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울릉읍 독도리 (여섯번째 연재-끝)

원평재 2006. 10. 12. 09:04

 

 

 

 

 

일몰이 오자 자연보호 전 회원들은 도동항에 있는 광장으로 모였다.

독도수호 결의문 낭독과 펜 플룻 음악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식사까지도 박준수와 정진주는 따로 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을성 싶은 정진주였지만 울릉항에 도착하고 부터는

어느정도 몸을 추스릴 수가 있었고 저녁도 조금 먹을 수가 있었다.

다만 광장에서의 저녁 모임에는 참석할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마침

평소 지면이 있던 여류 연극인  J 선생이 독도 수호 결의 대회를 낭독하는

스케줄과 한국 펜 플룻 음악 계통의 선봉에 있는 K 선생이 특별히

연주회를 연다는 데에 그녀가 무심할 수는 없어서 마치 병자처럼 그녀는

룸 메이트들의 도움을 받으며 광장으로 내려갔다.

물론 박준수도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약간 떨어져서 그 일행과 동행하였음은

물론이었다.

.

하지만 두사람이 손을 잡은건 광장으로 다 내려가서 나무 이래 어둑한

그림자 아래에서나 겨우 가능했다.

"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어,"

그녀가 소리죽여 투정을 부렸지만 모두 그녀의 억지임에는 틀림없었다.

"정 선배, 미안합니다. 본부 일이 바빠서요---."

"나 집으로 갈래."

"그래요. 지하철 타는데까지 바래다 드릴께요. 하하하."

그가 어둠 속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아이구 아파! 나 온 몸이 다 아파요. 그리고 이러지 말어. 소문나---."

"여긴 섬이라 소문도 섬 밖으로는 못나가요. 아니 사실은 소문 좀

났으면 좋겠어요."

"그래, 하여간 우리 여기에서만은 남 눈치 보지말고 꼭붙어 함께

있자. 저기 진행 보조 같은건 다른 사람이 지금처럼 하게 두고 여기

있어요. 박 선생."

 

그들은 광장의 외지고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박 선생은 어디에선가 울릉도 호박술을 한병 사와서 정진주에게  조금

권하고는 혼자 은밀하게 마셨다.

광장에 급히 설치된 무대 쪽에서는 여류 연극인 J씨가 미리 와서 낭독문을

점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 선배, 저 연극인 J씨라는 분도 아마 남편인 E 선생이 연하이던가

그래요. 아니 그뿐 아니라 전에 어떤 여성 잡지에 보니까 자기를 따르는 

연인이 손 아래 남자라고 커밍 아웃, 그러니까 떳떳이 대외 공포를

하던데요---,"

"그러니까 나도 박 선생의 숨겨놓은 연인이나 되어줄까? 그래, 그거 좋겠네.

결혼하자고 졸라대는 소리도 듣지 않고---."

"저는 아내와 연인은 같다고 봅니다."

"난 누님이야."

"그럼 내 누님, 내 아내, 내 연인, 내 동료, 내 친구, 내 정부."

"그리고, 내 웬수!"

두 사람이 사랑 싸움을 하는데 한국 플풋계의 대가인 K 선생이 여러가지

명곡을 그 기이한 악기로 청중들에게 선사하여서 한밤의 분위기를 확

사로잡았다.

 

 

이제 광장의 분위기가 잡히자 순서에 따라서 J 연극인이 단상에 올랐다.

어제 오늘에 걸친 울릉도 자연보호 활동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감을 피력한

이 여류 연극인은 잔잔한 목소리에 갑자기 힘을 넣더니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 행사가 역사적으로 명증적이고도 타당함을 조목 조목

천명하고 마침내 독도에 해경이 아닌 국군을 상주 시켜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녀가 열가지 항목으로 독도 선언문을 선창할 때마다 광장을 메운 사람들은

큰 소리로 화답하였다.

 

그녀가 선언문을 선창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열화와 같이 화답을

한 연후에는 모두들 그녀에게 노래 한 곡을 생음악으로 또 청하였다.

그녀는 기침과 함께 목청을 돋운 다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을 열창

하였다.

노래는 부드럽고 감미롭게 시작하여서 마침내 슬픈 서정으로 마감되었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가을에 한번쯤은 자신들도 실연을 하고야

말았다는 듯이 앙콜도 요청하지 못하고 쥐죽은듯 고요 속에 빠져버렸다.

 

 

"연기인으로서의 J 선생과 또 그 양반 노래는 좋아도 가사는 슬퍼서 싫어."

정진주가 정적 속에서 나즉히 속삭였다.

"저도 동감, 동감입니다."

박준수가 꼭 쥔 손에 힘을 넣으며 응답하였다.

"박 선생도 가을을 남기고 떠날거야?"

"그건 말이 되지 않죠. 저는 기쁘게 정 선배를 사랑하여 평생을 함께 즐겁게

지낼겁니다. 아이들도 여럿 낳구요. 생각해 보세요. 정 선배는 내가 저렇게

슬픈 노래 부르며 슬픈 사랑을 나누자고 할 줄 아셨나요?

저는 운명의 순종자가 아니라 개척자가 될겁니다. 절 따라오세요."

두 사람은 조용히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저기 산 중턱에 대아 리조트라고 지금 완공 단계에 있는 콘도가 있어요.

아직 정식 개관은 안했지만 모델 하우스 쪽에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답니다.

그리로 가시지요."

 

두 사람은 이탈리아 식으로 지어놓은 리조트 콘도 단지로 택시를 타고

갔다.

마치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곳은 텅 비어있으면서도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호화 '수이트 룸'으로 장만된 어떤 공간에서 박준수는 정진주를 침대에

눕혔다.

"나 몸이 불편한건 그렇다치고 샤워조차 못했는데---."

"아까부터 정 선배의 몸에서 해초 냄새가 나는걸 내가 묵과하지 않았어요."

"젊은 사람이 플레이 보이같아. 못땠어."

"플레이 보이치고는 제가 너무 서툴고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아요?"

"박 선생, 잘들어요. 내 전 남편에 따르면 내 속이 조금 기형적으로

굽었다는군. Oh, Dear deviated! 이러면서 그는 미칠 것 같다고 외쳤어.

난 아프기만 했는데---.

그리고 사실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여러모로 기분이 나빴어. 차라리

커브드나 벤디드나 크루키드라면 모를까 디비에이티드라니 일탈이고

항로 이탈이라는 뜻이잖아. 제 마누라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사랑이란게 고작 오리엔탈리즘의 변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

아까 낮에 버스 기사가 그 무슨 동굴 속에서 들락거리는 연출을 할 때에도

난 그 아픈 기억이 나서 얼마나 섬찟했는지 몰라. 이래저래 난 남자에

대해서 두려움이 많고 내 몰골이 이래요---.

생각컨데 나중에라도 배신할 듯 싶으면 지금이라도 나를 재미로 안는다고

미리 말해줘.

거절하진 않을께.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오늘 밤은 나도 혼자 자기는

싫어.

다만 박 선생 같은 젊은 총각이 왜 나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넋이 빠졌는지,

그건 궁금해."

정진주는 하고싶은 말을 다 해버렸다.

 

말을 듣고 있던 박준수도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풀어나갔다.

 "정 선배! 비너스의 화살이 박혔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로만 부족하다면

한가지만 보충할께요.

내가 어렸을 때, 꽤 괜찮은 중산층 가정이던 우리 가족은 어느날 관광지

에서의 교통 사고로 어린 나만 남기고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남들에게 잘 하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철이 들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졸지에 그렇게 된 아이들이 참 많더군요.

신종 고아들이지요. 

자동차 보험 협회에서는 '희망 어린이 동아리' 같은 걸 만들어서 도움을

주고도 있지만 그런 참사와 재난은 그리스 비극처럼, 또 천형처럼 멀쩡했던

어린 아이들을 참혹한 인간형으로 만들어 버린답니다.

제가 정 선배에게 기울이는 사랑이 그런 가정적 결손 때문 만이라고는

생각지 마세요.

그저 첫눈에 반했다고만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제 말에 답하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정 선배가 바위에서 굴러떨어져 지금 심신이 다 아픈건 초야를 치르는

의식과 정성으로 받아들일께요.

저기 창밖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에 귀 기울여봐요.

저 거대한 파도 소리가 내 청혼의 음성이니까요."

 

 

 

(이번 이야기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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