부조리의 늪으로 다가가는 근대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결코 올바르게 파악하고 진단하고 치유할 수가 없게 되었다.여기에 적절하게 나타난 것이 사실주의 문학의 세계였다. 사실주의는 문자 그대로 사회 현상이나 인간의 사고 체계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여 재현코자하는 문학운동이었다. 시대적으로는 산업사회가 제 자리를 잡기시작한 19세기 말, 20세기 초였다. 더우기 이 때에는 산업사회의 병폐가 극대화하기 시작하던 때여서 사실주의가 표방하는 이성적 분석과 진단에 입각한 묘사 정신이 꼼꼼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폭로할 필요가 있던 시기였다. 한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이 비정하고 폭력적인 세태를 주제로 담아서 사실주의의 그릇으로 재현해낸 문학사조는 "자연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이제 "새가 인간을 기쁘게 하기위하여 노래한다"라는 낭만적 사유는 마침내 퇴장하고,"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라고 우주의 질서를 파악하는 시대정신이 등장한 것이다.새의 노래에서도 이제 낭만주의적 왜곡은 배제하고생물적 본능에 가득한 식욕과 성욕을 듣게 되었다는 말이다.이후 문학 사상의 흐름은 매우 복잡한 중층적 양상을 겪게 된다.카메라의 등장이 회화에 있어서 사실의 한계 영역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해체의 시대를 재촉했듯이 문학, 특히 사실주의 문학의 주무대인 소설 장르에서도 "의식의 흐름" 기법이 등장한다.인간의 의식 내부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을 극사실 수법으로 그려본다는 이 시도는 "의식"의 일렁이는 속성과 함께 플롯의 해체, 스토리의 불일치성, 복수의 서술자 설정 등 전통적인 독자들을 애매 모호의 영역으로 몰아부치는 뭇 시도를 끊임없이 수반하였다.이제는 소설 속에서도 어떤 소설을 써야겠는가 하고 작가가 고민하면서,독자에게 답을 구하는 극단의 형태까지 등장하면서서사구조 자체를 재검증하는 "메타 픽션"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마침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사실주의 기법이 생각해보면 가장 비사실적이고 모두 가상에 다름아니라는 자각이 이 이성주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삼인칭 작가 전지적 기법"이라고 하여서 작가는 등장인물 모두의 심중을 꿰뚫고 있다는 설정이 가능한가.이런 가설이야말로 가장 비 상식적인 허구에 다름아니다. 하긴 그래서 소설을 픽션, 허구라고도 햇지만.메타 픽션에서 가장 문제로 삼는 점이 바로 이런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작가가 작품 속에 공공연히 등장하여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독자와 상의하는 일도 벌어지고, 아예 픽션을 픽션답게 하자며 공상과학소설 같은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계속)
흐르는 곡은 베토벤의 로망스 입니다.달콤쌉살한 로맨스의 의미, 곧 낭만 정신은 예술의 모든 영역에자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