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 중앙회"의 "울릉도및 독도 가을 탐방단"은 정확하게 104명이
참가하여 신새벽, 네시 반에 서울 역을 버스 세대로 출발하였다.
박준수는 이전부터 그 모임에서 많은 활동을 한듯 중앙 지도 위원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었으며 100여명이 움직이는 이번 행사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버스는 세시간이 넘게 달려서 묵호항에 도착하였고 밝은 햇살 속에서
맑은 바다 위로 쾌속정이 다시 세시간 남짓을 나르듯 항진하여 울릉도
도동항에 접안을 하였다.
정진주는 바닷속 진주답지 않게 뱃멀미를 염려하여 미리 "기미테"도
귀밑에 붙이고 박준수가 준비한 무슨 물약도 먹어두었는데 워낙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약효가 좋아서 그랬는지 아무 탈없이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울릉도를 바라보며 그녀는 옆에 있는 박준수에게 탄성을 발했다.
"야아, 우리나라도 대단하네. 항상 경관이 빈약하다고 탄식만 했는데---."
"아는만큼, 또 열심히 다니는 만큼 보여요. 회색, 경계인 선생님!"
"또 그래~!"
그녀의 항변하는 목소리가 어리광처럼 가볍게 코에 걸렸다.
여행은 그래서 좋은 진화의 과정이다. 아니 혁명과 같을지도---.
일행은 3개 선단으로 크게 쪼개어져서 다시 그 아래에 있는 2개 선대
중의 하나로 배속이 되었다.
그와 그녀는 당연히 1선단 1선대, 같은 소속이 되었다.
"우리 한방 쓸까요?"
박 선생의 말이었다.
"미쳤어. 아니 아니, 그러지 뭐. 우린 남매니까, 호호호."
그녀도 오랜만에 여성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일행은 남녀 별로 대략 4명이 한방을 배정받았고 특별한 경우에는 부부
1실의 특전도 있었으나 울릉도 숙박 시설이 아직 그렇게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박준수는 본부 일로 바빠서 호텔 로비에 남고 정진주만 새로 인사를
나눈 여성 룸메이트들과 산의 중턱에 걸린 독도 박물관을 먼저 방문하고
이어서 케이블 카를 타고 성인봉 정상에도 올라가 보았다.
오르락 내리락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한 나절 행보가 힘들었으나 작은
섬이라 정상에 오르고 보니 그 길들이 모두 손바닥 안에 잡힐 정도였다.
"여기에서의 조망도 대단하지만 저기 해안으로 내려가 옛 등대로 가는
길에서 일출을 보면 정말 기차고 죽이지요."
포항에서 왔다는 어떤 중년의 룸메이트 여성 회원이 구수하게 지형 설명을
동행한 여러 회원들에게 해주었다.
그녀는 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자주 이 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울릉도는 사계절이 다 기찬 동네지요. 겨울에 와서 눈때문에 며칠
갇혀있어 보는 것도 기막힌 경험이라니까요."
기차고 죽이고 기막힌 감정이 그녀와 울릉도의 관계인듯 하였다.
그래, 등대로 가는 길은 박준수와의 몫이라고 정진주는 마음에 새겼다.
첫날 저녁은 자유석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부담의 매식이었다.
새로 사귄 룸 메이트와의 친교의 시간을 갖으면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찾아 먹는 기회라는 설명이었다.
박준수는 본부 임원들과의 식사를 마다하고 정진주와의 저녁 시간을
내고자 하였으나 그녀는 낮 관광을 함께한 룸메이트들의 눈치가 보여서
둘만의 시간은 내일을 기약하자고 하였다.
"정 선생님, 오늘 저녁 식사는 꼭 저와 함께해야 되요."
그가 어린이처럼 발을 굴렀다.
"내일 일출을 함께 봐요, 박 선생."
그녀는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그의 떼를 눅였는데 처음에는 그녀도
안타까웠으나 결과적으로는 차라리 잘 된 기분이 들었다.
그와 갑자기 이 섬에서 혁명적으로 가까워지기에는 무언가 정리할 일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적어도 독도는 다녀온 뒤라야 되겠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쉬운 밤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 다섯시 반이 되자 호르라기 소리가 요란
하였다.
"좋은 아침!"이라는 굵은 목소리도 들렸다.
말하자면 "기상 신호"이자 일출 맞이 준비를 하라는 단체 구령이었다.
회원들은 해안도로 쪽으로 무리지어 내려갔으며, 이윽고 6시 5분이 되자
저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좌우로 아우르며 붉은 광망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 장면은 모두에게 감격적이었으되 울릉도를 찾은 모든 관광객들이 빽빽히
해안도로를 메워서 박준수와 정진주 두 사람만의 배타적 공간은 따로
마련되지 못하였다.
단체 관광의 한계가 그러하였다.
이날은 아침 일찍부터 울릉도 육로 관광이 시작되었다.
어제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바다 쪽에서 본 섬 풍경도 그림 같았지만
해안길을 따라서 꼬불꼬불 절경들의 바로 옆을 버스로 달리며 보니
그 정취가 또 감탄사를 쏟아내게 하였다.
하나의 절경이 탄성을 유도하는가 싶으면 얼른 또다른 절경이 다른 각도로
나타나며 모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특히 그와 그녀가 탄 1호차 버스 운전사, 최 기사란 사람은 안내와 재담이
거의 국보급이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회원이 승객 대부분임을 파악한 버스 기사는 이
바닥의 관행데로 "남녀 상열지사"를 바닥에 깔고서 관광 안내를 했는데
그의 입담은 구구절절 절묘하여서 탑승한 남녀의 분위기는 어느새 민망함을
버리고 고조되고야 말았다.
자연보호 단원들이 탄 관광 버스가 달리는 코스는 바다에 바짝 붙여
닦아놓은 해안 일주 도로였다.
좁고 가파른 울릉도 지형에서 해안도로를 내는 일은 쉽지않아서 길은
처음부터 오르락 내리락 하였으며 교각들이 받쳐주는 교량은 아래 위로
서로 교차하여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최 기사는 낮은 위치의 다리를 지나 도로가 한번 비틀어져서 그 머리 위로
교차하는 또다른 다리를 건너며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저 아래 첫번째 다리 이름이 뭔지 아능교?"
수수께끼를 푸는 승객은 하나도 없었다.
"저다리 이름은 '할랑교'이고 지금 달리는 다리는 '말랑교' 아잉교."
점잖은 중년들이 놀라서 입만 벌리고 말문을 잇지 못하는데 그가 다시
외쳤다.
"할랑교 말랑교하고 옆 사람한테 물어보소, 빨리."
이렇게 "할랑교, 말랑교"를 출발점으로하여 최기사의 성담론은 한나절에
걸쳐서 그 진면목을 다 발휘하고도 남았다.
그가 펼친 수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압권은 지형과 관련된 것이 많아서
이른바 현장학습에 다름 아니었다.
해변길은 가파르고 좁은 섬을 바다와 면하여 달려야하기에 방금 말한 것
처럼 교량도 많았지만 인공 터널도 적지않았고 자연 동굴이 있으면
놓칠세라 요긴하게 통로로 이용되었는데 어떤 지점에 이르니 묘한 모양의
천연 굴이 있었다.
"저게 바로 음기가 가득한 굴이라서 이 동네 전체에 바람난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이 요절난다는거라요. 그래도 한번 견뎌내면 평생 호강한다는데
내릴 남자 있으면 손들어보소.
경주 가는 길에 있는 여근곡 동네의 음기가 대단하다지만 여기에 비하면
새발에 피라요.
하여튼 잘 보소. 저기 길 앞에 있는 굴의 구멍 모양이 희안하지요?"
그는 세로로 길게 찢어진 그 굴 입구에서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무려
다섯번이나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였다.
"아, 이제 오늘도 통과의식이 끝났네요. 굴도 흡족한지 천정에서 물이
줄줄이 흘러 떨어지네요."
그의 입담은 말하자면 그런식이었는데, 다만 그런 음담패설로 일관하지
않고 울릉도 비경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식물의 자생 군락과 동물에 대한
소개와 멸종 되어가는 이런 동식물의 개체 보존을 위한 자기나름의 보호
운동 사례를 소개하면서 향토 사랑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집념과 지혜를
과시하였다.
처음 그의 이야기가 도를 넘는듯하여 어색했던 정진주는 박준수의 손에
포게었던 그녀의 손을 치웠으나 나중에는 버스의 요동에 맞추어 다시 그와
바싹 붙어버리고 더이상 그런 자세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일행들도 차차 그의 입담이 정성어린 손님 접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관광버스는 마침내 울릉도의 정상에 펼쳐진 나리분지로 힘겹게 올라갔다.
나리가 군락을 이루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나리 분지는 화산이 분출
하다가 내려앉은 칼데라 지형이었는데 꽤 아담하게 전개된 초원에는 이 곳
특유의 식물 생태가 인상적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또한 이 곳 특유의 전통가옥, 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고 화산돌 즉 현무암
으로 그 위를 눌러놓은 '너와집'도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박준수와 정진주는 일행과 함께 이 곳 특유의 수수 막걸리를 한잔하고
손을 꼭 잡은채 칼데라 초원을 한참 걸었다.
'너와집'에 붙은 굴뚝은 울릉도 자생의 교목 속을 파서 연기가 잘 빠져
나가도록 세워놓은 것으로 두사람은 그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무슨
신끼 같은걸 느끼기도 하였다.
"기분이 묘해. 우리가 신내림 받는거 같네. 이 나무가 살아있을 때에는
신단수 같았을거야."
"그래요. 신단수 옆에 서니 정 선배가 샤만같애요."
그는 카메라를 트라이포트 위에 올려놓고 앵글을 이리저리 조절하면서
그녀를 무녀 같다고 소리지르며 아예 굴뚝을 부여잡으라고도 했다.
그는 자동 셔터를 누르고 그녀의 옆으로 달려와서 이제는 그녀와 굴뚝을
모두 부여안고 또 소리를 질럿다.
"야아, 여기 신단수 옆에 정 선생님과 서니 완전히 강신의 경지를 함께하는
것 같아요. 우리 둘의 영혼이 합일하여 저 굴뚝을 통해서 하늘로 닿는것
같아요."
"박 선생, 너무 소리치지 말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수수 막걸리
한잔에 취했네."
"좋아요, 뭐! 이 막걸리 한사발도 예사롭지 않아요. 합환주 같다니까요."
"못말려!"
박준수의 뜨거운 의미 부여에 보통 때처럼 엇나가는 소리로 화답한 그녀
였지만 셔터가 찰칵 소리를 낼 때에는 다소곳하기만 했다.
울릉도 해안의 절경과 내륙 비경에 취해서 시간을 예정보다 더 빼앗긴
일행은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오후 독도 탐방을 위한 뱃길, 배 시간이 급했다.
해안 도로로 완전 일주하기에는 마지막 난공사가 남아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결국 아까 통과했던 음기가 자욱한 천연굴도 다시 도루 통과하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그런가,
최 기사는 아까와는 달리 들락날락하는 의식을 하지않고 냅다 버스를
몰았다.
"아까처럼 다시 여기에서 들락날락거리지 않소?"
누가 소리쳤다.
"아까맨치로는 안합니더. 바로갑니더. 뒤로 또 그카면 변태라 카데요."
재담의 수준이 이 정도였다.
점심을 호텔에서 단체로 급히 먹고 다시 쾌속정이 독도를 향할 때 쯤에는
정진주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뱃 멀미가 나요?"
박준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내 걱정은 말아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여기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게 관심도 갖지말아요---. 부탁이야. 내가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지금이
또 그 순간이야. 렛 미 비 얼로운. 플리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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