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로 가는 배는 규모가 작은 배라서 롤링과 피칭이 심하다는둥,
항상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상황에서 번지는 루머가 점심 식탁에서도
대원들 사이에 한참 난무했었지만 알고보니 결국은 묵호에서 타고 온
똑같은 쾌속정이 그들을 접수하였다.
잔잔한 바다 위를 쾌속정은 묵호에서 울릉도 올 때와 비슷한 상태로
한숨에 달려서 두시간 만에 그들을 우리 땅, 독도에 쏟아놓았다.
아, TV가 새벽에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그리고 저녁에 종영을 할 때마다
동해물과 함께 비추어주던 그 두 덩어리 바위산으로 된 독도가 감개무량
하게 자연보호 대원들의 시야에 들어오더니 배는 그 두 봉우리 암벽 사이의
천연 항구로 얼른 접안을 하였다.
하루에 200명만 입도할 수 있다는 선실 안내 방송에 자신은 져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강박관념까지 느끼며 감격에 찬 방문객들은 꾸역구역
선교를 잡고 내 나라 독도 땅에 상륙을 하였다.
저 동해의 거친 파도와 해풍과 또 왜구의 노략질에 견뎌내려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섬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고 그나마 바닥 전체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있어서 마치 갑옷으로 중 무장을 한 중세의 기사와도 같다고나
할까, 혹은 암벽으로 축성된 그 시대의 성채와도 같았다.
묶어서 '독도'라고는 하지만 암벽 봉우리로 구성된 두개의 섬은 방위에
따라서 다시 '동도'와 '서도'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었다.
발이 섬의 바닥에 닿자 흥분한 어떤 대원은 흙이야 있건없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서 교황처럼 친구, 그러니까 입맞춤도 하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념사진 부터 찍기도 했다.
박준수는 정진주의 손을 꼭 잡고 이곳 저곳을 안내하며 보살폈다.
독도에 상륙하는 것을 굳이 입도라는 표현을 써서, 정진주는 다소 의아
했었지만 동도와 서도로 나누어진 그 작은 암반의 섬에서도 겨우 '동도'의
시멘트 바닥 위에서만 딱 20분간 체류하다가 떠나가는 여정이기에 그런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그녀에게 왔다.
"정 선배, 저기 '서도' 쪽을 봐요. 지금 중년의 남녀가 암벽 밑의 거처 같은
데로 손을 잡고 들어가지요?
그 분들이 여기에 주민등록을 하고 사시는 부부랍니다."
벌써 세번째 이 곳에 입도한다는 박준수는 이것저것 열심히 정진주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조금이라도 더 바다쪽으로 나가서 맨 땅과 자갈과 모래를
그녀가 직접 밟아 보도록 해주려고 애를 썼다.
물론 그럴 때마다 해경의 가벼운 제지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이 내린 '동도' 쪽은 부부가 사는 '서도' 보다는 조금 더 넓었고 접안
시설도 더 잘 되어있었으나 손바닥 만한 상륙구역을 제하면 그냥 가파른
암벽 위로 올라가야 경계를 맡은 해경의 초소와 숙소도 있고 약간의
개활지도 있는성 싶었다.
방문객들에게는 물론 그 쪽으로의 진입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런데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는 그쪽 멀리 바다와 면한 낮은 위치에
비석 같은 물체가 두어군데 서있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정진주는 디지털 카메라의 모니터를 주시하며 줌 장치를 최대로 당겨보았다.
그 망부석 같은 두어개 물체는 과연 비석들이었다.
하나는 제법 갓머리도 쓴 괜찮은 비석같았고 또 하나는 그런 것도 없이
온몸이 풍상에 씼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모니터에 얼른거렸다.
"박 선생, 저 비석이 무언지 저기 젊은 해경에게 좀 물어봐요."
그녀가 급할 때면 찾는 사람이 박준수였다.
"아, 저기 비석들은 광복 직후에 미군의 오폭으로 희생된 우리 어부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비석이지요."
젊은 해경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럼 저 왼쪽의 밋밋한 비석은요?"
정진주가 무언가 답답한 마음으로 디카에서 눈을 떼지않고 해경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아,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여기를 지키다가 이 곳에서 돌아가신
여러분들을 위무하는 복합적인 비석일 것입니다. 저도 여기 배치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그럼 옛날에 여기에 표류해 온 우리나라 사람의 유구 같은 것을 장사
지내고 묘지를 쓴 경우는 없었나요?"
"유구가 뭔가요?"
해경이 조금 짜증을 내며 물어보았다.
"아, 해류에 떠내려 온 시체 말입니다."
그녀는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네,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가 우리나라 땅이니까 우리나라
사람의 시체라도 떠내려오면 옳다하고 여기에 매장을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듯 해요.
모두다 국제 관계 때문이라지요, 아마. 잘은 모르지만---."
여성이 물어보아서인지, 해경이 친절하게 추측까지 겻들여서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구, 엄마야!"
디지털 카메라의 줌을 최대로 당겨서 눈을 모니터에 고정시키고 해경의
설명을 경청하던 정진주는 그만 시멘트 둑에서 바다쪽 자갈 해변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면서도 그녀는 카메라를 품에 꼭 안고 구르느라 어깨와 무릅과
팔꿈치, 그리고 심지어 갈비뼈에까지 심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생명까지는 몰라도 골병이 들 정도의 부상이었다.
몹씨 아픈 쪽은 어깨와 가슴이었으며 팔과 무릅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흐를 지경이었다.
갑자기 작은 소동이 일어났지만 배에는 응급실이 있어서 간호사가 우선
과산화수소로 소독부터 하고 지혈 조치를 취한 다음 설파제에 항생연고
까지 듬뿍뿌리고 발랐다.
간호사는 뼈가 부러지거나 탈골된 징후는 없다고 진단을 해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정진주도 아픈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듯 싶었다.
그래도 통증이 심한 바른 팔에는 응급 부목도 대었다.
"웬일이야, 자연보호는 나 혼자 다 한것 같고 부끄럽고 챙피해---."
그녀는 아픈 중에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으나 독도에 입도하면서 그녀가
처음부터 품었던 어떤 참혹한 기억과 기분은 오히려 많이 여과되고 세척
되어 있었다.
"그 남자, 아니 그분이라고 해야하나요, 하여간 첫사랑의 묘지는 찾은듯
하네요, 정 선배님."
선장실 옆의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박준수가 어정쩡하고 딱한
얼굴로 간호사의 시선을 비키며 말을 걸었다.
"그래요, 박 선생,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확인이 되었다는
확신 같은건 오네요. 그 당시 사고가 났을 때에 죽은 사람의 집안에서는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결국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반년 가량이 흘렀을 때에 신문 한 조각에 제주에서 실종된
수학여행 학생의 시신이 독도 근해에서 발견되었고 가족의 동의로 독도에
매장한다는 기사가 났더라구.
동기들은 모두 발령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진 후였고 나도 나설 계제가 전혀
아니어서 그 일은 그렇게 개인적 사건으로 흐지브지 되었지.
다만 나는 지난 십여년 이상 동안이나 그 신문 기사를 내 가슴에 혼자 묻어
두고 살아왔나보네."
그녀는 여기저기 온 몸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많은 말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조용히 참배라도 하도록 손을 써 볼까요? 속 시원하게. 정 선배."
"필요없어요. 20분간만 정박한다는 배가 지금도 나 때문에 연발을 하는데
말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나도 이제는 숙제를 다 푼 기분이구만. 내 첫사랑의 묘지라고 아까
박 선생이 말할때 나는 깨달았어. 그래 지난 사랑은 다 묘지에 묻었어.
난 이제 더 이상 지난 일에 묶여있지 않아도 될듯싶어. 정말 속이 시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박 선생!"
그녀는 아픈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배가 떠나네---."
그녀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멀어져가는 독도를 선창 밖으로 내다
보았다.
"간호사만 괜찮으시다면 우리 우등실로 나갈까요? 여긴 좁고 불편하네요."
박 준수의 말에 간호사도 긍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들은 1인당 4500원을 더 내고 보통실 표를 우등실로 바꾸어서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로 앉으면서 의자를 시트처럼 눕혔다.
우등실의 특전이었다.
배는 어느새 독도가 점으로도 보이지않는 거리를 달려와서 더욱 힘차게
항진하고 있었다.
"정 선배, 자마이카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이 파월이나 라이스 말고도 또
있지요?"
"가수, 해리 벨라폰테."
"전에 효창공원에서 고백성사 할 때에는 그 사람 이름을 왜 뺐어요?"
"전 남편이 그 사람 노래를 너무 자랑하고 좋아하고 또 잘 불러서 마음에
걸렸어. 바나나 보우트 송이라던가 또---."
"자마이카 페어웰!!"
두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찌깨뽕!!"
두사람은 또 동시에 말하고 상대방을 먼저 꼬집으려고 하다가 몸을 움직인
정진주가 너무 아파하는 바람에 그만 두고 조금 웃기만 했다.
"정 선배, 내가 '자마이카여 안녕'을 노래불러 드릴께요. 이제 섬 이야기는
섬에다가 다 묻어버리고 이 쾌속정처럼 우리의 목적지로 달려갑시다."
정말 쾌속정은 쾌속으로 달려서 금방 울릉도 도동 항구에 접안을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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